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grid Jin Dec 07. 2019

외신 큐레이션 <러시안룰렛> 베타테스트를 회고하며..

한 달간 외신 큐레이션을 했습니다. 혼자 하기에는 너무 지치더군요.

필자는 2019년 9월 1주부터 10월 3주까지 총 5회에 거친 외신 큐레이션 서비스 <러시안룰렛>의 베타테스트를 진행했다

생각의 시작..

저는 올해 초에 어느 영어 스터디에 가입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 The Economist(TE)와 영국 정치철학 박사를 준비하시는 스터디 리더님이 작성하신 정치철학 영문 아티클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요. 저는 당시 학교와 병행하며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기도 했고, 고급 영어독해에 대한 갈증이 있어 좋은 기회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스터디에서 팀원들과 함께 특정 이슈에 대한 아티클을 리더님이 설명해주신 철학 이론으로 논평해야 했는데, 그 덕분에 TE를 지속적으로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외신도 당연히 우리 언론처럼 각자의 기조가 있어 서로서로를 비판하는 모양새를 띕니다. The Economist는 일반적인 리버럴 서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으며, The Guardian도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좌파' 의 진보적 성향의 중산층을 주요 구독자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The Times는 다소 보수우파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브렉시트 이슈 등에 우호적인 편입니다.


한 가지 영국 언론에 인상적이었던 점을 꼽자면 자신들의 성향을 뛰어넘는 주장을 자주 편다는 점입니다. New York Times와 세계 경제지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Financial Times(FT)는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언론입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FT는 기업 경영의 목적이 기업에 엮여있는 이해관계자에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내세웠습니다. 한국 시각에서는 진보 정당에서야 할 법한 언급인데,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FT에서 기업 경영의 최고 목적이 주주의 최대이윤 추구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지난 10월, The Economist에서도 사유화와 국유화 사이의 어딘가 대안이 있을 지도 모른다면서, 시장에 공유(共有)물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술기업에 개인의 정보를 넘기는 행위가 위험할 수 있다며 경종을 울리기까지 합니다. 최근 가명정보를 도입해 개인의 동의 없이도 데이터를 활용 가능하도록 만든 데이터 3법이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되었는데요. 가장 시장주의적인 TE와 FT가 가장 시장적이라는 전통적 제도를 비판하는 유연성이 제게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스터디를 계속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왜 외신을 큐레이션하는 이메일 뉴스레터는 없을까?
누군가가 이번 주에 읽을 만한 외신 컨텐츠를 큐레이션 해준다면 돈 내고 구독할 의향이 1000% 있는데...


저는 뉴닉 NEW NEEK, 어피티 UPPITY, 리멤버 나우 등 다양한 분야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는데요. 외신의 컨텐츠 또는 외국의 시사뉴스를 쟁점 별로 정리해서 보내준다면 세계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뉴스는 다뤄주면서 해외 이슈를 안 다룰 이유가 없지요.


물론 이 생각을 저만 했을 리는 없으므로, 외신 큐레이션을 진행하는 곳이 없는 이유를 다방면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외신 컨텐츠는 paywall(유료구독)이 있으므로 함부로 번역해서 활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쪽은 뉴스페퍼민트가 뛰어난 퀄리티의 번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 저작물을 바탕으로 하되 독자적인 컨텐츠를 제작하면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외신 이슈는 국내 독자와 관계가 없어서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일까요?


예를 들어 TE와 FT는 주주중심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포괄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기사를 2주 간격을 두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내용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붙여 새로운 글을 작성하면 어떨까요? 지적 토론을 좋아하는 젊은 독자층의 열띤 애호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맞아, 나도 한 때는 국제학부를 지망하던 꿈나무 외교인이었지. 할 수 있을 거야!


동선이 형을 만나서..

이런 생각을 혼자 그리던 와중에 블록체인 코워킹/코리빙 커뮤니티 논스에서 알게 되었던 동선이 형이 군 제대하시고 새로운 공간을 시작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낙성대에 위치한 조그마한 살롱에 위치한 커뮤니티 이름은 시나몬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시간, 좋은 공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식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는 형의 의지가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동선이 형은 당시 퓨우처라고 하는 아주 아스트랄한 유튜브 채널을 하나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X년 후의 Y 분야의 미래를 짚어보는 영상 컨텐츠인데, 우스꽝스럽지만 나름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 있는 주제가 자주 올라왔던 채널이었습니다.


어느 날 일요일 아침, 동선이 형의 초대로 퓨우처 제작회의를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청년우파 정치인이자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 기록을 세운 세바스티안 쿠르츠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체 어떻게 26살에 외무장관을 하고 30세 초반에 총리 자리에 올랐던 것인지 궁금해하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중도우파 정당인 국민당에서도 가장 오른쪽 끝에 있다고 평가를 받는 인물인데도 말이지요.


유럽의 새 우파와 파시즘은 우리 사회와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난민 인정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독일도 대연정이 깨진다고 합니다. 아, 너무 큰 거대담론인가요? 그러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죠. 세바스티안 쿠르츠는 31세에 총리 자리에 올랐고 33세에 연임이 확정되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79년생 버라드커 총리가 당선되었구요. 젊은 정치인의 장단 여부를 떠나, 어떠한 정치 및 문화적 토양이 투표자로 하여금 젊은 정치인을 과감하게 선택하도록 만드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다른 특이한 이유는 없는 걸까? 고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쿠르츠 총리에 대한 영상 회의를 하고 있던 동선이 형과 상빈이 형에게 외신 이메일 큐레이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시지는 않았지만 또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치시지는 않아서.. 음,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동선이 형은 저랑 함께 퓨우처를 공동 제작하면서 Y 분야의 미래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습니다. 시리즈 별로 Y를 바꾸어가며 여러 개의 미래에 대해 논해보는 것이지요. 중독의 미래, 시민권의 미래... 이런 것 말입니다.


아무튼 저는 외신 큐레이션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동기는 제가 한 달에 30불 이상을 읽을거리 구독에 사용함에도 게을러서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고, 여러 외신 이슈를 모아주면 좋지 않을까라고 단순히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뭐 사람들이 봐주면 좋고 아니면 내가 혼자 글 썼다는 것으로 좋아하고 말지요. 퓨우처 영상과 시나몬 공간과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아이디어가 정말 괜찮은지 베타테스트로 우선 제 멋대로 한 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미루다가..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AngelHack 2019 해커톤을 함께 기획했던 디자이너 보람님께도 살짝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지적인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어보자, 외신이슈 계의 리멤버 나우를 한 번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외신 이슈들이 쌓이면 이슈 간의 연결이 가능할 것이고, 나름 아카이빙이 가능하여 각 이슈별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트래킹도 가능하고 데이터 시각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도 펼치면서 말입니다. 너무 좋아해주셔서 안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바로 컨셉도 고민해오셨거든요.


공간과 커뮤니티, 리서치 능력을 보유한 동선이 형과 갓디자이너 보람님을 만났으니 뭐가 두렵겠습니까? 우선 뭐든지 터뜨려보아야 하는 것이죠. 우선 베타테스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들 30명 정도를 모아서, 우선 4~5회 정도 컨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반응을 보면서 계속할 지 말 지, 계속하게 된다면 베타테스팅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내용을 다시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사람부터 모아보고 고민하도록 하죠. 사람 모으고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하면 아무튼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션으로 공지를 올려 러시안룰렛 베타테스터 약 30명을 모집했습니다.

8월 말에 공지를 내고 1~2회 모여 간단한 컨셉을 논의했습니다. 글을 작성하고 편집하는 것은 순수히 추진자인 저의 몫이기에, 일단 저의 입맛대로 진행해보고 함께 피드백된 사항에 대해 토의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글로벌 이슈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러시안룰렛이라는 이름을 만들자, 보람님은 뛰어난 디자인 시안을 주셨습니다. 그녀의 혜안에 감탄하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 달 주차별로 진행할 만한 기사/트위터 쓰레드/레딧 쓰레드/페이스북 친구 포스팅 등을 읽고, 큐레이션하고, 나만의 글로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의 사이드프로젝트이니, 구독자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분께 개인적으로 문의를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흔쾌히 응낙해주셨습니다. 지난 9월 1일 프로젝트눈누에서 진행했던 칵테일-프로젝트 행사에도 다녀와서 세일즈를 하고, 개인적으로 애독하는 비즈카페의 트레바리 사이드프로젝트 세미나에도 다녀왔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30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9월 2주부터 10월 3주까지 총 4회의 글을 발송하기로 했습니다.


베타테스트에 신청해주신 사람들의 기대는 대체로 해외 이슈를 통한 인사이트 도출을 원하셨습니다. 국제 분쟁과 해외 정치경제 변화에 따른 국내 사회/정세와의 연관성을 보고 내가 지금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앞으로의 비즈니스 기회는 무엇이 있을 지 고민하는 지점을 가져가기를 원하셨죠.


우선 해보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한다고 했으니 해야할 것입니다. 저의 초기 생각은 다양한 외신의 기사를 읽고, 이 중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을 정치외교/경제IT 분야로 나누어 작성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주로 다룰 만한 핵심 이슈 2개 정도는 심층으로 작성하고, 나머지 이슈는 300자 내외로 짧게 핵심만 요약해서 컨텐츠로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독 대상자는 일반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인 중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인물로 잡았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치경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에 따라 본인의 계획을 설정하는데요. 외신 기사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전달한다면 이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톤앤매너도 딱딱하지는 않지만 학술적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정말 구구절절 모든 것을 담아냈다. A부터 Z까지 다 짜냈다.

러시안룰렛 1주차를 발행했던 9월 2주차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경질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위 '트윗경질' 통보를 한 것인데요. 대북제재와 대중 무역정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던 존 볼턴이 경질되자 사람들은 미국이 더 온화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존 볼턴 사건을 보면서 제가 가진 의문점은 다음과 같았고, 이에 기반하여 글을 작성하고자 했습니다.

1주차 러시안룰렛

1. 이번 주에 주목해야 할 외신 소식
가. 존 볼턴의 탄핵
1)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사사건건 부딪혔던 존 볼턴 NSC 의장이 백악관의 파워게임에서 밀려 퇴진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후로 외교노선을 다소 수정할 가능성이 있나?
2) 그 동안 NSC는 역대 정권에서 어떠한 외교적 역할을 수행해왔는가? 국무부와 차이는 무엇인가?

나. 브렉시트 진행상황
1) 브렉시트 말은 많은데, 정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건가? 브렉시트는 왜 계속 연기되는가?
2) 브렉시트가 정말 노딜이 되면 우리에게 경제 및 사회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2.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려요

가. 중국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포기
나. 홍콩-마카오-션전을 잇는 중국의 신도시 발전 정책
...

나름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습니다. 존 볼턴의 해고에 따른 시사점 꼭지 하나, 브렉시트의 진행상황에 대한 꼭지 하나, 그리고 일 주일에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사건 하나에 깊게 들어갔습니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다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내용이 다소 길어졌습니다.


1주차를 진행하고 피드백을 받아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글이 정말 길다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한 편의 나름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글은 나왔지만, 당췌 이메일로 보기에는 너무 헤비한 길이(length)라는 것입니다. 베타테스팅을 받아보는 사람들은 다른 곳과 달리 말투가 어렵지 않으면서 쉽게 읽힌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흥미와 핵심 위주의 아티클로 남기고, 더욱 자세한 내용은 제 2의 플랫폼으로 이동해서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피드백도 있었습니다.

1주차에 비해 2주차는 조금 더 짧게짧게 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2주차 이메일을 작성했습니다. 1주차보다 핵심 기사와 비핵심 기사의 구분 자체를 지우고, 선별한 이슈에 대해 모두 동일한 비중으로 글을 작성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일을 모으고자 The Guardian, The Altantic, Financial Times 등 다양한 언론의 기사를 쳐다보고 페친들이 공유하거나 작성한 링크 및 아티클 중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큐레이션해서 저장하고 읽어보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골라서 코멘트를 달아주어야 했는데요.


사실 2주차부터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읽어야 하는 내용이 너무 많고, 인사이트가 될 만한 내용을 뽑아내기도 쉽지 않고, 너무 한국 사회와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상관없는 일들을 하나로 엮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제 자신의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계속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합뉴스의 외신란 또는 정론지의 기획기사를 요약한 것과 무슨 차이가 생기는가? 라는 점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Chinese offshore IPOs by Location 이라는 TE의 그래프를 바탕으로 저의 글을 다시 디벨롭했습니다.
여러 가지의 아티클을 읽은 뒤 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가져오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3주차 이메일부터는 차트와 도표를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어가실 수 있도록 편성했습니다. 주요 차트는 The Economist나 Financial Times의 Daily Charts 중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지표를 활용했습니다. Paywall(유료구독) 제한에 걸리지 않는 단일 심층기사의 경우 기사 내용을 요약하고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첨부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아끼고자 평소에 작성해놓은 글을 바탕으로 외신 기사와 연동되는 지점을 잡아 금주의 외신소식으로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홍콩 시위와 중국의 남중국해 개발계획을 엮어 작성했던 개인 페이스북 글을 바탕으로, TE의 도표를 연동한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일단 지속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혼자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저에게 컨텐츠의 단단함은 나름의 자존심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논리적 완결성 및 글의 교훈성이 특정 수준에 미달하면 남들에게 글을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저만의 강박관념은 독자의 시선이나 의견과는 무관한 기준입니다. 제 자신이 만족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보았을 때 '좋은 글이다' 내지 '나쁘지 않은 글이다' 라고 판단되어야 하죠.


그런데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기에는 제 자신의 역량도 부족할 뿐더러, 제 기준에서 뛰어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쓸데없이 길기만 한" 글이 되버리기 십상이었습니다. 구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외신기사 요약을 통해 구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 내지 인사이트만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를 각 분야 별로 파악하기에는 타겟하는 구독자 층이 뾰족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계획은 철저하다. 현실에 얻어맞기 전까지는 말이죠.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특정 이슈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에 들어가는 학습 시간이 갈 수록 길어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식을 한 데 엮어서 이종사건 간 새로운 연결지점이 발견하는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요. 아무래도 분야 자체의 지식이 낮다보니 글 작성을 위한 학습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꾸준하게 컨텐츠를 발행하지 못하게 되고 쉽게 번아웃이 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에 봉착했습니다. 본업도 아닌데 일 배분이 정말 힘들더군요.


또한, 이메일을 통한 컨텐츠 전달이 맞는 방식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리멤버 나우는 핵심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합니다. 글은 다소 길지만, 별도 웹사이트로 연동되어 읽기 경험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멤버 앱을 활용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지적 욕구가 뛰어난 이들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메일의 경우 핵심만 간단히 습득하여야 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핵심 사이에 깔려있는 다양한 연결맥락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요? 꼭 이메일 방식이 인기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는 것이 답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외에도 공개로 전환했을 경우 저작권 이슈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구요.


외신 이슈 큐레이션은 다소 무겁고 우리 생활과는 동떨어졌다고 느끼기 쉬운 주제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제일 수록 핵심만 간단히 요약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외신 이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인사이트 도출을 위해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식을 차용하여야 더 좋은 읽기 경험이 될 수 있는 지 고민했습니다. 경제 뉴스레터 어피티는 이 부분에 잘 접근하고 있는데요, 경제 이슈를 요약한 다음 결국 '어떠한 종류의 금융/투자적 판단을 내리는 옵션들이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결론 도출을 도와줍니다.


감사하게도 각자의 전문 분야를 나눠서 담당 에디터로 작업하자는 제안을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정치 분야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경제 분야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말이죠. 외신 이슈를 바탕으로 국내 이슈 및 상황에 연결시켜 필요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뉴스레터가 되기 위해서는 리서치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독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읽힐 지 검수해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도 필요합니다. 오히려 한 주간의 내용을 큼지막하게 전달하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이슈를 짧게 쳐서 가져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 참 좋겠지만, 2020년은 여러모로 더 바빠질 시기이고 군대도 입대를 해야하니 더 진행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베타테스트 때 느낀 것을 요약해본다면, 1) 전문성도 좋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있을까? (뾰족하게 누구를 위한 무엇 - to whom for what - 이라는 질문에 답하기) 2) 사이드 프로젝트이지만 꾸준함을 유지하면서 퀄리티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할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너무 초반에 무리하면 금방 지치게 되어 지속하기 어렵다.. 정도가 있겠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당장 사람들이 읽을 만한 글이 다르다면, 이메일 큐레이션이 아니라 브런치에 쓰는 것이 맞겠지요.


저는 우선 여기까지로 하고 멈출 생각입니다. 다만 저의 교훈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제가 생각했던 뉴스레터 컨셉과 비슷한 큐레이션을 만들어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구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기내 와이파이 산업에 대한 짧은 리서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