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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Jan 13. 2021

[영화리뷰] 밀양

당신에게 내 몸부림이 닿을 때까지

 


 가이드를 시작하며

  <밀양>(2007,이창동)의 가장 독특한 점은 살인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다. 자세히 말하면, 영화는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저 살인사건이 벌어진 상황 속에서 '복잡한 인간성의 조명'을 목표로 삼는다.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어머니 신애(전도연)를 중심으로 인간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특히 그녀가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을 카메라는 멀찍이서 관조하기에, 이별과 죽음을 통해 관객의 눈물샘을 쥐어짜는 신파 영화와 구별된다. 두번째로 독특한 점은, 원작 소설 <벌레이야기>(1985,이청준)와의 차이에서 발견된다. 영화는 원작보다 더욱 강렬하게 신애의 변화를 담아낸다. 아들의 죽음, 종교 단체의 개입을 전후로 그녀의 심리상태는 극한의 상태로 이리저리 날뛰면서 입체적으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독특한 점은, 첫번째 신과 마지막 신의 조응이다. (앞서 <기생충> 분석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첫 신과 마지막 신을 비교하는 것은 내러티브 분석의 기초이다.) 영화는 하늘로 시작하여 땅으로 끝난다. 이 3가지 특징에 주목하면서 제 60회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의 감상 포인트를 정리해보자.

 

 


초반부, 종찬에게 철벽 치는 신애






 '유괴'와 '살인사건'이라는 소재

 영화를 본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살인사건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소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살인 사건의 동기-과정-결과는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결과만을 접할 뿐이며,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것은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살인사건(혹은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유괴'사건)은 신애(전도연)의 내적 갈등, 심리적 변화를 가시화하는 서사의 동력이다. 서사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들은 신애의 심적 변화를 초래하고, 그 심적 상태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들을 잃은 뒤로, 신애는 처연하게 넋을 잃는 모습이다가_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혹은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믿는 척'하면서) 모든 것에 초연한 상태가 된다. 그 변화는 너무도 급격해서 당신을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다.



 전도연 배우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장면화(미장센)에서 중요한 요소인 무대화(staging, 움직임과 연기)에 주목하며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겠다. 신애의 '입체적 인간성'은 종교적 인간으로서 신애와 세속적 인간으로서 신애를 대조해보며 쉽게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 영화가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본인은 그러했다.)



 앞서 언급하였듯, 유괴된 아들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시퀀스 또한 인상적이다. <밀양>은 관객의 감정에 대놓고 호소하는 신파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퀀스를 구성하였다. 상당수의 상업영화가 '신파영화'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인물의 죽음, 이별을 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의 감정에 지나치게 소구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신파영화의 형식은 어떠한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극중인물의 비명, 내지는 절규에_ 세상 슬픔을 다 때려넣은 음악이 얹어져 이 장면에서 안 울면 사람이 아닌 것 같을 정도로 눈물을 유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밀양>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은 고요하다. 그 흔한 절규도 없다. 그저 힘없이 풀썩 미끄러지는 신애의 뒷모습(심지어 롱숏)에서 우리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관조하며 어림짐작할 뿐이다.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이러한 담담한 화법이 도리어 많은 생각을 일깨운다.




아들을 잃어버린 뒤 교회에서 오열하는 신애, 그 곁에 머무르는 종찬.






 원작소설과의 차이

 원작과의 차이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바로 '감독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감독이 원작의 일부는 살리고 일부는 버림으로써, 또한 새로운 서사를 얹음으로써 각색된 영화는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독창적인 예술이다. 이창동 감독은 원작<벌레이야기>와 다르게_교도소에서 범인을 마주한 뒤 '변화하는 신애'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감독이 영화에 더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범인을 본 뒤 미쳐버린 신애,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이 핵심이다. 온몸으로 하나님께 저항하는 신애. 그녀는 성경 구절에 저항하는 여러 행위들을 통하여 신에게 온몸으로 저항한다. 이하는 작년에 <밀양>을 분석한 글의 일부이다.



 신애는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훔친다. 내화면(onscreen)에는 훔치려는 행위만 드러나고 구체적인 전말이 드러나진 않기 때문에, 직원에게 절도를 걸리고도 음반 훔치기에 성공하는 반전이 만들어진다. 절도는 성경 출애굽기20장15절 -도둑질하지 말라-에 반하는 행위로, 하나님에 대한 신애의 세 번째 저항이 되겠다. 훔친 음반을 들고 기독교 행사장에 도착하는 신애. 목사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노려보는 신애가 한 앵글에 잡히며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밀양>에서 시점숏은 드물게 사용되었는데, 신애가 목사를 노려보는 것이 시점숏으로 처리되면서 그 분노가 더욱 강조된다. 신애가 행사본부에 난입하여 튼 음반에서 반복되는 ‘거짓말이야’라는 가사는 신애의 심정을 투영한 것으로, 하나님에게의 네 번째 외침이다.
 이후 신애는 한 장로를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게 하려고 유도한다. 특히 차 안에서의 키스신은 신애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다가 정면으로 전환되어 신애의 독기 가득한 눈빛을 포착한다. 부감(high angle,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화면구도)으로 신애의 상반신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하나님에게 지금의 불순한 행위를 온몸으로 드러내려는 신애의 심리를 드러낸다. 마태복음 5장 27-30절 –함부로 타인의 혼인을 파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분석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중략).....종교적 인간과 세속적 인간의 양극단을 오가던 그녀는 결국 미쳐버린다. 스스로의 고통에 지나치게 메마르다가도, 결국 터져버릴만큼 불어난 감정에 자살을 시도하고 만다. 그 감정의 격동에서 주변 인물들은 (종찬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무심하다. 그녀의 아픔은 결국 오롯한 그녀의 것으로 남는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모습은 이러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작에는 없는 사건들_) 하나님을 향한 4번의 저항들, 그리고 자살 시도 후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고 외치는 장면 모두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 내질러지는 호소가 아닐까.




거리로 뛰쳐나와 살려달라 애원하는 신애






 첫번째 신과 마지막 신

 <밀양>의 첫번째 신은 푸른 하늘을 향해 있다. 마지막 신은 땅을 향한다. 그 땅은 신애 집의 지저분한 마당이며, 그녀가 스스로 거울을 보며 머리를 자르는 공간이다. 하늘을 향해 시작한 영화는 땅을 향하며 마무리된다. 그 함의가 무엇일까? 격동하는 그녀의 심리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는 함께 생각해볼 거리이다.



마지막 시퀀스, 머리를 자르는 신애






 가이드를 마치며

 내러티브가 벌어지는 플롯공간이자 영화제목이기도 한 '밀양'. 밀양은 빽빽할 밀에 볕 양, 해가 잘 드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영어 제목은 'secret sunshine', 은밀한 햇빛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영화 제목을 밀양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 또한 재미있는 생각거리가 될 것이다. 영화는 와이드스크린을 취하고 있어 '공간'에 주목해보면 또 새로운 영화적 경험이 가능하다. 종찬(송강호)이라는 인물과 신애와의 관계에 주목하여도 새로운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찬은 늘 신애의 한걸음 뒤에 있기 때문이다.



-정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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