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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Nov 01. 2019

다시 그 길 위에 서고 싶다(Ⅴ)

  14일째, 산티아고에 가기 위해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대성당에 갈 것인지 생각해 본다. 1시간 남짓 걸어서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대성당 앞에 나란히 서서 고개 숙여 기도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확인증을 받고 배낭을 맡기고 대성당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하며 수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미사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제대 앞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여기 있는 자체로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듯 행복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내도 대전을 둘러보고 와서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아내는 과연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다. 그 힘든 여정을 말없이 묵묵히 견디며 함께 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순례길 여정을 돌아보고 기도도 올리고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하는 은혜도 받고 아내가 그리도 원했던 향로 미사의 은총도 받았다. 


  미사 후에 숙소를 정하고 산티아고 관광을 했다. 길가 카페에서 피자에 맥주도 마시고, 가족과 친구에게 줄 성물도 사고, 다음날 피스테라와 묵시아 관광도 예약했다. 각자 1인실 방을 잡아서 이번 여정을 정리하기로 했다.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떠나자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순간들이 떠오르며 가슴에 뜨거운 감동이 출렁거린다. 


"주님은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다."     


  15일째,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버스 관광이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하고 여행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관광버스를 타고 피스테라와 묵시아로 출발했다. 피스테라는 성 야곱의 시신을 발견한 곳이고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대륙의 땅끝을 표시하는 표지석과 등대도 있다. 묵시아는 성 야곱이 성모 마리아를 알현한 곳으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성모 마리아 성당은 닫혀있었으나 창틀 사이로 안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여정을 준비하며 매일 새벽 미사에 다니면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성가정이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었다. 묵시아 여행이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다가왔다. 피스테라는 대륙의 끝에 위치하여 이번 여행의 마침을 의미한다고 하고, 묵시아는 성모 마리아가 바위를 타고 대륙에 상륙하여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고 한다.


  저녁은 숙소에서 아내와 마지막 만찬을 했다. 여정에서 만났던 노부부를 다시 만나 진실한 두 분의 신심에 감동하면서 그렇게 산티아고의 마지막 밤은 저물어 갔다. 내 삶에 이번 산티아고의 여정은 무슨 의미로 자리 잡을까? 나는 과연 산티아고에 다시 오게 될까?


"산티아고 여정의 끝자락에서 새롭게 시작한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된다."     


  16일째, 마드리드로 가는 날이다. 많은 회한을 안고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아내와 손을 꼭 잡고 건축물도 구경도 하고 아내에게 솔도 사주고 야시장에서 점심도 먹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섯 시에 다시 시내에 나와 햇볕 좋은 마드리드 광장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다시 이렇게 온전하게 아내와 이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한국의 반대편 스페인 마드리드 푸른 하늘 아래서 자유와 여유, 행복을 맘껏 충전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어떤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부터 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17일째, 이제 집에 간다. 긴 여정이 끝나간다. 호스텔에서 짐을 싸고 지하철로 마드리드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친구의 담배도 사고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창 너머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설렘이지만 타는 순간 몸이 피곤하다. 그래도 출발할 때는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로, 돌아올 때는 집으로 간다는 편안함으로 좁고 힘든 탑승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상당히 오래여서 그립다. 그간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만큼 애들도 힘들었겠지만 그만큼 조금은 단단해지고 성장하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그래서 만남을 전제로 한 헤어짐은 서로에게 더 나은 기대와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우리와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이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다시 그 길 위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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