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후기

감독 연상호

by 사원

애증이라는 감정은 참 역설적이다.

사랑이면 사랑이고 증오면 증오지

애증은 또 무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까? 연상호 감독님.


연상호 이름 석 자를 알게된 건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듯 2016년 영화 <부산행>으로부터다. 당시 국산 좀비영화라는 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고, 후반의 지독한 신파와 고구마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을 넘겼다. 당시 티켓값이 지금보단 양심적이었으니 가능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부산행> 안 본 사람 없을 정도였으니 화제성 하나는 인정할만 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으로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신인 감독이 아니었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였을 뿐 이미 1997년부터 꾸준하게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었다는 것 또한 그의 화제성을 더하는 데 한 몫 했다. <부산행>이 초대박을 친 후 연상호 감독은 실사 영화에만 매진했다. '애니메이션 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소재가 특이하네.' 라는 개인적인 감상(편견)은 꽤 오래 남았다. 감독 필모그래피에 나온 현재까지 공개된 실사영화 중 <정이>와 <계시록> 빼고 다 봤다. <계시록>은 아마 다음주 중으로 보지 않을까 싶다.


서론이 긴 이유는

지금부터 악플(관객으로서의 비판) 달 거니까...

그리고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도 쓸 예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영화 평평하게 본 사람 같음


제목도, 포스터도, 예고편에도 나왔다시피 이 영화는 '얼굴이 못생긴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영문 제목 The Ugly). 아버지인 '영규'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도장장인으로 유명세를 탄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다. 아들 '동환'은 노골적으로 아버지를 존경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자지간의 사이가 썩 나빠보이진 않다. 동환이 어릴 때 집 나갔다던 엄마 '영희'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영희는 4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장례식장에 찾아온 영희의 가족들은 유산을 나눌 생각이 없다는 말이나 하며 동환이 영희에 대해서 묻자 영희에 대한 비난을 하며 얼굴이 괴물 같이 생겨서 사진이 없다는 말을 한다. 영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참석한 PD '수민'은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본격적으로 영희의 과거를 파해치기 위해 조사와 인터뷰를 이어간다. 박정민 배우가 젊은 영규를 연기하면서 과거에 대한 회상 장면들이 나온다. 영희의 얼굴은 철저하게 숨긴 채 영규와 영희가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는지, 영희가 어떻게 죽었는지까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얼굴이 못생긴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흥미를 끄는 요소가 된다. 보지도 못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못생긴 게 뭐 어때서? 같은 생을 하게 되고 '못생긴 얼굴'이 시각 장애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현대 사회에, 2025년에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는 불쾌하다. 이것까지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람 하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누군가는 그 못생겼다는 말을 들으며 '영희'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전자에 속하는 관객이었다. 이 성향이 왜 불행이냐면 못생겼다고 비난 받는 '영희'에게 몰입하여 주변 인물과 사건에 설득되지 못 했다. 영희가 죽은 이유 또한 못생겼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내가 죽을 이유가 된다니. 너무 기구하지 않나. '못생김'이 주제인 영화에서 '못생김'이 주제인 것을 납득하지 못해서 비판하는 관객. 좀 웃기긴 한 듯...


영희를 죽인 것은 남편인 영규다. 영규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영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길이 없다. 시각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영화에서는 보통 얼굴을 더듬어보는 장면이라도 있는데 일부러 넣지 않은 것 같다. 영규는 영희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모른 채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속았다'고 표현했다. 둘의 결혼을 부추긴 사람들은 자신을 멸시하고 기만한 것이고 영희조차 그들과 한 통 속이라고 생각하며 격분한다. 그리고 모종의 사건 후에 영희를 죽인다. 응? 에이 설마. 다른 이유가 있겠지. 없다. 그냥 정말... 나는 살면서 장님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무시를 받았는데 너조차도 나를 무시하고 속였구나! 같은 뉘앙스로 분노하며 죽였다. 시각 장애인으로 당한 차별과 멸시로 인한 열등감, 자기 연민이다. '네가 이해 못 하면 넌 기생충 같은 놈이 되는 거야.' 영규의 살인은 관객을 설득할 의도도 없어보인다. 감독은 관객을 악인으로 만들고 각자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바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영희의 장례식까지 찾아와서 유산에 대한 얘기를 하는 몰상식한 가족들, 영희를 따돌린 이야기를 하며 여전히 비웃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옛 공장 직원들, 그리고 사장 백주상. 노골적인 악인으로 묘사되는 영희의 주변 인물이다. 영화에서 영희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영희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얼마나 못생겼길래 저래?'


마지막에 영희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게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된다. 차라리 공개나 하지 말지. 영희의 사진을 보고 관객은 각자의 결론을 낸다. 영화 두 시간 내내 못생겼다는 이유로 수모를 당한 이야기를 해줬건만 또 얼굴에 대한 평가를 낸다. 여기서 한 층 더 깊게 들어간다면, 결국 관객도 극중 악인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이 영화는 아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인, 설득력 없는 살인자의 추잡한 내면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당신도 똑같이 영희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지 않느냐? 같은 흐름을 의도한 것 같다. 와~ 뭔 소리지? 억빠다. 피의 쉴드를 치자면 그런 장치까지 설계한 대 감 독. 이라고 억빠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두 시간동안 정떨어진 관객(me)한테는 소용이 없다. 아내를 죽인 남편, 그런 아버지의 죄를 또 덮어주려는 아들. '자신이 혐오하던 아버지를 닮음'이라는 클리셰적 요소를 이렇게 성의없이 넣을 줄은 몰랐다. 결말 임펙트를 영희의 얼굴로 실어버린 탓에 다른 모든 요소와 캐릭터의 서사가 힘을 잃었다.


슬슬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 원래 불호인 사람들은 불호 후기 찾아보면서 공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 후기가 언젠가 누구에게 즐거움이 되기를. 우선 미숙? 지숙? 누구더라. 영희가 시다하던 재봉사에 대해서다. 재봉사는 자식들 앞에서 자신이 강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토로한다. "내가 강간 당한 걸 말했기 때문에 마음씨 착한 영희가 대신 나서다가 사장에게 살해당한 걸지도 몰라. 나 때문이야." 라는 맥락으로 백주상은 나쁘고 영희는 착하다. 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좀 에러지 않나? 적어도 자식들이 곁에 있으면 안 됐던 것 같은데. 그럼 또 PD한테 따지는 씬을 못 넣었겠지? 와 진짜 하고 싶은 걸 위해 다른 건 염두에 두질 않네. ...라고 할 뻔~ 두 번째는 신현빈 배우의 목소리다. 목소리 톤이 특이하기 때문에 딱 들어도 알 사람은 안다. 누군가는 배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못생김'이라는 영희의 특성에 몰입하지 못 한다. 적어도 얼굴을 숨기는 캐릭터라면 목소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를 쓰는 성의라도 보였어야 하지 않나 싶다. 세 번째는 감독의 의도로 관객을 끌고 가기 위한 영화 전체의 흐름이다. 주변 인물들이 모두가 못생겼다고 하는데, 하다못해 처음 보는 규칠이도 얼굴 안 보는 게 낫다고 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다른 얼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입을 모아 끔찍한 얼굴이라고 했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입니다. 님도 영희 얼굴 끔찍하다고 상상했죠?" 같은 의도를 품어내기엔 '여기가 도착점입니다.' 라고 써있는 곳 주변으로 도착점이라는 푯말 든 사람들 우르르 서있으면 당연히 '아, 저기가 도착점이구나.'하고 저벅저벅 걸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느꼈다. 적어도 정영희의 외모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없어지는 거니까.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던 영화는 깊게 생각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알 바냐? 하고 대충 내가 까먹지 않을만큼의 감상만 메모하는 식인데 뭐 이렇게 말이 길어졌을까. 역시 난 연상호 감독과 끈질긴 애증 관계인 듯... 내일 모레 쯤 <계시록> 보고 또 한 바탕 악플(관객으로서의 비판) 달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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