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에 대한 단상

by 송재영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검은색 가루들이 잔디 여기저기에 몇 군데 퍼져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조회를 하였으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증상이 마당 전체로 번져 곳곳이 검정 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잔디 있는 마당에 산지가 5년이 넘었어도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던 터라 왜 그런 것이 생겼는지 궁금했다. 조경하는 사람이나 주택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살충제를 사서 분무기에 넣고 마스크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마당 곳곳에 방제를 하였어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노심초사 걱정만 하고 있는데 큰애가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잿빛 곰팡이 병이라고 했다. 저온에 습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면 생기는 병으로 특별한 해는 없고 그냥 두면 없어진다고 했다. 아마 여름 장마가 일찍 시작되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생겼나 보다. 또 한 번 잔디 깔린 마당을 가진 전원생활의 어려움이 지나간 것이다.


잔디 있는 마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집을 지을 때에는 전원생활을 하니 마당에 잔디를 깔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잔디를 심었다. 입주를 하고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다른 집들은 잔디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주택에 살면서 왜 잔디를 심지 않고 시멘트로 마당을 덮었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집을 짓고 입주한 첫해에 지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관 앞에도 있고 신발장에도 나타나고 심지어 거실에까지 나타나서 아내는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가곤 했다. 언제 지네가 나타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인터넷에 확인하여 보니 전원생활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지네의 출현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문제였다. 이미 겪어 본 많은 사람들의 조언대로 지네 퇴치 약을 구해 집 둘레로 꼼꼼히 뿌렸다. 이듬해까지 정기적으로 몇 회 뿌리고 나니 지네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지네를 물리치고 나니 잔디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낫질은 배우지 못했고 엄두도 나지 않아 충전식 예초기를 구입해서 잔디 깎기를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했다. 난생처음 예초기를 메고 잔디를 깎고 나니 밥 먹을 때 숟가락 들기도 어려웠다. 장마철에 비라도 내리기 시작하면 잔디 크는 모습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쑥쑥 자랐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요량이면 마당 가득 잔디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예초기 다루는 솜씨도 늘고, 잔디 깎는 요령도 생겨서 해뜨기 전이나 해가 지고 나서 한 시간 정도면 힘들이지 않고 깎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잔디로 인한 문제는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올해부터는 잔디가 아닌 풀들이 마당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풀이 군데군데 나기 시작하면서 논에 피가 올라온 것처럼 보기에 영 좋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이른 봄에 제초제를 뿌려주면 잔디를 제외한 풀은 나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다. 내년부터는 미리 제초제를 챙겨야겠다고 마음먹고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풀을 뽑으며 전원생활의 로망을 지키려 애를 쓰고 있던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곰팡이까지 생겨 한차례 소란을 치르다 보니 잔디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젠 나도 잔디를 관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네 사람들처럼 잔디를 포기하고 시멘트를 바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내는 반대라고 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잔디를 밟아보는 재미가 없으면 큰 즐거움을 잃게 될 거라고 했다. 우리 가족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마당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초록의 싱그러운 잔디가 깔린 마당을 걷는 것만으로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더욱이 잔디라도 깎은 다음날이면 이발을 한 것처럼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에 잔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지곤 한다.


아내는 아침이면 꽃과 나무에 물을 주면서 간밤에 변한 모습을 일일이 살펴보며 말을 건다. 어제는 없던 새순이 나왔다느니, 봉우리가 활짝 꽃망울을 터트렸다느니, 뿌리가 적어서 죽을 줄 알았는데 대견하게 잘 버티고 있다느니, 올해 첫 다래가 열렸다느니, 옆에 나무가 너무 커지고 있으니 내년에는 옮겨 주어야겠다느니, 이렇게 조그만 나무에서 어떻게 이런 예쁜 꽃을 피었는지 모르겠다며 연신 감탄과 칭찬이 끝이 없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출근을 해야 한다고 한마디 한다. 그제야 아내는 출근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달려 들어온다.


잔디가 있는 마당은 모임의 장소로 더없이 좋다. 특별한 날에 가족 모임이나 친척 모임, 친구들의 모임이라도 해야 하면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다. 잔디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하고, 테이블 위엔 하얀 종이를 깔고, 텃밭에서 바로 뜯은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고, 저온창고에서 가져온 고구마와 호박을 삶아내고, 한쪽 바비큐 그릴에선 삼겹살이 익어가고, 거기에 아내가 빚어 만든 막걸리까지 곁들이면 왕후장상의 밥상이 부럽지 않게 된다.

주말 아침이면 잔디 마당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도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이다. 마당 가득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바쁜 일상에 놓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다 보면 한나절 시간 가는 것도 금방이다. 창식이도 오래간만에 우리와 함께하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창식이 놀이터로도 너무 소중한 곳이다.


요즘엔 글을 쓰다가 막히면 마당으로 나가 잔디를 밟으며 거닌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멀리 모악산 자락도 쳐다보고, 전신주의 새들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나에게도 사유의 공간으로 이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사람은 가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손해를 봐야 한다. 처음 주택을 지으며 잔디를 심었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선택의 고민이 없어졌다. 앞으로도 가끔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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