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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Apr 05. 2023

[영화리뷰] 해피 투게더 (1998)

왕가위 지휘 아래 펼쳐지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서투른 왈츠

가이드를 시작하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홍콩 배우가 있었다. 장국영. 그는 1980년대와 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사연 있는 듯한 깊은 눈빛과 아름다운 미소에, 남성적 폭력과 비극적 사랑이 담긴 영화는 대중을 끌어들였다. 가수로 데뷔해 성공한 장국영은 <영웅본색>과 <열화청춘>으로 눈도장을 찍으며 배우로서도 눈부신 길을 걷게 된다. <열화청춘>에서 그는 홍콩 남자배우로선 전례 없던 아름다운 귀공자적 이미지를 빚어냈고, 왕가위 감독은 이에 매료돼 그와 세 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얼굴에서 서사가 나온다고 굳게 믿은 왕가위에게, 장국영의 아름다움은 풍부한 서사로 다가갔을 테다. 왕가위는 1990년 가수 은퇴 후 연기에 전념하면서 <아비정전>, <동사서독>, <패왕별희>, <해피 투게더> 등의 주연을 맡았고, 2003년 4월 1일 생을 마감한다.


열화청춘 스틸컷


장국영을 떠나보내고 20주기를 맞이해 재개봉한 <해피 투게더>, 영화 가이드가 극장에서 만나봤다.




'Happy'와 'Together'는 함께 놓일 수 있을까

<해피 투게더>는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의 격렬한 애무로 시작되는 영화는 내내 아휘와 보영의 관계를 다룬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고, 이용하고, 멀어지고, 이별한다.


아휘는 묵묵히 한 곳에 뿌리내린 나무 같다. 보영은 철이 오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철새 같다. 아휘에겐 보영이 멋대로 지은 둥지들이 여럿 남아있다. 아휘는 그것들까지도 다 품는다. 다른 남성들과 어울리다 돌아오는 보영에게 매번 상처 받아도, '다시 시작하자'며 돌아오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해피 투게더 스틸컷: 함께 춤추는 보영(왼쪽, 장국영)과 아휘(오른쪽, 양조위)


'together'의 상태에서 이들은 행복과 안도를 누린다. 동시에, 언젠가는 떠나리라는 보영의 기질은 'together'의 상태에 아린 이별을 언제나 예고한다. 보영은 양손의 상처가 아물면서 아휘를 떠날 채비를 하고, 아휘는 그의 예고를 알아채곤 여권을 숨기는 유치한 방식으로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보영은 아랑곳 않고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 오지 않는다.


보영이 다시 떠나고부터 아휘는 늘 있던 자리를 떠난다. 헤어질 결심이다. 보영이 매번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돌아올 자리가 어딘지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을 때,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휘가 떠난다. 보영의 여권을 제가 가지고 있기에, 아휘는 보영이 보고 싶을 때 어디로 가면 될지도 알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처지는 뒤바뀐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며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보영이 아니라 아휘고, "Happy Together" 또한 그의 선택에 달린다.


해피투게더 스틸컷




관계의 방향

왕가위는 둘의 관계를 '순환적'으로 그린다. 순환한다는 것은,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또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방향은 택시 씬에서 시각화된다. 택시 안,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보영이 아휘에게 기댄 장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보통의 직선도로를 달릴 때처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흐르듯 지나간다. 이 순환 궤도의 구심점은 아휘다. 보영은 그 주변을 돈다. 그리고 이별 후엔, 보영도 하나의 구심점이 된다.


해피 투게더 스틸컷: 택시 안, 두 사람


두 사람이 아르헨티나까지 온 이유는 이과수 폭포를 본다는 목표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과수 폭포는 헬기에서 촬영한 듯 멀리에서 그 규모가 장엄하게 비춰지는데, 상승과 하강의 선이 눈에 띈다.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하강하는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증기가 상승한다. 이 또한 순환적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어느 순환 궤도에서 출발점을 딱 집기란 어렵다. 달리 말하면, '다시 시작하자'는 보영의 말은 사실 인사치레와도 같다. 이들 관계는 잠정적 이별의 순간에도, 다시 시작하자 말하는 그 순간에도 계속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적'이라는 관계의 방향은 <해피 투게더>에서 말하는 사랑과도 닿아 있다. 영화가 보여준 사랑은 '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가 있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현재 당신이 그곳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나,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거기에 있으리라고 느껴지는 그곳으로 향하는 일. 그리고 기꺼이, 그가 순환 궤도를 타고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더욱 영화에 가까이 빗대자면, 자신만의 욕구를 좇는 궤도를 벗어나, 그의 궤도에 맞추어 그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정지(停止)다. 그리고 보영은 아휘를 사랑한다.


해피 투게더 스틸컷: 보영


사랑을 그렇게 정의한다면, 아휘의 동료 장(장첸)도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해피 투게더 스틸컷: 헤어지며 포옹하는 아휘와 장(오른쪽, 장첸)




가이드를 마치며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은 동명의 팝송(The Turtles,)으로 경쾌하게 끝난다. 둘은 이별했고,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기에, 노래는 이별 상황과 맞물려 이질적이기보다 오히려 그 가능성과 맞물려 어우러진다. 한편, 왕가위 감독의 전매특허 '스텝 프린팅'뿐 아니라, 흑백과 컬러를 함께 쓴다는 점, 카메라를 과감하게 움직인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왜 어떤 장면은 흑백으로, 또 어떤 장면은 컬러로 담았을까 고민해보는 즐거움도 있겠다. 과감한 카메라는 지금의 감성으로 볼 때 되려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직관에 따른 과감한 연출과 섬세한 세팅은 감탄스럽다. 당신도 영화관에서 <해피 투게더>를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줄인다.


p.s.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는 <해피 투게더>를 비롯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천녀유혼>, <이도공간>을 4월 한 달간 상영한다고. 다양한 작품으로 장국영을 만나보길 바란다.



정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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