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각자의 독립을 응원하자
올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은 물론이고, 특히 올해 큰 아이가 고3이 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방학 윈터 특강을 세팅했지만 아이는 다니다 말다를 반복했다. 어렵게 등록했던 강의를 하루 만에 취소해서 환불하기도 했다. 친구와 다니겠다고 해서 난생처음 독서실에도 등록했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겨우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독서실에 태워다 주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7시 반까지 독서실에 입실하는 것은 우리 둘 다에게 거의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아이가 오랜만에 의지를 보이니 나도 기꺼이 고3엄마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괜히 "엄마 일찍 일어나는 거 힘들었는데 잘됐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해줄 수 있는데. 고3 뒷바라지하느라 바쁘고 힘들다고 투덜 댈 거지만 기꺼이 할 자신 있는데. 아무래도 아들은 날 고생시키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
남은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특강과 독서실을 빼고 나니 남은 게 국어학원뿐이었다. 3년째 선생님과 각별한 의리로 다니고 있는 국어 학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학은 놓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넌지시 의견을 비추니 자기도 안다고, 조금 생각해 보겠다나. 그래 결정되면 말해줘.
일주일 뒤에 소규모 수학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다닌다는 독서실을 알아왔다. 거기에 다니겠다고. 이전 독서실처럼 규칙이 엄격하지 않아 다니기 수월할 것 같다고. 흔쾌히 둘 다 등록해 주었다.
고3이 되면 공부하지 않던 아이도 갑자기 공부를 시작한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또 하나의 희망이긴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렇지 않다한들 그럼 또 어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과 포기와 기대가 뒤엉켰다. 아이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알고 그렇게 하고 있지만 때때로 나는 뭐에 씐 것처럼 가슴속에 불같은 것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인건지, 언제쯤 나는 모든 걸 품을 수 있게 될 것인지. 자문하면서 불이 사그라들기를 바라야 했다.
입시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다. 곧 성인이 될 아이가 성인으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는지, 그러기 위해 나는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돌아보곤 했다. 스스로 제 앞가림만은 해야 할 텐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를,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우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이길 여러 가지 이상적인 인간상의 조건들을 빗대어 본다. 하지만 아이가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욕심이리라.
아마도 내 아이는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갈 것이 분명함을 고백한다. 나도 그랬듯, 직접 사회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그 이후에 스스로 만들어갈 삶을 위해 응원해 주는 수밖에 나는 이제 별도리가 없다.
아이의 졸업이 1년 남은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발짝 물러서 있던 내 자리를 더 멀찌감치 옮기는 것이다. 거의 가물가물하게 존재만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에 자리를 잡고, 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를 향해 있던 촉수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쏟기로 했다. 그 일이 생산적인 일이든, 무용에 가까운 일이든 몰두하면서 마음속으로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그리고 아이의 길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게 다소 시시한, 내 나름의 고3엄마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