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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Apr 24. 2020

D-DAY / BYE, KOREA


 어젯밤 마신 커피가 디-카페인이 덜 된 건지, 나도 모르게 엄청 떨리는 마음이었는지 잠에 빠지지 못했다. 늦게까지 남은 짐 정리를 하다가 세 시쯤 자리에 누웠는데 피곤한 몸과는 반대로 정신은 똘망똘망. 잔뜩 무거워진 정신인데도 자꾸 해야 할 일과 하지 못한 일만 떠올라서 더 잠에 들지 못했다.


버림의 육체적 고통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서 남은 가구를 내놔야 할 텐데. 8시부터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민폐니 피해야 하고, 동생 출근하기 전에 같이 옮기려면 일찍 움직여야 하는데. 얼른, 제발. 잠아 솔솔 와라. 나 일어나서 할 일이 너무 많아.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허덕이다가 얼핏 잠에 들었다. 밝아지는 창문 밖 세상에 득달같이 울리는 알람으로 그나마도 정말 얼핏.

 3인용 소파와 슈퍼-싱글 사이즈 매트리스, 렌지대와 행어 등 남아있던 가구라 하는 것들을 엘리베이터 출근 러시 전에 모두 날라야만 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잠옷바람에 어설프게 패딩만 걸치고 8인용 엘리베이터에 가구를 실어 내렸다. 침대가 엘리베이터에 잘 들어가지 않아 낑낑대고, 현관과 계단을 20년 차 택시기사에 빙의 해 끌고 내려갔다. 낑낑대면서도 졸음이 가득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찌나 우습던지, 차갑게 앉은 아침 공기 안에서 숨죽여 낄낄댔다.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정리해서 겨우 집을 비워냈다. 약 1주간 집을 정리하며 내가 정말 슈퍼 맥시멀 리스트라는 깨달음과 (새삼스럽다) 비워내는 결정은 어렵지 않으나 버리는 움직임이 정말 힘들다는 현실이었다. 이제부턴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는 맥시멀 리스트가 되어 야지. 임대자와도 좋은 마무리가 하고 싶어서 쿠키세트를 사다가 인사드리며, 아름다운 가게 택배에 관해 부탁했고 덕분에 좋은 마무리가 됐다. 좀 어색하고 쑥스러워도 인사는 제대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직원이 코드 블루

 웬일로 환송을 자처하는 ‘동생이’를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동생의 반차에 맞춰 공항으로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적당히 정리하고 짐을 들고 나서는데, 다시 들어도 가방이 너무너무너무 너~무 무거웠다. 처음 계획했던 캐리어 1 배낭 1 은커녕 캐리어 1 기내용 캐리어 1 배낭 1을 들고 (실은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 지하철을 환승하며 가기에 내 관절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음을 단 두 걸음에 깨닫고 공항철도를 탈 수 있는 김포공항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의료진의 권유에도 코로나19 검사를 거부해서 확진을 받지 못한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교도로 병원과 인근뿐 아니라 예배, 결혼식 등을 다 참여하며 온 사방팔방을 헤집고 다녔다는 뉴스를 들으며 공항까지 이동했다. 도착해서 입국 안 되면 어쩌지. 한국 너무 무서운 나라가 되어간다.

 동생과 공항철도에서 엄청난 타이밍으로 만나 공항으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콴타스에서 표를 샀지만 공동운항 편으로 아시아나를 이용하는 비행기였는데, 내 서비스 기준이 너무 높은 건지 요즘은 아무나 입사하는 건지 아시아나 서비스는 정말 별로였다. 내가 항공권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음 엄청 당혹스러울 뻔했다. (일단 콴타스 티켓에도 공동운항 편 명도 없었다. 다정하지 못한 것들. 생각해보면 대한항공이 이런 걸 잘했다. 사실 구입한 사람이 알아서 하는 건 맞지만, 질문하면 제대로 알려 줄래?)

 그중 최악은 체크인 카운터 직원이었다. 키오스크를 통해 셀프-체크인을 마치고 짐만 부치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었는데, 그 짧은 업무에도 그 직원은 아시아나의 인상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무성의한 데다 무례했다. 화물칸에 부칠 캐리어를 들어서 놓으니 29.6kg였다. 짐을 다 싸 놓고 들어 봤을 때 심하게 무거워서 무게 제한인 30kg가 넘을 까 봐 걱정했는데 어쩜 이렇게 딱 맞췄는지 웃음이 났다.

 옷만 넣었는데 30킬로야. 동생과 마주 보고 ‘우와’ 하며 웃는데, 직원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손님. 돈 내야 돼요. 23킬로까진데 넘어서 돈 내야 돼요”라고 했다. 정말 ‘돈 내야 돼요’라고 했다. 서비스 언어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너무 어이없는 말이지만, 어쨌든 요는 붙어있다. 직원의 말투와 표정은 내가 돈도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내가 내 화물 무게 제한은 30kg까지로 알고 있다고 말하자 쳐다보지도 않고 “콴타스예요?” 말을 던졌다. 내가 “네”하고 대답하니 “그럼 맞아요” 하고 저 앞에서 좀 있다 가세요. 하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순간에 나와 눈 한 번 맞추지 않았다. 공항은 너무나 한산했고,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 평화로운 체크인 카운터에서 직원은 한순간에 나를 진상 고객 인 냥 만들었다. 그저 짐만 부치면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그리워지겠지.

동생과 직원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을 하며 배기지 클레임을 기다리고, 요기를 하러 푸드코트로 갔다. 공항은 이상할 정도로 한산한데 어수선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초계 비빔국수로 정했다. 이 새콤달콤함과 매콤한 고추장 양념. 적당히 부드러운 닭고기와 잘 삶아진 면. 너무 맛있었다. 곧 생각날 것 같아.


제 코가 석자라 밴댕이 소갈머리

 이번 오스트레일리아행을 결정하고서 주변에 알리면서, 유난히 걱정을 많이 받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에 외면하고 있는 걱정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서 인지 그 모든 걱정들이 유난스럽게 들렸다. 그저 긍정적인 말과 응원. 잘 다녀와, 널 믿어 같은 내 입맛에 맞는 말만 듣고 싶었나 보다. 준비하며 불안함을 갖고 싶지 않은 생각에 이런저런 걱정과 염려의 마음이, 경험의 말들이 귀찮은 간섭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조금 지나니 금방 부대꼈던 마음에 후회가 뒤덮였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감사해 코 끝이 찡해 왔다. 겸양의 예절처럼 이별이나 새로운 시작에 앞서 표현하는 섭섭함의 예절이 있는 걸 텐데, 그걸 헤아리기에 마음 공간이 너무 작아져 있었다. 한마디로 제 코가 석자라 밴댕이 소갈머리였던 거지. 한 걸음만 물러서서 다시 보면 좀 더 넓은 시선을 가질 수 있는데 조급하면 자꾸 잊는다. / 19FEB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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