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게

by 송재영

아내가 짐을 쌌다. 단순한 짐이 아니라 몇 개월 동안 나의 곁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곤 홀연히 떠났다. 우리는 가끔 뜻하지 않는 이별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과 집에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안일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아내의 역할,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엄마의 역할, 회사에서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직장이 한 곳에서만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전주를 기점으로 여러 지방에 다니면서 생활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하고, 아내도 직장이 있는 상황이라 나 혼자 옮겨 다녔다.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했다.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내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직 내가 객지에 가서 고생하는 것을 알아주기만 바랐다.


서울, 강릉, 인천, 청주, 남원,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아내는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용품을 준비해 주고, 새로 생활할 곳에 따라와서 숙소를 살펴봐 주곤 했다. 한번 가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동안 객지에서 생활했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다시 직장으로 갔다. 금요일에 내려오면 그간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객지에서 고생했다는 핑계로 빈둥빈둥 지냈다. 월요일엔 새벽 일찍 아내가 차려 준 아침을 먹고 주말에 빨래해서 챙겨 둔 옷가지를 들고 직장으로 향했다. 멀리까지 다녀야 하는 내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만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고열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꼬박 날을 새던 때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면서 혼자 인천으로 가버려 너무 야속했었다느니, 매일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돌아서서 울었다느니, 눈 오는 날에 하나는 걸리고 하나는 업고 얼어붙은 육교를 30분이 넘게 걸려 건넜다느니 하는 말들을 들을 때에도 그러려니 했다. 머리로는 아내의 상황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진정으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철이 없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내는 혼자 남아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입을 옷도 미리 꺼내 잘 보이는 곳에 배열하고, 세탁기와 전기밥솥의 사용법도 적어서 냉장고 문에 붙여두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요일도 적어두고, 식물의 종류별로 물주는 주기도 자세히 적어두었다.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아내는 아이들이 막 태어났을 때부터 나 없이 혼자 육아를 책임지며 직장생활을 하였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애들이 대학교에 입학을 하여 조만간 기숙사 생활을 할 예정이었으므로 돌 볼 필요도 없었다. 아내마저 없어 잔소리할 사람도 없으니 홀가분하게 자유로운 생활을 할 생각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동안 아내 눈치를 보느라고 마음껏 놀지 못한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앞으로 만날 친구들도 순서를 정해두고 하고 싶었던 것들도 적어 두었다.


드디어 아내가 집을 떠났다. 이번엔 내가 아내를 배웅했다. 항상 배웅을 받다가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허전했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실감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출근 준비를 위해 옷도 다리고 집안도 대충 정리를 해야 했다. 시간이 많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매일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매끼 식사 준비에 설거지, 쏟아지는 빨래, 창식이 밥도 챙겨 줘야 하고 음식물쓰레기도 요일에 맞게 내놓아야 하고, 화분에 물도 잊지 않고 줘야 했다.


한 달 쯤이 지나 방학이 끝나자 아이들이 기숙사로 갔다. 이제 진정한 자유를 누리리라 마음먹었다. 며칠은 친구들과 늦도록 노는데 재미를 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외로워졌다. 집에 와서 전등도 내가 켜야 하고, 밥도 해서 혼자 먹어야 하고,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 계획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노는 것도 재미가 없고 뭔가 하고 싶다는 의욕도 없어져 갔다. 무얼 먹어도 맛있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즐겁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 아이들이 오면 잠시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다가도, 아이들이 가져온 빨래도 해야 하고 식사도 챙겨줘야 하고 일요일에 각자 데려다주고 오면 난장판이 된 집안 정리에 정신이 더 없었다. 아내의 지친 모습이 그려졌다.


아내가 없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아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었는지,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지, 아내라는 위치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지. 두 달이 지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나 집안일은 조금씩 익숙해져 갔으나, 혼자 산다는 것만은 익숙해지지도 않고 더 힘들어져만 갔다.


우리는 평소 소중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곁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여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입장이 바뀌어 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진정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없던 5개월이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정말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여건만 된다면 잠시 헤어져서 상대방의 역할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내가 해 줄게”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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