여행은 제게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알 수 없고 해석되지 않는 확신 같기도 한 영감 외에 여전히 모든 것은 모호했고, 불확실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얼마동안 여러 날을 허우적댔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부터인지도 모르게, 제 안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일어나는 줄도 모른 채, 일어서지는 것과 같은, 능동과 수동의 사이 속에서 저는 아주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인 흐름과 파동을 따라 삶의 방향과 선택들을 향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제 안에 깊은 곳에 우뚝 있었던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여전히 춤을 추고 싶다는 마음을요. 그 깊은 마음은 표면에서 소요하던 생각과 감정과는 관계없이 변함없이 있었다는 걸요. 그래서 다시 춤추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여기 현실의 속박의 삶을 떠나 저기에 가면, 여행과 표류를 하면 진정한 자유를 만나게 될 거라고, 진짜 자유 이상적인 자유를 손에 쥐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찾고 찾던 자유는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없었습니다. 속박을 떠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여행의 한복판, 자유의 장 한복판에서도 저는 진정 백퍼센트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자유라는 게 무엇이고 마흔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다 저의 생각 속에 구분 짓고 만들어 놓은 머릿속 개념일 뿐이었습니다. 실제의 삶은 경계 없이 구분 없이 그저 한데 섞여서 펼쳐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속박이야, 나는 지금 얽어 매여져 있어. 여기 속박을 벗어나서 저기를 가면 비로소 자유로울거야, 저기에는 진정한 자유가 있을거야. 속박이고 자유고 이렇게 구분짓고 라벨을 붙여놓은 제 생각이 없으면, 사실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보니까 자유도 속박도 다 내 안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미 문제될 것도 없었고, 자유로운데 제가 굳이 스스로 ‘속박‘이라 여기면서, 자유를 찾아다녔습니다. 자유는 이러이러해야 해. 마흔이라면 성공도 하고 안정되어야 해.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는데 다 제가 스스로 틀을 짓고 족쇄를 채우고 못을 박았습니다. 제 생각과 개념에 꼼짝없이 갇히고 집착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춤도 그랬습니다. 무용은 이러이러한 거야, 이렇게 저렇게 춤을 춰야해,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으면 틀린거야, 인정받아야 돼.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기 위해서 항상 저 밖에 있는 외부를 쫓아다녔습니다. 외부의 기준과 틀에 다다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했습니다. 규격에 잘 들어맞기 위해, 기준과 틀에 잘 맞아떨어지기 위해서, 남의 말을 잘 따라하고 잘 복사하는 앵무새와 로봇처럼 춤췄습니다.
예술가, 이름, 성공, 인정, 안정... 저는 마흔이 되면 뭐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되어야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사십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 제대로 된 사십이 되지 못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다 제 머릿속 생각이 만든 개념적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속박이란 것도, 자유라는 것도, 마흔이란 것도, 성공과 인정과 안정이란 것도, 춤이란 것도요. 성공하고 인정받고 안정적인 마흔의 형상, 예술가가 아닌 밥벌이 생계형 무용인의 삶은 실패와 속박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 그렇게 제가 구분 짓고 만들어 놓았던 생각을 내려놓으면서 저는 인생의 현 시점까지의 이 시점에서 저만의 답을 찾았습니다.
이제 마흔에 대해 춤에 대해 자유롭습니다. 저만의 고유한 마흔, 저만의 고유한 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엄청난 업적의 예술가도 아니고 생계형 무용인이지만, 성공도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고, 안정도 이루지 못한 마흔이지만, 이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인정받든 아니든, 성공하든 못하든, 안정적이든 아니든, 저는 그저 삶이 펼쳐지는 속에서 그냥 진실하게 제 자신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진실의 등불을 밝히고 한 발짝씩 나아가면서, 내맡기고 내던지고 살고 싶습니다. 제가 제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향해 가는 삶의 여정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저를 세워주고 이끌어주는 진동과 울림, 영감이 바로 저에게는 춤입니다. 진실하게 제 자신이 되고 싶고, 자유롭게 진실하게 고유하게 춤을 추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진실하게 고유하게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도 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제 존재와 삶이 확장되고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깊고 강렬한 희열과 충만감의 세계, 황홀경과 무아지경의 세계에 들어가면 이제 정말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저에게 이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확신하여 말할 수 있지요.
얼마나 똑같이 잘 따라하느냐 얼마나 몸을 잘 쓰고 움직이느냐 얼마나 현란하게 멋있게 춤을 추고 기술을 잘 보여주느냐는 춤의 본질이 아닙니다. 돌처럼 진실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리얼하게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춤은 단순한 춤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곳으로 들어옵니다, 나의 인생, 삶 전체로 파고들어 옵니다. 그런 무한하고 충만한 세계에서 계속 뛰놀며 여행하며 춤추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