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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Jan 10. 2021

[영화리뷰] 기생충

몸부림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



 가이드를 시작하며

 영화 <기생충>(봉준호,2019)이 벌써 작년의 영광이 되었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소식, 무려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도 영화의 줄거리를  모르는 채였다. 당시에는 제목만 듣고는 <연가시>처럼 -인간 몸에 기생하는 돌연변이가 인류를 위협하는 이야기인가-싶었다. 그렇게 스토리 정보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아마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쭉 이어지는 롯데시네마였던 것 같다. 그저 황금종려상이라는 위대함만을 알고 있던 채로, 그러니 엄청난 기대감을 품은 채로, 객석에 앉았다.






 첫 번째 신과 마지막 신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가 수미상관의 변용처럼 닮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데이비드 보드웰에 따르면, 내러티브 분석에서 첫 신과 마지막 신의 비교는 매우 효과적이다.) <기생충>의 첫 번째 신을 기억하는가? 낡은 반지하 창문, 그 아래에서 wi-fi를 공짜로 쓰겠다며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우(최우식). wi-fi를 쓰려고 집안 곳곳 종종거리는 그 '행위'들, 그리고 그 '공간'을 구성하는 가난의 상징들이 기우가 처한 현실을 선명히 그려낸다.



 첫 번째 시퀀스를 포함하여 극 초반은 인물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영화가 2시간가량 관객을 즐거운 경험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중 아주 중요한 조건은 '인물의 성격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인물이 어떠한 특성소를 갖는지(character traits)를 분명히 해줌으로써 관객은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고 공감하거나,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유추할 수 있다. <기생충>은 극 초반부 인물의 특성소를 뚜렷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가령, 기정(박소담)은 냉소적이고도 꾀가 많은 인물임이 극 중에서의 말투와 문서 위조 신에서 잘 드러난다. 기우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자존감이 낮고 순박한 면이 있는, 그러나 돈에 목마른 인물임이 도드라진다. 이렇게 극 초반에 제시된 인물의 특성소는 '앞으로 인물이 어떤 결정을 내리며 어떻게 사건을 이끌어갈지'를 예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편, 마지막 신은 마치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수미상관'과도 같이,  첫 신과 유사한 모습으로 조응한다. 낡은 반지하 창문, 그 아래에서 기우는 아버지 기택(송강호)에게 편지를 써 내려간다. 창문 아래에서 와이파이를 잡으려 서성이던 그가 떠오르는 구도이다. 기우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 집'(박사장네 저택)을 사겠다며 편지를 써내 린다. 마치 몽상가처럼 부푼 그의 꿈은 여전히 가난한 공간 속에서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구성된 마지막 신을 마주한 순간, 러닝타임을 쭉 따라온 관객들은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기우는 터무니없는 꿈을 여전히 끄적이고, 관객은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저렇게 지랄발광(?)을 해도, 여전히 그 자리구나.' 이는 빈부격차를 소재로 한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와 <기생충>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지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빈부격차를 구현한 영화형식

 많은 이들이 <기생충>에 대하여 호평한 점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의 대비'이다. <기생충>에서 공간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자, 이야기 자체에 가담하는 요소이다.

 서사의 전개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1) 극 중 인물의 인지 변화에 따른 플롯, 2) 목표지향적 플롯, 3) 시간 또는 공간에 크게 의존하는 플롯이 있다. <기생충>은 위 3가지 경우가 촘촘히 엮인 서사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사가 전개되는 것은 대부분의 극영화에서 통상적으로 해당되며, 애초에 기우네 가족이 '가난에서 좀 벗어나 보자'는 목표를 가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목표지향적 플롯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공간의 대비가 플롯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우네 가족은 박사장네 저택에서는 꾸며낸 자아를 장착한다. 공간은 주인공 가족의 소위 '온앤오프'를 나누는 스위치인 셈이다. 공간은 그 자체로도 가난과 부가 대비되도록 세심하게 연출되었다. 장면화(mise-en-scene)를 구성하는 4요소 중 하나인 '세팅'에서 중요한  것 구성요소가 바로 '소도구'(세팅 속 물건)인데,  소도구의 디테일이 빈부격차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특히 반지하 집 변기에서 솟구치는 흙탕물은 반지하 가구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신으로, 시꺼먼 물이 변기에서 힘차게 분출되는 것을 막는 기정(박소담)의 모습은 가난의 처절함을 극대화하면서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오프닝 시퀀스. 가난을 드러내는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공간은 경제적 계층을 공간을 통해 시각화하고 있다. 이는 박사장네가 캠핑을 갔다가 급히 돌아오는 신에서 공간은 두드러진다. 기우네 가족이 겨우 빠져나와 맨발로 비 오는 거리를 달려 집으로 향한다. 이 장면은 롱숏(long shot)으로 이들이 얼마나 ‘내려가고, 내려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한 없이 차이나는 그들의 경제적 격차를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다양한 거리에서 보여준다. 내려가고, 내려가는 모습은 저 멀리에서, 또 가까이에서 비친다. 반지하 동네에 도착한 이들. 발목 높이까지 차오른 물이 클로즈업된다. 한편, 극에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인 '지하실'도 내려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사람의 자리가 빈부에 의해 정해진 것만 같이.




기택네 집




 


 미묘한 모티프

 모티프란, 보드웰에 의하면 '한 편의 영화에서 의미 있는 반복'을 의미한다. 소도구나 특정 색채, 혹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우리는 이를 영화의 모티프라 부른다. 모티프는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수도 있고, 영화의 형식적 측면에 통일성을 더해줄 수도 있다.



 <기생충>에서 가이드가 포착한 모티프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재물운을 가져오는) 수석'/ '냄새(선을 넘는 냄새)'/'계획(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 등. 특히 수석은 기우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부유한 친구 민혁이 기우에게 선물로 가져온 '재물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이다. 민혁의 부탁을 시작으로 기우, 기정, 기택, 그리고 충숙까지 모두 박사장 집에 취직하며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된다. 이후 기우는 수석을 지하실에 가져다 놓으려고 하고, 종국에는 그 돌덩이에 의해 머리가 깨진다. 나중에 기우는 그 돌을 한 시냇가, 다른 돌 사이에 놓는다. 이때 기우가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린 줄로 알았는데, 또 마지막 신에서는 돈을 많이 벌 것이라 다짐한다. 그래서 이 수석은 기묘한 모티프이다.



 이러한 요소들의 반복은 관객에게 반쯤 가려진 메시지를 던진다. 반복을 포착하는 것도, 그 반복의 의미를 (나름의 지각과 인지를 통하여) 구축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몫이다.

 



친구 민혁이 가져다준 수석.






 비제한적 서사 화법과 서스펜스의 구축

 <기생충>은 서스펜스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영화이기도 하다. 박사장네가 캠핑을 간 날 밤의 시퀀스(대략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지는 신들의 묶음)와  다송(박사장 아들, 정현준)의 생일파티 시퀀스는 특히 두드러진다.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하면 비제한적 서사 화법은 최고의 서스펜스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서사 화법이란, '플롯이 스토리 정보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서사 화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플롯과 스토리에 대한 설명은 곧 게시될 예정이다.) 아무튼, 비제한적 서사 화법은 관객이 극 중 인물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알도록 하는 서사 화법(narration)이다. 제한적 서사 화법은 반대로, 특정한 극 중 인물의 인지 범위로 관객의 인지 범위가 국한되는 등, 인지 범위가 제한된 경우를 말한다. 비제한적 서사 화법과 제한적 서사 화법의 구분은 상대적이다.



 그럼 왜 비제한적 서사 화법이 서스펜스를 만드는 데 유용할까? <기생충> 결말부의 생일파티 시퀀스를 주목해보자. 넓은 마당에서는 다송의 생일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외제차가 행렬을 이루며 박사장 집으로 모인다.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값비싸게 포장된 선물을 들고 부모님과 함께 입장한다. 부엌에서는 음식이 차려지고, 햇빛이 쨍하게 드는 마당에는 테이블이 펼쳐진다. 그런데, 지하실은 또 다른 세상과 같다. 가난한 자들끼리 치고 박는다. 이때 기우는 수석으로 맞아 정신을 잃고, 얼굴이 피범벅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남자(박명훈)가 지하실을 벗어나 계단을 '오른다.' 분리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두 사건의 대비는 교차편집으로 짜인다. 우리는 결국 피범벅의 남자가 1층으로 올라왔음을 아는 상태에서, 마냥 평온한 파티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일이 터질 것만 같다. 부유층에 속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관객보다 낮은 인지적 위계를 가지며, 관객은 지하실 상황을 알기 때문에 극 중 인물과는 다르게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이드를 마치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인 영화, <기생충>. 첫 번째 신과 마지막 신의 대조 / 빈부격차의 연출 / 모티프 / 비제한적 서사 화법과 서스펜스 차원에서 포인트를 짚어보았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극적인 서사를 구축해냈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본문에서 언급한 지점들 외에도 주목할만한 점이 풍부한 작품인 만큼, <기생충>이 당신에게도 충만한 영화적 경험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정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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