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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맘 May 14. 2024

19화. 육아가 가장 쉬웠어요!

그녀에게 육아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그녀는 결혼을 하여 예쁜 딸을 하나 낳았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매사에 여유가 있고 느긋하다. 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아기는 10개월간 엄마의 뱃속에서 지내면서 엄마의 그런 점을 배우며 태어난 것 같다.


책에서는 아기의 개월수별로 필요한 분유량을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먹이는 게 좋다고 하던데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그 필요한 양과 일정한 시간 간격을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아기의 개월수에 한 번에 먹는 분유량이 이만큼이라고 되어 있다면 우리 아기는 늘 다 먹지 않고 남겼고 그러면 다음 분유를 먹을 시간까지 배가 고플 것 같아, 특히나 그 사이에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응가나 쉬를 한 것도 아닌데 우는 것이 배가 고픈 게 아닐까 싶어서 또 분유를 먹이면 다 먹는 것이 아니라 또 남기게 되고 이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젖병이 순식간에 쌓이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에 젖병을 몇 번이나 씻었는지 모른다. 자주 먹이다 보니 언제 먹였는지 내가 기억하기 위해 수첩에 분유를 먹은 시간, 먹은 양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그녀의 아기는 달랐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한 번도 남긴 적이 없이 딱 그만큼을 먹고 다음 시간에 주면 또 그만큼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에 젖병도 5~6개만 사용을 해서 한 번씩만 씻으면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잠을 편히 자고 싶지만 시간마다 우는 아기에게 졸린 눈 비벼가며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할 때까지 토닥여주고 재우기를 하룻밤에도 2~3번은 해야 했다.

어디서 들으니 100일의 기적이라고, 100일만 지나면 아기가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숙면에 든다고 해서 100일이 지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 기적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기는 달랐다. 잠들기 전 정해진 분유를 먹으면 정말 기적처럼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잠을 잤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새벽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너무 피곤해서 아기가 우는 소리를 못 들은 게 아니냐고 우리가 부러움의 질투를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늘 새벽시간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분유를 먹이며 하품하던 나는 정말 부러웠다.



나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어리니 식탁이 아니라 거실에 상을 펴고 식사를 했다.

의자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는 게 불안해서 오랫동안 식탁이 아닌 상을 이용했는데, 어느 때가 되니 음식을 차려서 거실까지 오가는 게 힘들고, 거실에 앉아서 먹다 보니 다 먹은 뒤에는 바로 치우지 않고 피곤하면 바로 누워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상을 차리는 게 점점 힘들다고 느껴지면서 첫째 아이가 학교에 갈 때쯤 식탁을 사용하게 되었다.


밥상 앞에 앉은 아이들은 호기심에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거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이에 무언가가 입으로 들어가기도 하니 혹시나 뜨거운 국물에 손이라도 데일까, 매운 김치에 손이라도 닿을까 상이 다 차려지면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식사 시간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려는 우리와  거부하고 딴짓하는 아이들과의 씨름으로 흔한 말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또 먼저 아이들을 먹이다 보면 나는 식어버린 밥과 국을 먹는 적도 있었다.

그런 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어느 날 문득 혼자 남아 식어버린 밥과 국을 대하고 있는 내가 너무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은 나부터 먼저 먹고 아이들을 먹이라고 하시지만 그게 안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고 계실 것이다. 두 분도 우리들을 그렇게 키우셨을 테니까.

내 입보다 아이들 입에 음식이 들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두 분도 잘 아실 테니까, 그래도 손주들보다 나를 먼저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항상 감사했다.


그런데 그녀의 아기는 달랐다. 밥상에 앉아 절대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엄마가 밥을 주면 그것만 먹었다고 한다. 밥 한번 입에 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그릇 다 먹을 때까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명절에 그녀의 친정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는 아기가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니 집에 갓난아기가 있는 줄도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로 하셨다고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늘 밥상 앞에서 아이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던 나는 그녀의 아기가 신기했다.

[이건 국수를 먹는 것인지. 이날 남편과 나는 몇년간은 집에서 국수를 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녀는 출근을 하면서 아기를 어린이 집에 보냈는데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지인에게 대신 아기를 하원시키고 잠시만 집에서 돌봐달라고 했단다.

지인에게도 비슷한 또래의 아기가 있고 마침 친구가 놀러 와서 3~4명쯤 또래의 아기들이 있었는데 저녁을 먹기 전 간단하게 과일과 과자를 차렸는데 다른 아기들은 장난감에 빠져 간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놀기에 바쁜데 그녀의 아기는 장난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지인과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늦어진 사이 아기는 그녀 옆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졸리다고 울지도 않고 엄마가 있으니 편안했는지 그 옆에 누워서 푹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칭얼대는 아기를 재우느라 안아서 얼래고 달래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졸린 듯하여 내려놓으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아기는 안거나 업어서 자장가도 불러주고 얼래고 달래서 재우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주말 아침엔 첫째 아이가 잠투정이 너무 심해 남편과 나는 한참을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은 적이 있었다. 아기가 달리는 차 안에서는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자서 스르르 잠이 든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녀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아는 친정엄마는 딱 네게 맞는 맞춤 아기가 태어난 것 같다고  하셨단다.

아기가 4~5살이 될 때까지 머리숱이 워낙 없어서 머리를 묶은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만약 아기의 머리카락이 길었다면 묶어줘야 하는데 자기는 그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것마저도 다행이라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머리숱이 풍성하다.


그녀의 지인은 우리는 아기를 이렇게 힘들게 키웠는데, 이렇게 힘들다는 걸 느껴봐야 하는데 너무 쉽게 아기를 키운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승자의 웃음처럼 밝게 웃는다.



그녀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그녀는 곧 출산을 앞둔 사무실 동생이 출산이나 아기 돌보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질문을 하면 생각이 안 난다며 그냥 웃어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체험학습이나 소풍을 가니 도시락이 고민이 된다. 보통 도시락을 싸는 날 나는 새벽 3시 반쯤 일어나 준비를 한다. 나도 손이 느리기도 하고 손재주가 화려하지 않아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아침에 먹을 김밥까지 모두 준비하고 나면 딱 시간이 맞는다.

그래서 그날은 진한 커피와 함께  밀려드는 졸음과 싸워야 한다.


다음 주에 둘째 아이가 체험학습이 예정되어 있어 도시락을 어떻게 싸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 마침 그녀의 아이가 저번주에 체험학습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만들어 도시락을 쌌다고 해서 나는 이제껏 들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놀랬다.


아이는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으로 메뉴를 정하고, 체험학습 가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도시락을 쌌다. 딸기와 바나나를 작게 자르거나 삼각김밥 모양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그녀가 도와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아이가 스스로 만들고 마지막 샌드위치 위에 색깔 초코펜으로 예쁘게 장식까지 해두었다.


아쉽게도 아이가 만든 삼각김밥 사진은 없지만 도시락통에 놓인 샌드위치가 너무 예쁘다. 그녀는 걱정되기도 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직접 만들고, 아이가 좋아하니 그냥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는 직접 싼 샌드위치를 단짝 친구에게 한 조각 나눠주고, 친구의 도시락도 같이 나눠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날 아이의 도시락은 엄마들의 온갖 노력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나 어릴 때처럼 그냥 김밥 한 줄이면 좋을 텐데 요즘엔 도시락 꾸미기 세트까지 있을 만큼 아이의 도시락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민되는 도시락을 아이가 직접 싸고 맛있게 먹고 왔으니 아이가 얼마나 대견하고 이쁠까.

정말 아이는 그녀에게 딱 맞춤으로 태어난 것 같다.


[아이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 장식까지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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