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파춥스’, 자주 들어봐서 익숙하긴 한데 발음하기엔 조금 어려운 단어이다. 어릴 적 누구나 즐겨 먹었을 것이고, 나이가 든 사람들도 자주 먹는 대표적인 주전부리가 바로 막대사탕인 ‘츄파춥스’이다.
요즘도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할 때면 눈에 잘 띄는 곳에 알록달록 고운 얼굴을 내밀며 나를 유혹하여 한두 개쯤은 덤으로 사곤 한다. 달달한 간식이 필요할 때 휴대나 가성비가 단연 돋보이는 간식이 바로 막대사탕이고 보면 ‘츄파춥스’는 우리 일상에 오랜 세월 동안 친근하기까지 한 과자이다.
요즘도 가끔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 보면 젊은 시절 그리도 즐겨했던 담배를 끊게 된 것이 이 막대사탕으로 인함이었다는 생각에 입가엔 달달한 미소가 고이곤 한다.
전주에는 완산칠봉이라는 명소가 있는데, 내가 어릴 적 이 부근에 살다 보니 힘들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이곳에 올라 답답한 마음과 울적한 기분을 위로받으며 아픈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완산칠봉은 일곱 봉우리가 있고 마지막 봉우리 직전에 소의 너른 등과 같은 형상을 한 소바위가 있는데,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정상을 목전에 두고 전주시내의 전경을 보며 잠시 쉬어 가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담배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이 소바위이다. 1984년 여름,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좌절과 자책을 떨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솔 한 갑을 사서 이곳에 올랐다. 첫 모금을 들이마시는 순간 목구멍에서는 거센 저항이 일어 캑캑거리고 콜록대는 모습이 가히 생선가시가 걸려 곧 숨 넘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물에 핑핑 도는 경험까지 하며 우여곡절 끝에 서너 대를 피우다 보니 그제야 뽀얀 연기가 기관지를 타고 가슴 깊숙이 들어갔다 다시 입을 통해 나오는 현상을 연출하게 되면서 이제 담배를 배웠다는 생각에 잠시 어리석은 희열마저 느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은 대학 3학년 때에 담배를 배우다 보니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샌 줄 모른다고, 이전에 피지 못한 담배를 몰아서 피우기라도 할 요량으로 금세 골초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 시절만 해도 아버지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방 한가운데에 재떨이를 놓고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담배를 피우셨으니 아버지 세대가 모두 열악한 환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처음 가졌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할 무렵에는 담배의 해악이 조금씩 인식되면서 담배를 피우는 장소가 방 안에서 베란다로 밀려나기 시작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담배는 여전히 낭만과 멋의 상징이면서 뭔가 고뇌에 싸인 사람의 필수품처럼 여겨져서 지금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때까지는 애연가가 나름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내가 하는 일도 TV에서 종종 보는 것처럼 자판에서는 손가락이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잘근 씹힌 담배 한 개비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건네는 담배 한 개비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일상이다 보니 담배는 나에게 끊을 수 없는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설 자리가 궁색해지면서 나도 남들처럼 금연이란 걸 몇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담배 끊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느니, 담배 끊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라느니, 죽어야 끊는다는 말들이 거짓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며 금연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좋은 핑곗거리만 쌓여가게 되었다.
2002년은 모든 국민이 기억하는 월드컵이 개최된 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담배와의 인연을 끊게 된 잊을 수 없는 해이기도 하다.
둘째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과자나 사탕에 맛을 들이기 되어 츄파춥스 막대사탕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특효약이 되었고, 어린아이들이 달콤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 집에도 막대사탕이 비상약처럼 몇 개씩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뭔가 쩝쩝거리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둘째 아이가 따라 나와 막대사탕의 하얀 막대를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끼우고 입에 넣었다 빼다를 반복하면서 연기 뿜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그 후 둘째 아이에게 주의도 주고 몰래 숨어서 피우기도 하였으나,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담배가 없으면 술을 마시면서 폼은 어떻게 잡고, 고민이 있을 때 어떤 모습으로 고민을 해야 하는지, 무료할 땐 무얼 하며 지내야 할지, 친구 간에 나눠 피우던 담배 정은 어떻게 끊을지 따위의 걱정이 해소된 지도 17년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담배를 피우지 못해서 할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구나 담배를 쉽게 끊지는 못한다. 그러나 담배에 대한 애증이 아무리 질길지라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길 수 없었나 보다.
나에게 담배와의 인연을 끊게 해 준 둘째 아이는 지금 군대에 있다. 둘째 아이는 나보다 배움의 속도가 빨라서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담배와의 인연을 맺었다. 담배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담배가 나쁘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둘째를 닮은 아이가 두 손가락에 막대사탕을 끼고 나타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