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째, 아직 동트기 전이라 손전등에 의지해 길을 나서 일출을 보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른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야에서 단둘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처음엔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힘들었으나 점점 새벽만이 간직하고 있는 환경과 그 시간이 행복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면서 오히려 이른 시간에 떠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배낭의 무게도, 다리의 아픔도, 온몸의 고통도 점점 체화되어 가고,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산악인이 된 듯한 우쭐함도 생겼다. 가끔은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힘들게 걷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몸은 힘든데 너무 좋고 행복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길 끝에서는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그날 지나는 길에 슈퍼를 찾아 저녁과 아침 장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아내가 맡아서 했다.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별로 두려워하거나 겁을 내지 않고 일단 부딪히면서 처리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평생을 나서지 않고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며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역할만 하던 사람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곁에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직 그 사람이 변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11일째,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몸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여행길 중 처음으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곳에 와서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이런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면서 쑤시고 결리는 몸을 강한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잠자기 전에 아내가 준 감기약과 몸살약을 먹어서 그나마 이 정도인 것 같다. 아마 아내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나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도보 첫날부터 적응도 덜된 상태에서 무거운 짐과 먼 거리를 걸으면서 무릎에 무리가 와서 여행 내내 힘들어하고 있다. 그래도 내 배낭의 무게를 걱정하여 몰래 물통을 바꿔치기하며 나의 짐을 줄여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써주었다.
오늘은 아내와 보조를 맞추면서 걷기로 마음먹었다. 이전까지는 아내 생각보다는 나의 속도에 맞추며 걸었다. 가끔 같이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속도를 줄인다고 하다가도 이내 다시 아내와 거리가 멀어지곤 했다. 그래서 오늘부턴 같이 걸어 보리라 마음먹고 보조를 맞추어 몇 걸음 걷다 보면 다시 내 속도대로 가고 있었다. 다시 속도를 줄여 보조를 맞추다가 이내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보조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반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와의 보조도 이렇게 맞추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한심스러워 보였다. 아프리카 속담을 수없이 되뇌었던 하루였다. 앞으로 아내와 아들들과 어떻게 보조를 맞춰가며 같이 걸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천근 같은 몸을 간신히 세워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면 도저히 못 갈 것 같던 마음도 이내 사라지고 아내와 같이 걷는 이 거리가 다시금 더없이 행복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길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으며, 아무 말 없이 걷는 순간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위로해 주며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점심 한 끼도, 숙소 한 곳도, 마트에서 물건 하나도 서로 의논하며 웃고 즐거워하면서 정하게 되는 길이다.
"아무리 힘들고 험한 여정도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 단지 함께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어려운 것이다."
12일째, 오늘은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이틀 후 오전에 산티아고에 입성하여 정오 미사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나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임을 다시금 깨닫는 날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껏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는데 급기야 오늘 까미노에서 우리에게도 비를 경험하게 해 주신 것이다. 무게 때문에 우의를 택배로 보내 비가 오면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래도 비의 양이 적게 내려 맞으며 걷기로 했다. 쉽사리 그치지 않던 비가 마침내 그쳤다. 비에 젖은 탓에 아내가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여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아르주아에서 정부 알베르게에 입실했다.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여행 중 3번째 미사를 보게 되는 은총이다. 미사 시간 내내 많은 은혜로 감사와 감동이 가득하다. 내일 일정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여지껏처럼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리라 생각하니 크게 걱정은 없었다. 여행 중에 아이들도 한껏 성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걱정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잘하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그간 너무 많은 걱정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곧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여행도 끝날 것이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갖게 해 준 아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앞으로 우리 부부의 삶이 기대되고 설렌다. 죽을 때 왜 사랑하지 못했는지 후회하지 않도록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리라.
"앞으로의 삶도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살리라."
13일째, 전날 비로 인해 많이 걷지 못해 일찍 출발했다. 며칠간 보조를 맞추다 보니 오늘은 보조 맞추기가 한결 수월하고 자연스러웠다. 오전에는 거침없이 걸으면서 속도도 상당히 빨라졌다. 자연 경치도 너무 좋고, 날씨도 전형적인 가을 기온으로 걷기에 그지없다. 언제 다시 이런 광활한 초목을 벗 삼아 걸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면서 자신을 힐링하기 딱 좋은 날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신자임이 자랑스러웠고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주님의 자녀임이 행복했다. 여행 중 만난 사람이 신자이면 국적을 초월해서 그냥 형제자매이고, 미사의 과정도 한국과 똑같이 진행되었고, 많은 신자들이 이 순례길을 걷고 있고 나도 그중의 하나라는 게 행복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는 계획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어야겠다고 했다. 출발하기 전에 누군가로부터 미사에 빨리 줄을 서야 좋은 위치에서 미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다. 아내의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발목도 다치고 무릎이고 어깨고 성한 곳이 없게 되었다. 점점 아내의 상태는 최악이 되어갔다. 수도 없이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발을 끌다시피 해서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다. 아직도 아내는 그날의 고통을 떠올리며 기적이라고 한다. 이런 생활이 어느 정도 적응하는가 싶으니 끝나가고 있다. 여행의 종착역이 반가우면서도 이 길에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은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미련으로 아쉽다.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 과연 무슨 기분일까?
"나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이었나? 난 신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난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천주교 신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