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에 갔고,
하필이면 어린 나에게는 너무 무겁고 준비되지 않았던 영화였다.
전쟁의 총성과 포탄 소리는 어린 내 마음에 공포만 심어주었다.
그때 할머니는 귀를 막고 버티던 나를 보고는 “이런 걸 말라고 보노. 우리 나가서 놀고 있자”라며 내 손을 잡고 영화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영화가 끝나길 기다리며 밖에 앉아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할머니의 손.
그 따뜻함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은 전쟁 영화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던 날이지만, 할머니의 손 덕분에 따뜻한 기억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언제나 힘들거나 무서운 일이 있을 때, 내게 안식처는 할머니였다.
회사 생활에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무심코 할머니 번호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전화 너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할머니...”라고 부르기만 했는데,
할머니는 모든 걸 아신 듯 말했다.
“주야, 괘안타. 많이 힘들제. 그럴수록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데이.”
숨기려 애썼던 나의 마음은 할머니의 따뜻한 한마디에 금세 풀리고 말았다.
첫 회사를 퇴사할 때도 모두가 나를 말렸지만, 할머니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셨다.
“애가 얼마나 힘들면 매일 집에서 울겠노.”
할머니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나의 결정을 존중하는 지지였다.
공무원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남들은 의심과 우려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할머니는 묵묵히 나를 응원했다.
매일 아침을 차려주고, 독서실에 가는 날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다.
모두가 “공무원 시험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 그냥 다니던 회사나 다녀라”라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말 대신 도시락으로 나를 지켜주셨다.
그 덕분에 보란 듯이 10개월 만에 합격했고, 그 과정의 8할은 할머니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내 삶의 큰 기둥이다.
할머니와 같은 시간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언젠가 그 기둥이 사라질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정신적으로 독립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세상에 내 편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내 편이 언젠가 나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그 공허함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곱씹으며, 감사함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할머니가 있어 나는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