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후기

감독 조현진

by 사원

<왕과 사는 남자> 이후 꽤 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오늘로 천 백만 관객을 돌파했고, 영화관을 잘 가지 않는다는 주변 사람들도 봤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관객수가 이미 '그 정도'라는 것을 의미했다.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극장 로비를 보니 마음이 좋아졌다. 늘 몇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운터에 나와있지 않는 직원을 기다릴 뿐이었는데.


<매드 댄스 오피스>를 본 오늘,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오늘을 기념하고 싶었다. 여성 서사 영화를 보자! 마침 극장에 좋은 영화가 걸려있었다. 조현진, 염혜란, 최성은, 우미화. 포스터에 줄지어 적힌 이름들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춤을 배우는 영화라면 <스윙키즈>를 정말 재밌게 봤다. 극장에서 봤을 때의 충격과 여운을 오래 간직했기에, 이번에도 고민 없이 극장으로 향헀다.


주인공 국희는 '독불장군' 구청 기획과 과장이다. 직장에서는 언성을 높이며 팀원들을 지휘하고 구호를 복명복창하며 불 같이 굴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딸 해리와 함께 있을 때는 숨 막히게 딱딱한 정육면체의 콘크리트 같은 사람이었다. 고사성어를 읊고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화법으로 대화를 나누며 딸은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국희의 기획과 막내 주무관인 연경은 심약하고 불안정하여 큰 소리를 들으면 울거나 공황을 겪곤 한다. 국희는 그런 연경을 탐탁치 않아했고, 국희의 적수인 총무과장에게도 찌르기 좋은 약점이었다. 사건은 기획과에서 진행하는 지역 행사 공연 초청 예술인들 페이 관련 이슈에서 시작된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오해가 빚어지고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로맨티꼬'라는 사람을 통해서 공론화가 될 위기였다. 국희는 '로맨티꼬'를 설득하기 위해 소재를 수소문 했고, 플라멩고라는 장르의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방문하게 된다. '로맨티꼬'는 원장의 남편이었기에 국희가 학원을 등록하면서 공론화는 제지된다.


플라멩고는 스페인 남부에서 유래된 전통 무용이다. 처음에는 모든 동작이 어색하고 뻣뻣하기만 하던 국희는 연경이 함께하게 되면서 재미를 느끼고 '집시'의 영혼에 물들어간다. 직장에서도 매일 야근만 시키던 상사였지만 점점 팀원들을 이해하고 합을 맞춰가기 시작하고, 딸 해리와도 화해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연경은 그런 국희의 곁에 있는 동료이자 친구이고, 조력자였다. 늘 눈치보고 소극적이기만 하던 연경도 국희와 플라멩고를 배우면서 자신감을 얻고, 국희의 조언대로 부당한 대우에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빅토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성들이 단단해지는 성장 서사는 언제나 아름답다.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국희가 웃으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분명 슬픈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계속 울게 됐다. 해리의 마음이 이해 돼서, 연경이 안쓰러워서, 국희가 가여워서, 집시 여인들의 자유가 아름답고 부러워서. 분명 스크린 속 인물들은 웃고 있는데 나는 왜 자꾸 울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면서 계속 눈물이 났다. 국희와 연경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함께 해주는 연대와 우정이 애틋했다.


영화에서는 국희와 연경의 성장 외에도 '남초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총무과장은 전형적인 중년 남자 직장인이다. 모든 상황에서 국희를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국희의 공을 가로채려고 한다. 구청장과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핵심적인 내용 없이 듣기 좋은 말로 살살 꼬여내고, 또 마찬가지로 중년 남성인 구청장은 거기에 실실대며 넘어간다. 총무과장의 곁을 지키는 '똥개' 김 주무관도 멋대로 기획과를 드나들고 연경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는 막무가내다. 회의실 대신 흡연구역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술자리에서 우정을 다진다. 역겨운 사회다. 이게 사회생활이라면 차라리 출세 못 하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는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 부분들을 눈여겨 보고 공감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도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된다. 나는 영화에서 정확히 짚고 갔다는 점이 통쾌하고 좋았다.


"추락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나는 하고싶은대로 하는 '집시'고, 아무렇게나 춤을 춰도 '플라멩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요즘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나이에 대한 강박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한 민족성을 띤다. 20살이면 당연히 대학 신입생이어야 하고, 여자 나이 26살이면 직장인이어야 하고, 30살이면 결혼을 해야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 안에 갇혀 살기엔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세상이기도 했다. 엄마 세대와 내 세대는 다른 삶을 산다. 글 한 줄로 이미지를 그려주는 세상을 엄마 때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청년 우울증'은 기성세대에게 가장 이해받지 못 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등 따시고 배부르게 키워주고 대학 잘 가고 시험 붙어서 취업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고들 한다. 무엇보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방 구석에서 아무 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나는 국희보다 해리에 가까웠다. 영화를 보면서 국희에게서 우리 엄마를 봤기에 내 눈물을 정의하기 어렵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라지만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어떻게 감히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두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다. 연극 무대 같던 옥상씬과 뮤지컬 같던 사무실씬이 특히 인상 깊었다. 세상의 모든 국희, 연경, 해리가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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