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마이>(Thi Mai, 2017)는 파트리시아 페레이라 감독의 코미디 영화로, 베트남의 이국적 풍경을 미장센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저 중 스페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베트남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가볍게 보기 좋은 팝콘 영화(편하게 볼 수 있는 대중 영화)이므로,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 옆구리에 끼고 볼 것!
티 마이 포스터
서사에 대하여
영화 시나리오는 뚝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보통은 로그라인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서사의 핵심이 되는 '한 문장'에서 출발하여, 이야기 가지들이 펼쳐진다. 그 문장을 로그라인이라고 한다. <티 마이>는 한 여성이 '죽은 딸이 입양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 아이의 이름이 티 마이다. 주인공 카르멘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치 딸의 마지막 살아 숨 쉬는 증표인 것처럼 티 마이를 필사적으로 데려오고자 한다. 티 마이를 데려오는 것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맹목적 목표다.
*알아두면 좋은 영화 상식* 영화 전개 유형에는 1. 인물의 인지 변화를 통한 전개(극 중 인물이 행위 도중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결정적 정보를 통해 플롯 전환점에 이르는 구조) 2. 목표지향적 플롯 3. 시간 또는 공간에 크게 의존하는 플롯이 있다. 티 마이는 두 번째, 목표지향적 플롯에 해당한다.
전형적인 인물 설정
주인공은 포스터에서 보듯 세 명의 중년 여성이다. 아래 사진의 왼쪽부터 카르멘, 마누엘, 엘비라, 로사이다. 카르멘은 죽은 딸의 입양아(엄밀히 말하면 손녀)를 데려오기 위한 여정을 떠나며, 이것이 디제시스(이야기 세계)의 중심이 된다. 그녀는 딸의 죽음 속에서 운명처럼 가진 목표 '티 마이 데려오기'를 위해 맹목적으로 내달린다. 한편, 맨 오른쪽 인물은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가정에 속한 전업 주부, 로사다. 남편한테 존중받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인물로, 하이톤의 목소리로 엉뚱한 소리를 가끔씩 뱉는다. 가운데 위치한 인물, 엘비라는 능력 있는 직장인이며 결혼에 비판적이다. 로사가 남편에 쩔쩔맬 때마다 그녀의 연약함과 잘못된 관계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포스터에 나온 유일한 남성 인물 마누엘은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비련의 남주인공이다. 단호하지만 정도 많은, 게이다.
주인공 삼인방과 마누엘
영화가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은 사실 상당히 진부하다. 특히 로사와 엘비라, 카르멘의 조합은 정말 흔해 빠졌다. 이 작품을 보며 넷플릭스 <배드 맘스>의 주인공들이 떠오른 것이 우연이 아닌 게다. 직설적인 사이다와 무르고 답답한 고구마, 그리고 어떤 중요한 문제에 처해 있는 주인공 조합. 삼인방은 또 나름의 고민과 문젯거리를 안고 있으며, 영화는 결말부에 삼인방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식이다. <티 마이>를 보면서 삼인방 각각의 역할, 특성, 각각의 인물이 처한 문제와 그 결말을 중심으로 살펴봐도 좋겠다. 더불어, 상업영화가 '동성애자'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은 어떠한가에 초점을 두어도 유의미한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국적인 볼거리로서 미장센
<티 마이>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을 볼거리로 활용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그림의 떡이 된 상황에서,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입양 센터에 신분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베트남 의상을 활용하는 식이다. 여기에 동아시아의 전통음악과도 닮은 동양풍의 음악이 얹어진다.
특히, 주인공 삼인방이 택시 기사와 잘못 소통하는 바람에 논두렁에 내리게 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쌀이 주식인 베트남의 벼농사 풍경을 미장센으로 활용하는 한편, 삼인방과 농사짓는 아낙네들의 불통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는 코믹 요소로 '불통'을 활용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아랑곳 않고 스페인어를 말하는 이들과, 스페인 사람들에게 아랑곳 않고 베트남어로 말하는 이들 사이의 소통은 만국 공용어 '바디 랭귀지'와 '눈치'로 이루어진다. 삼인방이 어떻게든 소통해보려고 베트남어 사전을 들고 어설픈 발음을 하는 것도 웃음 포인트로 집어넣은 듯했다. 크게 웃기지는 않지만, 귀엽게 봐줄 수도 있겠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하여
<티 마이>를 볼 때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영화가 베트남을 묘사한 방식이었다. 과거 서구 영화에서 아시아권은 잘 드러나지도 않았을뿐더러 단순한 볼거리로서 문화와 전통을 비하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할리우드 등 서구 영화의 아시아 묘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해당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여러 의미를 가지는데,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 향유하는 동양의 문화' 정도로 뜻이 모아질 수 있다.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인들의 입맛대로 아시아권 문화를 해석하는 것'을 가리키며, 동등한 문화로 존중하기보다는 신비로운 볼거리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때 '동양'으로 통칭되는 지역의 문화들은 고유의 특색을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로 뭉뚱그려진다. 이 경우 '한복'은 한국 문화로서 존중받기보다는 '동양의 어느 문화'로 타자화된다. 그래서 '타자화'란 자신의, 그리고 그 문화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해당 작품은 베트남과 스페인의 합작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인지 베트남의 고유한 문화가 잘 담긴 듯하였다. 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외국을 묘사한 영화를 감상할 때 오리엔탈리즘 이슈에 대해 주목하여도 유의미한 감상과 분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베트남 전통 모자 논라(Non la)를 쓰고 새참 먹는 신
*다만 '개고기'를 웃음 포인트로 활용한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쌀국수에 들어간 고기가 개고기인 줄 모르고 먹었다가 뱉어내는 로사의 반응을 바스트샷으로 잡아내었다. 반려견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겠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소재를 굳이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에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비판적 시선이 충만한 감상을 선사할 테니.
가이드를 마치며
많은 상업영화가 그러하듯 '해피엔딩'이다. 모든 인물은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사랑을 모르던 이는 사랑을 얻게 되고, 목표를 가진 이는 목표를 이루게 되고, 억압받았던 이는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해피엔딩은 언제나 진부하지만 진부함에 전제된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주인공 삼인방이 어떤 해피엔딩을 맞이했는지는 시간이 많다면 직접 확인해보라. 본문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코미디 영화를 볼 때 '무엇을 코믹 요소로 활용하였을까' 고민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오늘도 당신의 충만한 영화 감상을 응원하며 가이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