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순간에서도 나 자신을 지키고 발전하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이다. 2021년은 군대에서 한 해를 보냈고, 정말 힘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어려운 군생활을 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병 시절 겪었던 각종 부조리와 정신적 폭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행히도 주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터놓아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지만, 병장 3호봉이 된 현 시점에도 부대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내 스스로의 생활력과 끈기("존버력"), 그리고 주위를 살피는 능력("사회적 눈치")을 계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든, 내가 문제를 정의해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일이든 상관없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부여하고, 업무의 맥락을 파악해서 실질적인 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군 행정병이었고, 공기업과 유사한 군대에서 한국의 조직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주 잘 배웠다. 업무 성과와 자신의 이익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 다시 말해 incentive-alignment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조직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 지 배웠다. 다들 일찍 퇴근하기 위해서, 또는 최대한 일을 줄이기 위해서(소위 "꿀 빨기 위해서") 다른 부서, 다른 조직, 다른 인원에게 자신의 업무를 스리슬쩍 넘기고 본인은 조용히 사라지는 행태를 배웠다.
특히, 오래 있는 사람이 장땡인 구조인 호봉제가 정말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비즈니스는 소비자와 시장이 업무 주체를 평가하므로, 객관적인 성과에 따라 승진을 하고 회사에서 나가는 등의 인력 순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호봉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계급으로 이루어진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도와 다름 없다. 가장 낮은 계급인 사람이 더 많이 일하고, 계급이 높아질 수록 일이 적어진다.
병사와 간부 사이의 간극도 여기서 나타난다. 간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업무 떠넘기기(소위 "짬 때리기")에 따라 비인간적으로 배분되는 업무 분담으로 중간 관리자는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는 (최소한) 인간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아래 계급에 자신의 일을 떠넘긴다. 비인간적인 업무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감정은 여과 없이 아래 계급으로 내려간다. 나쁜 감정이 확대 재생산되고, 별 것 아닌 사건을 가지고 아래 계급으로 사건이 확대 재생산된다.
이러한 업무 생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병 시절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꿈에서 과거에 들었던 폭언이 아직도 맴돈다.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지만, 현재 갖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해 전역 후 상담을 알아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감정에 쉽게 휩쓸려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렇다고 하니 나도 저렇다라고 말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타인을 쉽게 욕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옆에 있는 동료를 탓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순간 오히려 나 자신이 힘들어지는 상황을 발견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 해결로 인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의 업무를 떠앉는 폭탄을 맞는다. 이 사실에 절망했다. 지금도 괴롭다.
군대에서 사람을 남길 것 같지 않다. 열등감에 절여 나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나쁜 선임들도 있었고, 이에 심히 분노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나 자신이 부족해서 후임들을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한 점도 있다. 나는 스스로 겪은 아픔과 어려움을 바탕으로, 후임들에게 감정적으로 편안한 선임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부서의 분위기가 화목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피해를 준 것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쳤던 일이 있었는데, 결국 더 나쁜 방향으로 상황이 꼬인 적이 많았다. 그래서 군대의 구조 자체에 절망하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아오고 있다. 선임이 더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참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깊은 마음 속에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페이스북 자아로만 비쳐지는 나는 엄청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집안에서의 나는 기본적인 생활력이 떨어지는 어린애였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 살아왔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애정이 넘치는 나지만, 스스로 생활 환경을 꾸려가본 적이 없다. 수건 하나 스스로 널어본 적 없고, 빨래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나 자신의 생활력을 개선할 수 있었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는 경험을 해 보니, 이제는 나도 주부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최선의 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새해 목표가 생겼고, 그래서 나는 그녀와 인턴 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집안이 더러우면 참을 수가 없다. 논스에서 세상 내 물건 다른 사람 물건 구분없이 더럽게 살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발전이다. 실제로 깔끔하게 살려고 노력하니, 나 자신도 스스로 정리를 하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끈기력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중국어와 영어를 공부하고, 2020년에 코드스쿼드에서 백엔드 개발을 미친 듯이 공부해서 단기간에 높은 실력을 쌓은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끈기력이 부족했다.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하는 순간이 삶에서는 분명 존재한다.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할 때, 난 도망쳤다. 숨어 버렸다. 말 그대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피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참고, 존버했다. 존버하다보면, 원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버의 결과물은 값지다.
내 스스로 결심이 선다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존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심의 과정은 결코 가벼워서는 안된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민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 번 결심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간다. 누군가 고민의 과정이 애자일할 수는 없나요? 묻는다면, 고민의 과정 속에서도 A/B 테스트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설을 설정하고, 작은 실험을 해보고, 이를 통해 데이터를 얻는 것도 고민의 과정이다. 이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신중한 것은 애자일한 것과 절대 반의어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눈치를 기를 수 있었다. 사회적 눈치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난 원래부터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이었다. 옳다고 믿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하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취가 있었지만, 사람을 잃기도 했다. 나의 에너지 레벨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각자 높은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에서는, 나의 인연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랜덤으로 선후임이 뽑히는 군대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24시간 붙어 지내야 한다. 싫은 사람은 스스로 덜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줄이면 오히려 피해는 아랫 사람("을")에게 가는 법이더라.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신경쓰면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이러한 연습은 내 자신이 "을" 이 아닌 동등하거나 "갑" 인 상황에서도,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며 행동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 때 나의 감정과 상황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난 이것을 잘한다. 하지만,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배려하여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신중하게 택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떠한 사건에서, 어떠한 트라우마에서, 어떠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감정을 해소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생각한 답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태도를 얻으려 한다.
나는 군대에서 소위 이대남들이 인터넷에서 난리를 피우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러면서 왜 현실에서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지도 말이다. 자신들이 집단적으로 형성된 PTSD를 표출할 곳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감정은 생략되는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곳이 어디있나? 그리고 의견을 모아 집단적으로 표현하면 처벌받는 공간에서 훈련받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다들 파괴적으로 감정표출 하는 것이라고 본다. 삐뚤어진 것이다. 심각한 것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2022년 대한민국에서 노예제도를 운영하는 집단을 가본 적이 없는데 자유가 뺏겨 고통 속에 18~21개월을 참아본 경험을 누가 알겠나. 오직 병사로 가봤어야 알 수 있는 감정이다. 상호 불이해에서 비롯되는 젠더갈등이 그래서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군대에서 사회를 배운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자유를 뺏긴 상태에서 어떠한 성취 의식도 주어지지 않은 집단 생활은 노예제도와 다르지 않다. 벼사만 불쌍한 것 아니다. 부사관, 장교 모두 똑같다. 모두 고통받는 것인데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계급 아래로 계속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형태다. 내가 아는 한 모든 조직 생활이 이렇지 않고, 이런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은 결국 멸망하기 심상이다. 군대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을 활용하되 절대 이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으리라,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군 안에서 나 자신을 계발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퇴근하고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많은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일단,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신학을 공부했다. 요람 하조니의 구약성서로 철학하기 라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설도 공부하고, 성서해석학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도 했다. 구약성서에 대한 기원과 신약성서에 대한 해석을 공부했다. 신학이 다소 정적인 것 같아서 지루해서 공부를 접었지만, 신학은 가장 인본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계속 신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할 것 같다.
먼저, 코드스쿼드에서 공부했던 백엔드 개발의 학습의 불씨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글또 6기 모임에 참여해서 꾸준히 기슬 블로그에 자바와 스프링을 학습한 내용을 업로드했다. 기술 블로그를 열심히 쓰니, 이력서를 회사에 제출할 때 기술 블로그를 바탕으로 열의가 넘치는 주니어 개발자라는 평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새해에도 기술 블로그를 열심히 쓰려고 한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개발자라면, 꼭 글또 모임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나 자신이 기술 블로그를 작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떤 학습을 하고 글을 작성하는 지도 보면 자극이 된다.
CS 공부도 꾸준히 했다. 코드스쿼드 2020 동기였던 Han님과 함께 약 3달 정도 Let's CS라는 스터디를 기획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2주 간격으로 하나의 CS 주제에 대해 서로 학습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2년에는 자바 스프링과 CS를 엮어서 학습하는 새로운 스터디로 개편할 생각이다.
알고리즘도 꾸준히 풀었다. 나동빈님의 이것이 취업을 위한 코딩 테스트다 with 파이썬 책을 2회독 했고, 박상길님의 파이썬 알고리즘 인터뷰도 한 번 독파했다. 코드플러스 강의도 수강하고 있는데, 너무 길어서 절반 정도 보고 말았다. 코드플러스 강의를 쭉 따라가면서 백준 문제를 푸니까 골드 2 티어를 따기는 했는데, 내 스스로 복기를 하지 않아서 내 실력이 콜드 2 티어 정도까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머스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공채에 응시해서 코딩테스트를 실전적으로 보기도 했고, 카카오 코딩테스트에 응시하기도 했다. 코딩 테스트는 참 재미있지만, 그 만큼 어렵기도 하다. 감이 떨어지면 시간 내에 문제를 풀기 어렵고, 하루 내내 한 문제만 보고 끙끙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알고리즘 문제풀이는 분명 재미있지만 이건 취미로만 해야지, 취준의 무기로 활용하려고 하면 학습시간 대비 취업기간 계산 상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Google Developer Groups Campus Korea와 디프만에서 주최한 해커톤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Google Cloud Platform(GCP)를 이용하여 Kubernetes Container 구축과 Load Balancer 설정에 대해 학습했다. 또한, 휴가 따려고 매경TEST와 TESAT를 공부하면서 외고 시절 익혔던 경제학개론을 다시 복습하였다. 이 외에도 동기들이랑 공군 해커톤, 공군 창업경진대회에 나가서 좋은 인연을 만들었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수 많은 부대 독후감대회에 응시했지만 만년 3등을 기록하며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뉴스레터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매주 1회씩 친구들에게 내가 지난 한 주 동안 읽은 영문 아티클을 공유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내는 메일이다. 처음에는 군대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이 감정을 온전히 기록하려고 시작했다. 하지만 날이 갈 수록 뉴스레터의 정보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허진호님의 two cents를 보고 나도 인사이트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나 스스로 많이 읽고, 많이 글을 작성해야 한다. 그래서 매주 뉴스레터를 스티비로 작성했다. 하다보니 습관이 되어서 scale-up을 하려고 substack으로 옮겼다. 만약 구독에 관심이 있다면 다음 링크에서 확인해주기 바란다.
운동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헬스를 시작했다. 헬스를 좋아하는 선임을 보고,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훈련소 때 옆 자리에 있었던 동기가 나에게 맨몸운동을 알려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땀을 흘리니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헬스를 하면서 근육이 몸에 붙고, 내 자신의 체형이 변해간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운동기록 계정을 만들고, 글또 슬랙 채널에 헬또라는 채널이 있는데 여기에 운동을 2달 정도 꾸준히 기록했다. 비록 100일 정도밖에 헬스를 혼자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요즘에는 2달 정도 쉬고 있지만, 새해에는 운동을 꾸준히 하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식단도 관리하려고 한다. 군대 식단이 참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는 아직 어려서 몸에 음식이 다 잘 소화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짠 음식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대한 고기와 채소 위주로 식사하고, 탄수화물과 밀가루는 피하는 방식으로 내 몸을 조절하려고 한다. 혈당을 줄이기 위해 음료수를 끊어서 매일을 상쾌하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매일 에너지드링크를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상쾌한 하루를 보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입대하기 전에는 비전공자가 개발자 직군에 도전하는 기류가 있긴 했지만 급작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코딩을 하려고 한다. 코딩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에 대한 수 많은 메시지를 받았고, 외고 졸업동기생들도 코딩에 도전한다고 부트캠프에 등록하는 모습을 보았다. 개발자 취업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바뀌었고, 공채 전형이 대학 입시와 다를 바가 없이 정형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개발자로 취업한다면, 최대한 공채 전형에는 도전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만들고, 이를 회사에 어필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도전하기도 전에 입대를 해 버렸다. 그래서 전역 후 바로 신입으로 취업하는 것에 다소 애로사항이 있다.
블록체인 업계는 분명 겨울이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1천만원 안팎이었고, 이더리움은 100만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비트코인 6천만원에 이더리움은 400만원이 되었다. 루나 코인은 분명 1천원대였는데 이제는 100달러가 되었다. 가격 뿐만 아니다. Web3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투기꾼 보다는 실제로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한 바 있는 서비스 메이커들이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와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인프라도 상당히 좋아졌다.
나 입대하고 훈련소에 있을 때 Uniswap이 등장했고, 이병 때 Sushiswap, 그리고 AMM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병장이 되고 휴가에 나왔을 때, 모두가 DeFi와 NFT에 미쳐있다는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바뀌는구나, 생각했다. 본질은 지켜야겠지만, 현재의 흐름을 읽는 능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팔로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논스 클래식에서 크립토 프로젝트 리서치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크립토 업계를 보고 발전상을 보다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강력한 스킬셋(개발, 디자인, 기획 등)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일하면서, 운동하면서, 건강하게 살고자 한다. 일단 운동을 매일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식습관을 조절하면서 건강한 식단 메뉴를 찾을 것이다.
업무적으로는 서버 개발자로 돈을 벌고 싶다. 자바 스프링 개발스택에 목매달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우아한형제들 면접에서 떨어지고 하나를 깊이 파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시니어 개발자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니, 하나를 깊이 파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시야를 넓히라는 조언을 받았다. 깊이 파는 것과 다양하게 보는 것은 7:3 정도의 비율로 가져가라는 조언을 얻었다. 그래서 자바스크립트 풀스택도 공부하고, 코틀린도 공부해보려고 한다. 나도 얼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으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갖고 싶다. 그래야 나도 엄연한 개발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시간만 주어지면 난 할 수 있다. 새해에는 문제 해결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에 가서 활동할 것이다.
돈을 벌어서 열심히 투자 레터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서 나 스스로 자금을 운용하는 경험을 딥하게 쌓고자 한다. 아티클을 많이 읽고, 매주 뉴스레터를 꾸준히 쓰자. 나는 어렸을 적 회사에서 일해서 돈을 벌었지만, 아직 어린 나이니까 자금을 굴리는 것이 의미가 없고 그냥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자. 라고 생각해 경제적 관념이 부족했던 것을 반성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25살은 비록 어리지 않지만, 늦지는 않았다.
당장 오프라인 학교에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나는 통계적 언어를 바탕으로 세상 지식을 이해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능력치를 계발하고 싶다. 그러러면 대학원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일단 개발을 하고 싶다. 그래서 부족하게나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 학교는 아마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학위과정에 등록해서 병행해서 끝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비대면 과정일 경우 경희대에 계속 수학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서른 살까지 나의 중기적 목표는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리모트 근무를 하는 것이 꿈이다. 구체적으로, 캐나다 대학교(Master's)에 진학해서 경제적 걱정 없이 학업과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못해도 5억을 5년 이내에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 많이 벌면 투자이민을 갈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간, 현재와 같이 개발자 수요가 높을 때 어떻게든 시작해야 한다. 한 번 시작해서 경험을 쌓으면 그 이상의 포텐셜은 내 나름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제 튜토리얼은 끝났다. 내 삶의 바운더리를 꾸려가는 멋진 25살이 되리라 결심한다 :)
부록으로, 하기는 나의 목표를 담은 토막글을 공유한다.
Dev.
1. Kotlin + Spring 기반으로 오픈소스 참여해본다.
2. Solidity를 공부해서 컨트랙트 개발이 필요한 곳에 (익명으로) 천사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3. '21년도에 잘 한 것처럼, 한 달에 1~2회씩 기술 블로그를 꼭 쓴다.
4. 혹시나 시간이 나면 TypeScript with React 튜토리얼을 배워본다.
Non-Dev.
1. '21년도에 맛보기? 로 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헬스 루틴을 만들어 실시한다.
2. '21년도에 잘 한 것처럼, 매주 하나의 web3 플젝 리서치 리포트를 쓴다.
3. 학부 1~2학년 수준의 Calculus 교과서를 한 권 뗀다.
4. '21년도에 잘 한 것처럼, 매주 발송하고 있는 위클리 이메일 뉴스레터를 밀리지 않고 꾸준히 한다.
그러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