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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bag Aug 28. 2024

사람 ep 1. 직장에서의 무례한 어른

어느 날 회사에 새로운 대표가 왔다.

한 회사에 머물다 보면 터줏대감처럼 늘 앉아있을 것 같은 사람도 떠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회사에 또 금세 스며들고는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좋은 동료이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 사람이 윗사람이라면 지금보다 나쁘지만 말기를 바라곤 했다. 생각해 보면 10년 남짓 회사 생활에서 새로운 윗사람이 들어와 더 좋거나 더 나빴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비슷하게 커다란 단점이 있었고, 어느 정도의 장점도 있었다.


이번엔 새로운 대표가 왔다.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그는 존경받을만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고 사용했을 기업을 성공시킨 장본인이었다.(물론 그게 오롯이 그의 몫인지는 모를 일이다.) 몇십 년 간의 회사생활에서 그 정도 성공 1번이면 꽤나 괜찮았던 직장인이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모습을 늘 유지했다. 흰머리가 보이지 않게 염색을 했으며, 더운 여름에도 단정한 정장 차림을 고수했다. 과거에도 얼마나 성실했을 사람이었을지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속은 어쩔 수 없는 나이 먹은 꼰대였다. 말단 사원일 뿐인 나지만, 그를 대면할 수 있었던 많지 않은 몇 번의 시간 속에서 어린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에 질리고 말았다.


여기는 사원들이 기본이 안되어 있어.

한 번은 보고 자리였다. 나의 상사가 보고하고, 나는 보고자료에 참여한 일개 사원이라 옆에 앉아 있었다.


보고를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그의 입에서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의 험담을 시작했다. 그 험담은 우리 부서까지 확대되었다. “너네는 기본이 안되어있다.”, ”이 부서를 없애야 되는 것 아니냐 “, ”으쌰으쌰 하는 사람이 없다. “


갑작스레 터져 나온 험담은 걷잡을 수 없어졌고, 이윽고 그의 영광스러운 과거로 흘러갔다.

“옛날에 나는 이런 것까지 했다.”, “나의 손을 거치면 구멍이 날 일이 없었다.” 그렇게 1시간 남짓의 보고 자리는 그의 영광스러운 과거로 채우게 되었다.


상사는 남은 시간 빠르게 보고했다. 상사가 그의 질문에 급하게 대응할 때는 “말 끊지 마라”라며 막아섰다.


그렇게 누군가 미래를 위해서 밤새워 만든 보고 자료는 그의 과거로 인해 끝까지 보이지 못한 채 끝났다.


너네는 쓸데없이 사람이 많다.

또 한 번은 그와의 식사였다.

그는 종종 부하 직원들과 식사를 했다.


대표 자리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 건, 우리도 불편하지만 그도 못지않게 불편한 자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먼저 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란 생각에 꽤 괜찮은 윗사람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와의 식사 후 티타임이 이어졌다.

10명 남짓의 팀원들이 빙 둘러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우리가 너무 많아 보였는지, “이 팀은 쓸데없이 사람이 많다”는 말을 하며 탐탁지 않아 하는 말을 이어갔다. 각자가 꽤나 성실하게 일해왔던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명절이 되면 큰댁에 갔을 때 가끔 할아버지가 오시곤 했다. 큰댁 식구들은 사이가 그리 좋지는 못했는데, 명절이 되면 모였다.


그 명절은 하필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결정하고 난 뒤의 명절이었다. 마침 할아버지도 오셨고, 나의 소식을 들으셨다. 평생 나에게 큰 관심이 없던 할아버지는 내가 재수를 한다는 소식에,


“서울대 가려고 재수하나.”


여자애가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 할아버지의 반응이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질문과 의심없이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지원해준 아버지가 아직도 너무나 감사하다. 눈물이 핑 돌만큼.


대표님의 말씀, 할아버지의 말씀에 반감이 들었던 건 세대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해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존중을 바란다. 내가 봐왔던 어린 사람들도 어지간하면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어지간하면 자기 몫을 하기 위해 각개전투한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배우고 싶지 않은 어른“을 만났을 때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당혹스러움 보다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자”는 배움을 얻는 노련함이 생겼다. 그리고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지, 적어도 어린 사람에게 존경은 바라지 않지만, 괜찮은 어른이고 싶다.


아직은 내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에, 아랫사람이라도 언행을 무례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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