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영화적 경험
가이드를 시작하며
코로나19로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인간과 더욱 친밀해지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영화, 드라마,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다큐까지 다양하게 제공해주는 오버더탑(OTT). 그 대표주자를 꼽자면 명실상부 '넷플릭스'가 꼽힐 테다. 넷플릭스는 인터넷망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 세계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넷플릭스는 '영화 관람의 개인화'를 위한 관람환경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영화적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영화적 경험'이라는 개념
논의에 앞서 '영화적 경험'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드문드문 쓰여온 이 표현은 명료한 정의를 갖고 있지 않은데, 나는 이를 "영화 관람 + 의미 포착"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전자는 스크린 속 영화 이미지를 보고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진동을 듣는 '지각적 과정'이다. 후자는 '영화 관람(지각)을 통해 획득한 여러 신호들을 하나의 의미로 향하도록 배열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의미 포착은 '인지적 과정'이며, 관객은 영화 속 단서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경험, 가치관, 관심사 등을 토대로 영화의 의미를 포착한다.
영화적 경험의 변화
넷플릭스와 같은 OTT의 보편화는 영화적 경험의 전형을 바꾸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존의 '영화 관람'은 상영 극장 중심이었다. DVD가 보편화되면서 극장 아닌 곳(DVD방, 집 등)에서 비디오 영화를 대여해 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이며, 언제까지나 비주류적인 관람 형태였다. 그러니까, '영화=극장'의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영화 산업은 극장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 배급과 상영의 예술적 함의'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
DVD와 다르게 넷플릭스 등의 OTT는 비주류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상황과 맞물려, 영화 산업의 판도가 인터넷 기반의 OTT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5명 이상의 지인들을 한꺼번에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놓였고, 스스로를 그렇게 북적북적한 자리에 밀어 넣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려움의 지속'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 우리는 살기 위한 몇몇 통로들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막혀버린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를 세상으로 잇는 통로를 행정 명령이 막았든, 나 스스로 막았든 말이다. 우리의 소통은 '비대면'을 지향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이 민폐가 되고 공포가 되면서, 우리는 매체를 통해 우리 사이의 거리를 건너 소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그나마 만족스러운 답변을 던져준 통로이리라.
영화 개봉이 당연히 극장에서 시작되었던 관행도 이제는 서서히 깨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승리호>(조성희, 2020)도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영화계에서도 '수입을 보장하지 못하는 극장 개봉' 대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OTT 개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면, 어땠을까?'
넷플릭스의 개인화 기능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때 가장 큰 장점은, 영화를 내 상황에 따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혹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급한 신호가 오면,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몇몇 장면을 놓치곤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 관람은 그럴 일이 없다. 혹 놓치더라도 다시 원하는 장면부터 재생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 밝기도 조절할 수 있고, 저장해놓으면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영화의 '그때, 그곳'을 언제든지 '지금, 여기'로 끌어올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며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매 쇼트를 뜯어보기 바빴던 내가, 무선 이어폰으로 영화의 소리만을 내게 끌어온 채 책장을 정리하고, 옷을 개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벤야민이 말한 '정신산만한 유희'가 진정으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영화가 소리만의 예술이 아님에도 그렇게 감상한 나 자신을 보며 어떤 씁쓸함을 느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넷플릭스로 관람할 때는 명작 영화로 꼽히는 것들 말고, 킬링타임 영화, 팝콘 영화를 주로 감상한다. 명작을 그렇게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가이드를 마치며
OTT가 영화 산업에 침투하면서 관객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영화적 경험(관람+의미 구축)은 변화의 궤도 위에 있다. 이러한 변화가 더욱 진행되면, 영화는 '드라마'와 같은 위치로 이동할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사실 '이동'을 넘어선 '전락'으로도 다가왔다.) 일상 속에서 향유되는 드라마와, 영화관이라는 깜깜한 암실에서 오롯이 그만으로 다가왔던 영화. 당신의 영화적 경험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정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