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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Apr 24. 2020

DAY+1 / HELLO, SYDNEY

 

(내가 아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항과 비행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비행기가 힘들다고 말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여행이 좋아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항과 기다림의 연속인 답답한 비행을 참는 사람이다. 비행기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제일 큰 문제는 잘 수 없다는 거다. (이게 내가 비행기를 싫어하는 제일 큰 이유이다.) 그래서 비수기의 여행을 선호하고 탑승시간과 비행시간 내내 나를 견디게 할 아이템을 단단히 준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시드니로의 비행은 10시간 장거리로 시드니 행을 결정하고 난 이후 날 제일 긴장시킨 부분이었다.


자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동생과 안녕하고, 입국심사를 거쳐 주문해 놓은 면세품을 픽업하고 카카오 뱅크 체크카드를 이용해 라운지를 이용했다. 라운지에서 간단한 과일과 와인을 몇 잔 마셨다. 근 일주일 동안 일하며 짐 정리를 하느라 체력적으로 소모가 심했는데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불면의 2일을 겪어서 가능한 한 비행기에서 자고 싶었다. 새로운 출발을 향한 발걸음보다 지금 당장의 피로를 우선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컸다. 천천히 와인을 마시고, 게이트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내용 캐리어에 면세품까지 더한 짐이 있어 공간에 대한 부담이 컸다.) 다행히 풀-북이 아니라 사물함은 여유로웠고, 천만다행으로 옆자리가 비어 있어 훨씬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말이 훨씬 편안한 비행이지 좋았던 건 아니다.)


닭장 속에 들어온 기분이야

 비행 전에 오뎅에게 징징대며 카톡을 보냈다. ‘난 이제 닭이 될 준비를 마쳤어. 닭장 속에 들어온 기분이야. 이륙하고 나면 밥 줄 거고 좀 있으면 불 끌 거고 그리고 또 밥 먹으면 내리겠지. 왜 워프는 개발되지 않는 거야? 연구원님. 일해. 워프 하는 물약을 개발해줘. 마시고 나면 시드니 공항 벽난로로 이동되는 거야. 검댕은 좀 묻겠지만, 그 정도야 뭐 어때. 빨리 나오지 않으면 다음 워퍼한테 깔려버릴지도 모르겠다. 한 번 그렇게 되면, 그 위로 막 사람이 쌓이면, 굴뚝청소가 되는 건가?’ 잠이 부족해서 좀 미쳤다. 재밌어해 줘서 고맙구나, 베프여.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고, 바퀴가 떨어진 후 안정권에 접어들자 승무원들이 부지런히 카트를 준비해 식사를 나눠주었다. 메뉴는 치킨 파스타 또는 쌈밥. 내가 있었던 구역을 담당하던 건 현지인 승무원이었는데, 그분의 ‘쌈밥’ 발음이 진짜 너무 귀여워서 쌈밥을 먹었다. (사실은 한식을 먹고 싶었다.) 야무지게 쌈을 먹고 와인도 한 잔 달래서 마셨다. 에티켓을 제대로 못 봤는데, 시라즈라고 쓰인 레드와인은 진짜 맛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와인이겠지? 하는 마음에 신나서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가면 매일매일 들이부어주겠네! 하하하하.


in the airplane

 비행기에서 책 읽다가 일기 쓰다가 계획 쓰다가 잠을 청하다가 좀 졸았는데 자꾸 팔 저려서 깼다. 그래도 옆 자리가 비어 있어서 아빠 다리도 할 수 있다. 비행 중에 the Sunburned country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기를 읽었다. 유명 작가 빌 브라이슨의 책인데 시니컬한 어조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애정이 없는 듯 있어 재밌다. 읽으면 읽을수록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5시간은 어떻게 버텨 냈는데 남은 시간이 아득하다. 이때부터 두 번째 기내식 나오기 전인 3시간 정도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장거리 치고 꽤 잘 견뎠다. 두 번째 식사는 에그 스크램블을 먹었지. 대빵 짜다.


after landing

 신기한 입국 - 짐을 먼저 찾았다..? 뭐야…? 그냥 이렇게 내 비자 승인인가요? 일을 되게 쉽게 하는 거(안 하는 거) 같은 건 이민자들이 워낙 많아서 인가요? 나오자마자 보이는 데서 통신사에서 유심 구입했는데 돌아서서 보니 통신사 직영이 아니더라. 그래도 뭐 사기도 아니고- 엄청 손해 본 거도 아니니까 Never mind.  

첫 플랫화이트의 기억

오스트레일리아 커피의 상징인 플랫 화이트를 한 잔 사서 공항 의자에 앉았다. 주문하면서 이름을 묻길래 한국 이름 그대로 말했는데 음료를 받고 난 뒤 리드를 보니 ‘Hannah’라고 써줬다. 그래 이게 내 이름인가 보다.

 Hi, I’m Hannah from South Korea.

 

 무지개 빛 시드니 공항 코드 앞에서 사진 찍고 잘 도착했다고 메시지 보내고 택시를 타러 이동했다.

 여기는 차선이랑 운전석이랑 다 반대방향이었다. 낯선 가로수와 식물들. 나무가 다른 게 제일 신기해. 건물이 낮고 유럽이랑 미국이랑 섞인 비주얼인데 조깅하는 사람이 많이 보여서 인지 여유가 더 느껴졌다. 뉴욕이나 시카고 보다 더 내 타입이라고 느껴졌다.


 나무가 많아. 그린 그린 해. 초록보다 진한 다채로운 그린들. 공원도 많고 햇살도 좋고 구름도 큼직 큼직하다. 첫 숙소에 맞은편에 차를 세운 택시 아저씨가 무단 횡단해서 건너가라고 했다. 내가 불법 아니냐고 괜찮은 거냐고 묻자 택시 아저씨가 괜찮다며 아이에게 말하듯 차 잘 보고 잘 건너라고 다정하게 얘기해줬다. (그저 웃지요.) 에어비엔비 호스트인 잭과 인사를 하고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잠에 들었다.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차가 없는데 jet lag인 건가. 아직도 부족하다. / 20FEB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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