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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l 07. 2023

60살

60살


할까 말까 고민이다. 조용하던 동창 밴드가 반별 환갑 모임을 하고 올린 사진과 영상들로 모처럼 활기차다. 주위 친구들도 환갑 행사를 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또래 친구들끼리 식사 자리를 만들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족들이 조촐한 잔칫상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아내와 같이 외국 여행을 가기도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나에겐 1년이 남아 있다. 아직 젊은데 무슨 환갑잔치를 하냐며 손사래를 치고는 있지만 여느 때와 달리 60이 주는 무게는 남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손자 손녀를 두고 편한 할아버지가 되었을 나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살아왔음에 대견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기도 하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지금이야 무심한 척하지만 그냥 지나가면 서운할 지도 모르겠다. 뭔가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서기도 이상하다.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고 난감하다. 생물학적으로나 생체적으로는 60이 되어가는 걸 실감하고 있다. 손목도 시리고 오래 걸으면 발목도 좋지 않다. 조금이라도 과하게 운동을 하면 금방 피곤이 몰려온다. 전엔 잠이 없어 힘들었는데 요즘은 머리만 대면 잠이 든다. 아침에도 눈은 일찍 뜨지만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며 늦장을 피우곤 한다. 오후가 되면 피로감에 달달한 것을 찾게 되고, 길가에 그늘이라도 있으면 잠시 정차를 하고 눈을 붙이기도 한다. 거울 앞에 선 모습이 가끔은 낯설기도 하고, 늘어나는 주름을 막겠다고 이것저것 바르는 나를 보며 어리석다는 생각도 한다.


몇 달 전엔 머리만 감으면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에 한바탕 소동을 핀 적이 있다. 머리가 빠지자 머리 감는 것마저 불안했다. 고민 고민하다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바르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빠질 나이가 되어 빠지는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렸다. 한 달 동안 지극 정성으로 발랐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하루하루 머리카락이 없어지면서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했다. 결국 먹는 약을 처방해 주면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먼저 검사를 진행하고 먹으라고 했다. 젊음을 지키기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으로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약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약을 먹어야 하는지 나이 탓으로 치부하고 빠지도록 두어야 하는지 생각이 깊어졌다. 하루 이틀 약 먹기를 미루고 있던 차에 머리카락이 점점 적게 빠지기 시작했다. 후에 생각해 보니 코로나 후유증으로 일시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 물론 요즘도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지만 겁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한차례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40대인데 왜 몸은 60이 되어 가는지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나이는 다른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로 무시하고 살았다.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신 두 분의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분이 엊그제 길을 걷다가 헛디뎌서 넘어졌는데 아픈 것보다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더 걱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가끔 사물과 부딪치기도 하고 갑자기 발이 풀려서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면서 서글프다고 했다. 곁에 있던 다른 교수님도 종종 그런다면서 나이 들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며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두 분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무채색보다는 밝은 색 옷을 선호하고, 정장보다는 캐주얼을 입고, 편한 옷보다는 스마트한 차림을 고집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동창회에 가면 내가 제일 젊어 보인다고 최면을 걸곤 한다. 어린 후배들을 만나도 또래처럼 친근하게 생각된다. 백팩을 메고,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선호하고, 술집보다는 카페를 좋아한다. 노트북으로 기획서를 작성하고 쳇 GPT와 대화를 나누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아직 젊다고 발버둥 치며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이런 착각도 50의 끝자리까지만 가능할 것이다. 철없던 시절이 다 지나가고 있다.


나에게 60은 어떤 의미일까? 긴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들러 잠시 숨을 돌리며 다시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닐까? 첫 항해는 나름 잘 마친 것 같다. 튼튼한 선박을 준비하여 정해진 항로로 제법 순탄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선박도 낡았고 항로도 미정이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나 홀로 도전이 될 것이다. 선박이 고장 나면 수리도 해야 하고, 새로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사전 학습도 필요하고, 항로도 직접 설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60년을 살아온 지혜로 잘하리라 믿는다. 60이 되어도 여전히 멋질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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