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엄마

by 송재영


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 본 적이 있다. 교문을 들어서자 세상이 작아졌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모두 작아진 것이다. 운동장도, 스탠드도, 건물도, 나무와 동상도 난쟁이 나라에 온 것처럼 작게 보인다. 갑자기 거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작은 학교에 다녔나 싶다.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 맘껏 웃고 뛰놀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고 큰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다른 여느 건물과 다를 바가 없었고, 내가 거인이 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유독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건물만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가 보면 이토록 작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산칠봉 자락 아래 자리를 잡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일곱 봉우리의 정기를 받아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나의 졸업기수가 출생 연도와 같은 걸 보면 역사도 100년이 훨씬 넘은 유서 깊은 학교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형제가 같은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까지 하였다. 다른 학교로 전학이라도 가면 적응을 못해 학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고집스러운 교육열로 학군을 벗어난 이사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동창회에 가면 나의 형제들까지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아 나도 모르는 형제들의 어린 시절을 듣곤 한다.


초등학교 학창시설은 온전히 엄마와 함께 기억된다. 입학하던 날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고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처음 본 엄청 큰 학교 건물과 끝도 안 보일 정도로 넓은 운동장은 어린 소년의 눈에 신비롭고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반 편성을 위해 운동장에 줄을 서 있던 잠깐의 순간에도 자주 뒤를 돌아보며 엄마가 계시는지를 확인해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막 첫발을 내딛는 아이에겐 엄만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였다. 몇 개월은 엄마를 따라 등교를 하고 엄마와 같이 하교를 했다. 엄마도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닌 것이다.


2학기가 되면서 엄마가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그 후에도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엄마와 같이 했다. 매일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도 챙겨주고, 도시락도 챙겨주고, 비라도 오면 엄마는 우산을 들고 항상 교문 앞에 서 계셨다. 방학 때면 곤충 잡이도 같이 하고, 종이접기도 같이하고, 그림일기도 같이 썼다. 몸이라도 아플 때면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야 한다며 열이 나는 나를 업어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밖 복도에 서 계셨던 엄마다. 결석이라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학교에서 엄마의 별명은 애 업은 엄마였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엄마는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동생들을 잡고 업고 수시로 학교에 오셨다. 우산을 가져올 때도, 선생님 면담 때에도, 학예발표회에도, 소풍을 따라올 때도 엄마의 등에는 항상 동생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동생이 공부를 잘했던 이유가 입학도 하기 전에 엄마의 등에 업혀 미리 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엄마의 극성이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엄마의 등에는 항상 포대기에 싸인 아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에게 거인이었다. 아무리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엄마가 손만 잡아 주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 주었고, 추우면 따뜻한 외투가 되어 주었고, 힘들면 안아주시고, 의지하고 기대며 자랐다. 운동회에선 나와 보조를 맞추며 달리기를 하셨고, 학예회에선 나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르셨다. 엄마는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셨다.


완산칠봉 아래 누군가 꽃동산을 조성하여 봄이 되면 매년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철쭉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명소가 있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구경을 갔다. 꽃구경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꽃동산 옆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들렀다. 색을 입혀 깔끔하게 단장된 학교 모습이 조금 낯설게 한눈에 들어왔다. 학교 건물도, 이순신 장군 동상도, 생각하는 로댕 동상도, 정문도 대부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세월을 거슬러 오래전 학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회한에 잠기어 교정 앞에 한참을 서 계셨다. 나는 이방인처럼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손을 잡고 등교하는 엄마, 함께 운동장을 뛰고 있는 엄마, 정문에서 우산을 들고 서 계시는 엄마의 모습이 아련히 다가왔다. 그 속에 서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달려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어머니의 거친 손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전해왔다. 어머니와 함께 스탠드에 앉았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20년 동안을 이 학교와 함께하셨다. 그 오랜 세월을 거인으로 살아내시느라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을까.


이제 어머니는 많이 연로하시다. 전처럼 우산을 가지고 오지도, 함께 달리기를 하지도, 같이 종이접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차 조심을 하라고 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며, 몸도 혹사하지 말고 잘 쉬라고 걱정을 하신다. 이제는 젊고 힘센 만능의 엄마는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를 보호해주고 의지하게 하고 편히 쉬게 해주는 거인 어머니로 곁에 남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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