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홍수> 후기

감독 김병우

by 사원

요즘은 아니고 2주 전 쯤 시끌벅적 했던 영화

재난 영화가 아니라 영화 재난이라고 소문난 영화

국산 똥영화라고!? 당장 출동!

(그런데 당장은 좀 바쁘고 한가해지면 출동)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봤다. <대홍수>


영화를 볼 때 대체로 예고편을 안 봐서 평범한 재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거 쓰면서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예고편 봤는데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별로 평범한 재난 영화는 아니었네요? 소행성 충동이 무슨 말이야 쓰니야 제발; 근데 보통 이런 영화 후기 찾아보는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게 진짠가 싶어서 보는 사람들or안 볼 건데 남들이 어떻게 봤는지는 궁금해서 보는 거니까 결말 제외한 스토리 라인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꼬마가 엄마 깨우고 칭얼거리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아들 자인이는 평범하게 떼쓰고 엄마 안나는 친정 엄마 전화를 귀찮다는 듯 대꾸한다. 그러다 물 고인 바닥을 보고 고개를 들면 아파트 저층 창 밖으로 물이 잘박하게 차오르고 바닥까지 새어들어왔다. 회사 관계자가 데리러 갈테니 위쪽으로 올라오라는 전화를 하고 안나는 토라진 자인이 데리고 아파트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재난 영화라고 생각하면 자인이의 존재가 재난이라고 볼 수도 있긴 하겠다. 애가 말을 왤케 안 들어! 싶은 생각이 여러 번 들었는데... 아무래도 5살 아들 키우기란 원래 그런 거겠죠? 남동생 없어서 다행이다. 금쪽같은 자인이 데리고 손희조(박해수 배우)와 만난다. 이 아저씨 생긴 거랑 말하는 건 무슨 생존을 위한 인공지능인데 영화 내내 이 사람이 제일 멀쩡하고 다정하다. 30층짜리 아파트 계단 타고 올라가면서 X뺑이치는데 별안간 인류멸망 썰을 풀어주긴 하지만... 인류가 멸망한다고? 나 지금 아파트 30층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그럼에도 어찌저찌 (와~진짜 중간 내용 흐릿함. 이 모든 일이 시작하고 30분도 안 돼서 일어났으니까...) 옥상까지 갔고 헬기를 탔음. 그 과정에서 자인이 저혈당 쇼크 와서 모성애 신파도 갈기고 손희조 아저씨가 자신의 슬픈 과거도 고백하고 아파트 복도에서 출산하는 신혼부부도 만났지만... 이쯤되면 어디까지 하나 보게 됨. 옥상에서 헬기 탔는데 아직 타임라인 1시간 남아있어서 아니 여기서 무슨 얘기를 더 하시려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포함됨)



배경이 우주로 감<응?

눈 앞에서 다른 탐사선이 소행성 맞고 터짐<응?

뭘 더 개발해야된대<응??

다시 영화 시작이랑 똑같은 장면으로 돌아감<응??


그래요

재난영화가 아니라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SF 타임루프물이었음


여기까지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욕을 먹었는지도 대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재난 영화 기대하고 봤는데 우주로 가고 타임루프를 하면 관객 입장에서 당황스럽긴 하겠지... 안나의 티셔츠에는 루프 횟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생기고 초반에 나온 사건들이 복선이 되어 안나가 루프를 반복하며 해결하는 퀘스트가 된다. 냉정하게 보면 왜 굳이? 싶기도 하겠지만 신인류를 위한 인공지능 개발자의 선의를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용서가 되기도 한다. 신인류를 만든다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대의를 무시한다면 그렇게 개발된 인류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테니까. 안나는 죽어도 되돌아간다는 걸 알고,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끝없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처럼, 초반에 '살기 위해서' 무시할 수 밖에 없던 사람들에게 실컷 선의를 배풀 수 있는 게 타임루프의 장점이지 않을까.


단순히 이 영화를 망작, 쓰레기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재난 상황이라는 시작점과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해서 신인류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초기화된 지구에 인류를 재창조 한다는 도착점 사이가 너무 멀고, 그 사이에 견고한 다리를 놓아서 관객을 설득해야 되는데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회사는 '인공지능-이모션엔진-' 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외의 것을 모두 제거한다. 나는 창작물을 좋아하는 소비자인만큼 최근 무분별한 인공지능 개발과 인공지능의 예술 영역 침범에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담은 비판적 메시지에 조금은 설득된 것 같다. "이모션 엔진을 통해 신인류의 최소 집단이 완성되어야 인류 멸종을 막을 수 있다."라는 대의 명분은 꽤 그럴 듯하다. 하지만 개인으로 들여다보면 "내가 당장 아들이랑 헤어져야 하는데, 내 손으로 아들을 없애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인류가 뭐 어쨌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게 개인의 이기심이고 인류를 위해서라는데 아들 좀 희생시키는 게 어떻냐는 마음이 든다면 네 그러고 사세요~ 인류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세요~ 밖에 해줄 말이 없다. 아무튼! [무분별한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윤리적 문제점 지적]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석하고 싶다. 난 대단한 평론가도 아니고 그냥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친구랑 후기 푸는 수준이니까 그정도 확대 해석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재밌었고 추천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정도는 아니고, 생각보다 쓰레기는 아니라는 감상이다. 앞서 말했듯 문제점은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내용이 좀 뜬금없고 설정상 구멍도 많고 전개상 불필요한 장면도 많다. 집에서 본 덕분에 건너뛰기를 조금씩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재난영화는 특히 마니아층이 있다. (우리집에도 하나 있다.) 짬뽕집 갔는데 갑자기 주인장이 저 사실 김치찌개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고 수줍게 중화면 말아준 김치찌개를 내어오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그걸 먹고 "아니 주인장 미친놈이 짬뽕 달라니까 김치찌개 짬뽕을 줬다니까?" 하고 주변에 신랄하게 욕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짬뽕 시켰는데 김치찌개 짬뽕이 나왔어... 좀 희한하긴 한데 먹을만해서 그냥 먹었음... 요리는 잘 하시더라..." 하고 내일 점심은 진짜 짬뽕을 먹고싶다는 생각이나 할 수도 있다. 난 여기서 후자를 맡고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자인이가 빌런이라고 한 사람들은 죄다 싸이코패스다.



작가의 이전글영화 <지구를 지켜라!>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