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갔다 울고 오는

by 송재영

아내가 해파랑길을 걸어보자고 한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해안선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럼 강릉도 지나네?” 어렴풋이 강릉의 추억이 생각난다. 친구와 함께 경포대에 올라 술잔을 기울이며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비친 달, 호수에 잠긴 달, 술잔에 빠진 달, 마주한 임의 눈동자에 걸린 달을 찾아보던 게 엊그제 같다. 강릉에서 근무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년 강릉을 찾는다. 강릉은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큼 언제나 다시 찾고 싶은 곳이며, 갈 때마다 즐겁고, 항상 그리운 곳이다.


짐을 대충 싸서 강릉으로 향했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강원도 방향으로는 뭐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20년이 훌쩍 지났다.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강릉시에 들어서니 해는 벌써 대관령을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 멀었다. 경포해수욕장에 도착하여 깜깜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와 강릉의 인연이 이리 오랫동안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강릉으로 발령을 받고 잠시 충격에 빠졌다. 강릉이란 지명은 내 기억 속에 있지도 않았고, 강릉에서 근무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강원도 자체가 군 생활의 안 좋은 기억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남아 있었고, 강릉 또한 선조들이 귀양살이를 하기 위해 유배되었던 곳으로만 알고 있던 때이었다. 강원도만 빼고 어디든 보내주면 가겠다고 사정을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직장 선배님이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는 틀림없이 지금의 발령을 감사해할 거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직장이란 게 그런 일로 그만둘 것도 아니고, 선배님의 말씀을 위안 삼아 강릉에 갔다.


강릉에서의 근무는 환경도 다르고 사람들의 말투도 익숙하지 않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군에서 고생했던 기억으로 강릉에 대한 선입견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몇 달은 사무실과 숙소만 오가면 강릉에 대해 마음을 열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원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산해진미란 강원도 음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유명한 산들의 빼어난 풍경과 동해의 푸른 바다와 백사장은 나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강원도 전체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관광지여서 서울 사람들이 찾는 최고의 놀이터라는 말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여름의 명소라면 단연 경포해수욕장이다. 정동진, 경포, 주문진, 양양으로 이어지는 해변은 아름답기로 최고를 자랑할 만하다. 동해바다는 해안선이 아름답고 모래가 고우며, 맑고 깨끗하다. 여름이 시작되면 해수욕장은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다. 매년 해변에 모래를 실어 나르는 광경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가게들도 새로 단장을 하고 상인회를 중심으로 환경정리에도 신경을 쓴다. 여름휴가 기간에는 강원도 전체가 피서지가 된다. 특히 주말이면 서울 사람들이 모두 강릉에 온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청춘 남녀들이 수영복 차림만으로 거리낌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진풍경은 강릉이 아니면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포의 해수욕장은 서양풍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가끔 백사장에 나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해수욕장의 젊음 속에 함께 했던 시간들은 힘든 타향살이를 버티게 해 준 청량제와 같았다.


강릉은 겨울에도 전혀 심심하지 않다. 용평 스키장은 강릉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내면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시즌권을 끊어 겨울 내내 스키를 즐겼다. 스키 동호회에 가입하여 스키도 배우고, 매일같이 회원들과 같이 스키장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조명 아래 대낮같이 밝은 스키장에서 스키어들과 함께 즐기던 야간 스키는 그곳에 함께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황홀함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스키장에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면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하강하곤 하였다. 월례모임이 있는 날이면 강릉 시내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스키에 대한 이야기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지금도 눈만 오면 백설을 가르며 내려오던 야간 스키의 추억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곤 한다.


객지 생활의 고단함을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가족들도 강원도의 매력에 빠져 수시로 찾아왔다.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왔던 것 같다. 특히 여름이나 겨울에는 일주일씩 와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강원도는 언제 어디를 가도 자연이 주는 빼어난 절경이 어느 휴양지 못지않게 아름답다.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며 사계의 온전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강릉이 나를 이끄는 이유는 자연이 전부가 아니다. 강릉에서 만난 사람들은 고향 사람과 같이 정겹고 친근했다. 그중에서도 강릉에서 만난 친형제 같은 친구가 한 명 있다. 아내와 아이들도 그 친구와 무척 친해졌다. 둘째 아이는 그 친구의 이름을 듣더니 축구선수 이름과 같다면서 진공청소기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홀아비의 쓸쓸함이 쌓여 갈 즈음이면 친구와 함께 선술집에서 삶은 문어에 소주 한잔 기울이던 추억은 강원도와의 악연을 끊기에 충분했다. 강릉을 떠나게 되었을 때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둘이서 동해, 속초, 고성을 1박 2일로 여행도 했다.


전보를 받아 강릉을 떠나오던 날, 대관령 정상에서 강릉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발령을 받아 처음 대관령을 넘었을 때의 착잡했던 생각이 났다. 마음이 울컥했다. 강릉은 지방관이 발령을 받아 올 때는 멀고도 먼 강릉까지 오게 된 자신을 한탄하면서 울고, 임직을 마치고 떠날 때는 그동안 정이 들었던 강릉을 잊지 못해 울고 간다는 유래가 있다. 나에게도 귀양지라 여기며 왔던 강릉이 마음의 고향이자 평생 휴양지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