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를 만난 지 5년이 되어 간다. 서울로 전보되어 근무할 때 통기타 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처음 기타를 잡고 띵띵거릴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할 줄도 몰랐고, 이처럼 기타가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지도 몰랐다.
전주에 있는 악기사에서 통기타를 구입할 때 사장님은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건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는 걱정 반 격려 반의 응원을 해주었다. 아내는 굳이 따라와서 통기타 대금을 계산해 주었다. 아마 내가 앞으로는 악기를 구입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꼭 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을 이용해 강의를 받게 되면서 ‘도레미파’부터 시작했다. 처음 코드를 잡다 보니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이른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하고 저녁에도 남아서 나름 열심히 했다. 그해 늦은 가을에 직장에서 악기 동호회 발표회가 있었다. 통기타 반에서도 발표회에 참가하기로 해서 덤으로 묻어 단체팀의 한 명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아내에게 자랑 겸해서 공연 일정을 알려주었다.
무대에 서서 공연을 시작하려는데 낯익은 여인이 맨 앞에 앉아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아내는 사랑 가득한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며 너무 멋있었다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내는 반차를 내고 전주에서 올라와 나의 유일한 팬으로 자리를 함께 해 주고 다시 전주로 내려갔다. 그렇게 통기타와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 통기타는 외롭고 힘들 때 언제 어디서나 나를 위로해주고 함께 해주는 친구로 곁에 있게 되었다.
통기타의 실력이 더디 늘고 혼자만의 연주로 인한 지루함으로 조금씩 즐거움을 잃어 갈 무렵 실용음악 밴드를 만났다. 우석대 평생교육원에서 실용음악 강좌가 개설되어 주저하지 않고 보컬 부문에 지원했다. 교육생들은 보컬, 드럼, 건반, 일렉기타, 베이스 기타로 나뉘어 6개월간 즐겁게 밴드를 배웠다. 수업 마지막 날엔 ‘이음 밴드’란 이름으로 교육원 수강생들 앞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는 기쁨도 누렸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공연 준비를 하면서 각자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여러 명의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완성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처음 내 이름으로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떨림과 긴장감은 공연의 매력에 중독되기에 충분히 강렬했고, 지금까지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멋진 경험이 되었다.
통기타를 만나고 가장 큰 변화는 사고가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생활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고, 듣고 배우고 생활하는 공간도 특정되어 경직된 사고와 한정된 지식으로 살아왔다. 통기타를 통해 문화 예술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던 근육을 쓰게 되면 전혀 새로운 신체의 변화를 느끼며 희열을 느끼듯이 나의 삶도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나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통기타는 나에게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나를 더 넓은 세상과 만나게 한 연결고리이다. 나를 여러 번 보고 만나고 이야기했던 사람들도 나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은 나를 보면 곧바로 통기타 치며 노래하는 사람 아니냐며 알아봐 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 기타를 잘 치거나 노래를 잘 불러서 기억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젊은 시절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었던 통기타를 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속하고 있는 모임이나 자주 다니는 활동 공간에서 나의 사회적 직위나 학위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나에 대한 절대적 이미지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중년의 남자인 것이다.
기타를 메고 많은 곳을 다녔다. 요양병원 위안공연도 참여하고, 노래자랑대회 찬조 출연도 하고, 고즈넉한 한옥 정원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하고, 북 콘서트나 카페 콘서트에도 출연하고, 청춘극장에 찬조 출연도 하고, 송년모임에서 공연도 하며 오라고 하는 곳이면 거절을 하지 않고 참여했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불러 주는데 빼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누군가 단 한사람이라도 나의 노래를 듣고 위로받고 행복해 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마음이었다.
통기타를 통해 많은 사람도 만났다. 통기타 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가요를 부르는 사람, 무용하는 사람, 성악하는 사람, 판소리 하는 사람과 이를 좋아하고 배우며 함께 해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통기타는 이렇듯 넓은 세상을 만나게도 해주었지만 진짜 매력은 무대와 관중이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기타와 대화를 나눌 때면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게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이 많이 미숙하고 부족하다. 처음 ‘삑사리’ 가득할 때부터 곁에서 시끄럽다 하지 않고 유일한 청중으로 묵묵히 들어준 아내에게 고맙다. 재능이 있어 보인다며 두 번째 통기타까지 사 준 걸 보면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인정도 한 것 같다. 공연 때 와서 응원해주고 휴일 둘만의 시간도 연습시간에 기꺼이 양보해 주었다.
그러던 아내가 언젠가부터 이 길은 당신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시간이 흘러도 잘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매정하다. 10년은 해봐야 한다면서 용기를 주었었는데 갑자기 맘이 바뀐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엔 내가 쓰는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삶이 겹겹이 쌓여가는 글을 읽는 재미에 아내의 통기타 응원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