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다니고, 한 친구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그리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취업을 하거나 대학교를 갔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금은 마흔 후반을 지나고 있다.
14살에서 19살까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을 같이 보낸 나의 써니, 그녀들.
핸드폰에 서로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점점 전화도 문자도 뜸해지게 되었고, 간혹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며 보고 싶다고 읊조리기만 했다.
같은 지역에 살지만 거의 끝과 끝에 사는 Jh와 나는 한번 만나자고 하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보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는데 Jh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를 하다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왜 그동안 이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단톡방을 만들겠다, 조만간 한 번 보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녀들에게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안녕?.....
잘 지냈어?....
첫인사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계속 망설이는 사이에 Jh가 단톡방을 만들어 우리 모두를 초대했다.
그렇게 나의 써니. 그녀들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신기하지. 20여 년이 되도록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인데 마치 어제 만나고 또 만나는 것처럼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새삼 첫 인사를 고민했던 내가 너무 민망했다.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화려한 인사말이 아닌 안녕?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피아노를 치던 Y는 직업 군인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반장을 도맡아 하며 똑소리 나던 M은 어느새 대학생 자녀고 있고, 고등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를 고민하는 둘째 때문에 고민 중이며 PC방에 있는 셋째를 잡으러 가야 한다고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마음이 여리던 J는 회사에서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내 짝꿍 Jh는 딸 하나를 두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을 옮기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교 다닐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며,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니던 우리가 어느새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하니 신기하고 또 이렇게 잘 살고 있어 주어서 그녀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나는 이들과 꽃처럼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같이 보냈고,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니 그녀들이 아무 탈없이 잘 살고 있음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M 이 중학교 친구들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는데 이름을 듣는 순간 20여 년 전 어릴 적 그 모습이 생각이 났다. 어느 친구는 별명을 불러주는데도 아! 하며 얼굴이 생각이 났다.
이런 게 추억이란 걸까.
오랜 시간 생각해 보지도, 불러보지도 않았던 이름을 이렇게 갑자기 들었음에도 가만히 이름을 곱씹어보면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것 말이다.
이렇게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들도 누군가에게서 내 이름을 전해 듣는다면 그때의 나를 기억해 줄 수 있을까.
마흔이 넘은 우리를 세상은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를 테지만 우리 서로에게는 모습은 변했지만 아직도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부르고 싶다.
고향 사투리를 쓰는 M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일까. M의 사투리가 정겹다.
사투리를 따라 읽으면 내가 기억하는 그때 M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사투리의 매력일까.
이름들 속 궁금한 친구들이 있다.
어린 마음에 두근두근 핑크빛 마음을 처음 느꼈던 그 친구는 소방관이 되었다고 한다.
직장생활 2~3년 차쯤 우연히 메일로 연락이 되었던 그 친구는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 비해 본인은 아직 이뤄놓은 것이 없어 불안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평안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기차에서 만나 연락처를 물어보더니 결국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 친구는 처음부터 연락할 마음은 없었던 걸까.
나에게 전화를 해 다단계 판매를 권유하며 모임에 나오라던 그 친구는 이제는 그곳에서 나왔을까.
신혼집에 가전을 들이던 날, 배달기사분 얼굴이 왜 낯이 익을까 하고 보니 중학교 친구였다.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이름이 생각이 난 것인지.
그 친구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었고, 다음 날 사장님(남편)이 계셔서 아는 척을 잘 못했다며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브랜드를 보게 되면 가끔 생각이 나는 친구이다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사는 곳이 각자 다르니 우리는 8월쯤 시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8월 무더운 여름을 올해는 그녀들이 있어 애타게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M 이 먼저 사진을 보내서 우리도 각자 사진을 보냈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8월 우리가 만날 때는 저만치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만 봐도 한눈에 알아봐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J는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며 중학교 졸업 앨범 속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앨범인데 흑백 사진 속 우리는 16살이었다.
16살 그 시절 우리는 훗날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16살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그려봤을까. 괜히 코끝이 찡해온다.
밝고 예쁘고 따스했던 그리운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 사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사진 속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는데 첫째 아이가 흑백 사진을 보며 " 엄마, 독립운동하던 시절이었어?" 라며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진 속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https://blog.naver.com/wjdtntlr001/220412001284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날엔 Jh가 돈가스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해서 모두들 저녁 메뉴를 알려주었다.
나는 간장 소스에 비벼먹을 소고기 콩나물밥을,
J는 비가 오는 날에 어울리는 김치전을 하고 매콤한 닭볶음탕을,
Y는 맛있는 제육볶음에 구수한 아욱된장국을,
M은 김치갈비찜으로 외식하는 중이란다.
Y가 재밌다고 했다. 나도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저녁 준비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그녀들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오래전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기억하는 그녀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음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이번 8월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마음 한 곳에 쌓아놓고 돌보지 못해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던 추억들이 후~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닦아내니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