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반바지

한겨울에 크록스

by 연두

3월 중순, 아직 봄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흙내음이 나고 겨울 칼바람은 사라진 지 오래다.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봄을 앞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썩이는 그런 계절이다. 무엇보다 가벼워진 겉옷은, 당장이라도 봄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마저도 어서 벗어버리고 더 가볍고 환한 옷을 꺼내 입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떤 날은 한낮에 기온이 15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밤엔 여전히 0도 언저리에 머물지만 말이다. 이렇게 일교차가 클 때 감기 걸리기 딱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아마도 우리 집 딸에게 그런 건 미신처럼 들리는가 보다. 혹은 엄마인 내가 옷차림을 단속하려고 지어낸 얘기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개학날 반팔을 꺼내 입고 나가는 딸을 겨우 말려 긴팔로 바꿔입히긴 했지만 내 설득은 오래가지 못했다. 낮에 더워 죽는 줄 알았다고, 친구들은 다 반팔 입었다고. 반바지를 입는 애도 있는데, 나는 왜 안되냐고. 딸은 그럴게 투덜거렸다. 하긴 그 나이엔 열이 많다니까 낮엔 좀 더울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개학한 지 사흘 만에, 그렇게 등교 복장은 반팔에 집업이 되었다.



며칠 뒤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마침 아이들의 하교 시간인지 남색 체육복을 입은 중학생들의 행렬을 만났다. 삼삼오오 떠들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은 언제보아도 마냥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교복을 입은 아이는 거의 없었다. 거의가 체육복 차림이었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어려운 천편일률적인 사이드뱅에 긴 생머리, 헤어롤을 달고도 자연스럽게 다니는 여학생들은 영락없이 모두 또 다른 내 딸들 같았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막 들어섰는데 멀리서 두 명의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한 명은 반바지, 한 명은 긴바지였다. '세상에 이 추운데 반바지 입는 애가 정말 있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근시인 내가 사람을 정확히 알아 볼리가 없는 거리였는데도, 단박에 누군지 알아차렸다. 반바지의 주인공은 내 딸이었다. 이것도 모성의 초능력이란 건가? 멀리서 실루엣과 분위기 만으로 내 딸을 알아보다니.


다시 돌아보니 어느새 딸아이는 옆에 있는 친구 뒤로 몸을 쏙 숨겨버렸다. 의도치 않게 딸을 숨겨준 친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어정쩡하게 걷고 있었다. 반바지를 그냥 멀쩡하게 입은 것도 아니었다. 두세 번 접어서 한껏 올려 입고 있었다. 허연 허벅지가 멀리서도 환히 보였다. 내 다리가 시려오는 것 같았다.


달려가서 알은체하는 건 안될 일이다. 친구뒤에 숨어서 도망치듯 다른 방향으로 접어드는 딸을 뒤로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왔다. 한참뒤에 집에 들어온 그녀는 나를 보고 묻지도 않았는데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나 이 반바지 오늘 체육 있어서 입은 거야. 오해하지 마."


아침에 나갈 때 분명 긴 체육복바지를 입은 걸 본 것 같았다. 반바지를 챙겨갔던 거냐 물으니 그렇다고, 체육시간에 너무 더워서 갈아입은 거라고. 올 땐 다시 긴바지로 갈아입었어야지라고 했더니 깜박했다고, 어차피 하나도 안 추웠다고.


말을 하면 할수록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그녀의 재주는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듯했다. 다년간의 경험상, 사실 이럴 땐 말을 마는 것이 상책이다.




이틀 후 학교에서 돌아오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원에 못 가겠다고. 몸이 으슬으슬하고 아프다고. 집에 와서 열을 재보니 37.8도였다. 고열은 아니지만 오한, 근육통까지 있다 하니 몸살이 시작된 게 분명했다. 아직 감기 증상은 없어 병원에 가긴 애매해서 집에 있는 약을 먹였지만, 학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길래 엄마가 뭐랬어?"


"네가 덥다고 체온이 높은 건 아니야. 체온은...... "

체감 온도와 실제 체온이 같은 건 아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엔 안 그래도 면역력이 떨어진다. 바이러스가 어쩌고, 면역세포가 저쩌고.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나도 모르게 고삐가 풀린 듯 장광설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가 생각해도 제 잘못이란 걸 알았는지 그녀도 웬일인지 반박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녀는 컨디션이 좀 나아졌다. 오후가 되자 기침을 좀 하긴 했지만 열은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 근데 내일 나 친구들하고 놀기로 했어. "

"너 아직 안 나았어. 지금 친구들 만날때가 아니야"

"나 괜찮아졌어. 따뜻하게 입고 나갈게. 오래전부터 한 약속이라 취소할 수가 없어."

꿀밤을 콩하고 쥐어박아 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실은 그녀에게 그런 약속이 주말마다 있는 게 문제였다. 한창 친구들이 좋을 때고 놀고 싶을 때인 걸 안다. 나도 그땐 그랬으니까. 이런 식의 생각을 하며 또 마음이 흔들리는 나도 문제다.


"알겠어 그럼 두 시간만 놀다 들어와."


그녀는 그다음 날 결국 또 열이 났고 병원에 가서 약을 한가득 받아왔다.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 아이를, 나는 이제 완전히 막지 못한다. 뒤에서 걱정하고 종종거릴 뿐이다. 가다가 넘어지거나 다치면 속상하고, 그때 가서 그러길래 엄마가 뭐랬어 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결국은 또 그녀의 어리석은 선택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겨울에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다니는 중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나는, 저 아이 엄마는 이 추운 날 아이가 맨발로 크록스를 신고 나가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생각했다. 입혀주는 대로 권해주는 대로 입고 따르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던 입장에서 지극히 단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선배엄마들의 고충을 후배엄마가 어찌 알겠는가. 그때 혼자만의 생각이긴 했지만, 잠시나마 아이들에게 소홀했다고 여겼던 그 아이들의 엄마에게 이제야 사과를 구하고 싶다.


누군가도 3월에 반바지를 입은 내 딸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아이를 저렇게 내버려 두다니 쯧쯧 혀를 차며 내가 엄마로서의 책무를 방기한 것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고, 사실 모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