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을 받아 본 게 언제이었나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엔 예체능 과목처럼 점수를 주기 위한 과목 이외에는 100점을 받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100점을 꿈꾸지만 능력의 한계로 쉽게 얻지도 못할뿐더러 누구나 허락된다면 그만한 가치도 없을 것이다. 100점이 가지는 가치는 모두 맞추어서 대단하다는 의미보다 100점을 받기 위해 쏟았을 정성과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100점을 받으면 더 이상 아무런 말이 필요 없다. 좀 더 잘해야 한다느니, 다음에는 잘하자느니, 조금만 노력하면 되겠다느니 하는 사족의 말들이 전혀 필요 없다. 100이란 그만큼 경이롭기도 하고 완성된 느낌을 주기도 하며, 뭔가 달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한 나는 100이란 숫자와 별로 인연이 없었다.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가끔 시험을 봐야 할 때가 있었지만 꼭 100점이 필요한 시험은 아니었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험을 봐야 할 경우도 없어지다 보니 100점을 받아야 하는 부담도 없어지게 되었다. 더 이상 100점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100점의 부담은 없어졌음에도 인생에서 100이란 숫자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100일 치성, 100일 기도, 100일 불공과 같이 100일간 정성을 다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뭐든 100일 동안 꾸준히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00점을 받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다. 그렇기에 100일간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도 생겼을 것이다.
나도 100일 정성을 들인 적이 세 번 있다. 처음 100일 미사는 큰애를 위해, 두 번째 100일 필사는 둘째를 위해, 마지막 100일 프로젝트는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큰애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많이 힘들어했다.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책감과 무력감에 많이 괴로워했다. 그때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100일 새벽 미사를 시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많이 고민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일 동안 새벽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일단 시작했다. 겨울에 시작하여 봄이 되어 끝났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새벽을 열고 성당에 모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간혹 늦은 회식에 천근 같은 몸을 간신히 들쳐 메고 참여한 미사에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에게 전날 음주의 후유증을 보여야 하는 민망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 달 정도는 일어나는 것조차 무척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세상과도 같은 경건하고 엄숙한 성당에서 홀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행복도 누리게 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일을 온전히 다니지는 못했지만 100일간의 미사에 끝까지 참여했다. 그 순간은 온전히 큰애만을 생각하고 큰애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둘째가 고3이었을 때 100일 필사에 참여했다. 필사 문은 자녀를 위한 100일 기도문으로 선택했다. 매일 기도문을 적고 그 밑에 나의 기도문을 적었다. 바쁜 일상에 깜빡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다시 일어나 쓰기도 하고, 주말이면 여행지에서 쪽지에 나의 기도문만을 적기도 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필사를 하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 진정 무엇이 자녀를 위한 것인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필사를 통해 막연하게 머리에만 있던 자녀에 대한 사랑이 구체화되어 정리되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언젠가 100일 필사본을 둘째에게 전해 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 들어 100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자신이 목표를 정하여 100일 동안 매일 이행하는 것이다. 꼭 잘하고 싶은데 중도에 몇 차례 포기했던 것을 이번엔 꼭 해 볼 생각으로 목표로 정했다. 진짜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100일간 노력해 보기로 한 것이다. 100일 동안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될 수 있는 기틀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시작했다. 매일 내가 하기로 한 과제를 하였는지 단톡 방에 올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과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반강제의 동력이 생긴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숙제를 마쳐야 하루가 지나가듯이 단톡 방에 동그라미를 올리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했다. 100일 프로젝트 종료 오프 모임에 참석해서 각자 소감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모두 다 이 기간을 통해 정말 놀라운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100일이 지나 더 이상 단톡 방에 결과를 공유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내 마음의 톡 방에는 매일 동그라미를 올리고 있다. 습관의 근육을 단단히 키웠으니 잘하리라 응원해본다.
세 번의 100일 여정은 혼자가 아닌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매일 성당에서 함께 새벽 미사를 봉헌했던 사람들, 매일 필사를 하고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 매일 과제를 마치고 톡 방에 결과를 올렸던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0일을 시작하면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원했는지 생각해 본다. 100일의 간절함 끝에 바람이 이루어졌는지도 생각해 본다. 100일이 되는 날에 깜짝 쇼와 같은 변화나 결과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내심 어느 정도의 기대를 하며 시작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순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때 간절히 기도하고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졌거나 조금씩 변화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면 언제든 다시 100일 과정을 시작할 것이다. 100일간의 고된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각자의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행복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다. ‘10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기적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