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있는 방자함

사춘기딸의 특권

by 연두

"어린 시절의 방자함이, 가장 만만한 것 가운데 하나인 말을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중에 나왔던 글이다.


내 딸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딸도 사춘기가 되며 달라졌다.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그녀도 변했다. 무엇보다도 말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용과 말투 어느 것 하나 모나지 않은 것이 없다.


짜증과 불만 섞인 말투, 부정적인 말들, 타인과 상황에 대한 비난 등 뾰족하고 날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쁜 말로 나를 감동시키던 그 작은 아이가 어쩜 이렇게 변할수가 있는지.


무조건 “아니 ...” 로 시작하는 말머리,

못마땅할땐 “어쩔!”,

불만이 있을땐 “내가 왜?”, “왜 나한테만 그래? ”,

하기 싫을땐 “굳이?”

뭘 물어보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나마 대답을 하면 다행이다. 대답을 안 하기 일쑤고, 으레 삼세번은 기다려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정도다.


당황스럽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녀는 사춘기니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나는 말 한마디와 쏘아붙이는 말투에 기분이 상하고 만다. 억지에 가까운 무논리에 휘둘려버리고 언쟁을 하기 일쑤다.


큰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며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 같았다. 미성숙한 존재를 품어주기에 나는 여전히 부족할걸까.


그러다 황현산의 책에서 저 글귀를 만났다. 가장 만만한 것이 '말'인데 저 오만방자한 시기에 말을 곱게 할 리 없다는 글이다. 살면서 내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그에 비하면 입안에 혀를 굴리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다 큰 어른들도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말을 하기도 하고, 상황에 상관없이 험한 말을 일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자 어려운 일인것 같다. 내맘대로 할 자유가 큰 만큼 쉽고, 대신 그 자유로움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이제 막 어린이 티를 벗고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전두엽이 미성숙하다는 사춘기, 어디선가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게 절제력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말을 예쁘게 해주길, 조금 참아주길 기대한게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인지. 뒤늦게 또 아차싶었다. 무분별하고 의미없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스스로 자처해서 가슴에 새긴 것도, 그리고 상처를 받았다고 여긴 일도 참 부끄러웠다.


어쩌면 방자한 말은 사춘기에겐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권리라기 보다 그때이기에 허용되는 특권이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문제점이 아니라 이해해 줘야만 하는 특성이라고 해야하려나.


언젠가는 사춘기가 끝날 것이다. 나도 그랬고 모두가 그랬듯 우리는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면 흑역사라 치부한다. 그시절 했던 과한 행동과 말들, 옷차림, 어른 행세 등은 낯부끄러운 기억들이다. 그렇지만 그땐 원래 다 그렇지 라며 또 이해가 되는 추억들이다.


내 딸도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이다. 결국 사춘기도 지나갈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흑역사를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 내게 미안해할지도... 혼자 조용히 상상해본다.


나는 여전히 서툰 엄마다. 배우고 노력해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 언제라도 또다시 딸아이의 날카로운 말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부르르 떨지 모르지만, 이제는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그리고 이렇게 딸도 나도 성장하게 될 것임을.



너의 특권도 사랑할게


#황현산 #사소한부탁 #사춘기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