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춘기딸과의 이별 연습

by 연두


그녀는 20분째 드라이를 하고 있다.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 우리 집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면서 앞머리가 마음대로 안된다고 짜증을 내는 그녀. 못 들은 척 아침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나. 물통을 가방에 넣어두고 방문 앞을 서성이다 "이제 나와서 밥 먹어!" 소리쳐 부르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기어코 방문을 열고 늦었다고, 이러다 밥도 못 먹겠다고, 그만하고 나오라고 말을 하고 만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이쯤 되면 당당하다.



그러길래 왜 늦게 깨웠냐고 도리어 소리를 빽 지르는 그녀.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반바지를 떡하니 입고 있는 것이 또 눈에 들어왔다. 이번 주부터 추워지니 긴바지를 입으라고 말했건만 그 말 역시 그녀는 듣지 않은 것이다. 참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잔소리할 거면 나가라고, 요즘 다 반바지 입고 다닌다고, 긴 바지 입는 애가 어딨 냐고, 엄마는 꼰대라고. 내 한마디에 열 마디의 꼬리가 달렸다. 하...



그냥 참았어야 하는 건데 나도 모르게 몇 마디 덧붙였다. 당연히 그녀도 참지 않았다. 결국 우린 둘 다 감정이 상하고 말았다. 그녀는 현관문을 쾅 닫고 학교에 가버렸다.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부쩍 날카로워졌다. 밥을 한가득 넣어 불룩해진 볼로 입술을 오물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아이 같고 사랑스러운데, 그 입술의 주인은 더 이상 고운 말을 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신발을 벗으면서 “엄마! 엄마!” 부르고, 책가방을 풀기도 전에 “있잖아, 오늘 학교에서 슬하랑 지유가......” 하면서 하루 동안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풀어놓던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말수가 부쩍 줄었고, 나보다 친구와의 통화시간이 늘어났다. 방문을 닫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섭섭했지만 이해했다. 사춘기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큰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혼돈을 지나오면서 얻은 것이 그거였다. 서서히 멀어지는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가슴 정중앙에 큰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고 공허했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지만 한때는 내 것이라 믿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들이 가슴까지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진 어쩌랴. 그저 버티는 수밖에.


아무리 복닥거리는 마음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밥시간 앞에선 뒷전이다. 당장 오늘 저녁은 또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한다. 냉장고에 재워둔 불고기를 볶아줄까. 며칠 전 먹고 싶다고 했던 삼겹살을 사다가 구워줄까.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단지 앞에 잉어빵차가 와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잉어빵이었다. 화요일마다 오는 잉어빵은 동네에서 인기가 좋았다. 줄이 늘 길게 늘어서 있곤 했다. 마침 그녀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다 되어 학교에서 오자마자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아침에 짜증을 잔뜩 내고 집을 나섰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잉어빵 냄새나는데 잉어빵 사 왔어?”

“응, 혹시 먹을까 해서 샀어. 식탁 위에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

오전 내내 마음 한 귀퉁이에 끼어 있던 응어리가 나도 모르게 말투에 배어 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못내 서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잉어빵을 먹기 시작했다. 잉어빵을 귀한 음식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소중하게 쥐고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뜯어먹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한없이 뾰족하던 그 모습은 온 데 간데없었다. 실룩거리는 볼과 야무지게 오물거리는 입은 열심히, 나는 아직 어린애예요, 나 좀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먹던 그녀가 문득 말했다.

“근데 엄마, 아침에 미안해. 근데 진짜 겁나 짜증 났었어.”

“알겠어. 엄마도 미안해. 화내서...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예쁜 말보다 미운 말을 더 많이 하는 그녀지만 가끔은 이렇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어쩌다 하는 이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큼 울림이 되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사랑스러운 입술이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도 버틸 수 있는 건 이 때문이겠지.



점점 멀어지는 우리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이라면 나는 아름다운 마무리와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마음을 버팀목 삼아서 앞으로 멀어지는 그녀를,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아름답고 따뜻하게 멀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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