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인생 첫 자기와의 싸움

by 연두


아이가 네 살 때쯤의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을 정리하는데 웬 초콜릿이 나왔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아이는,


"맞다 초콜릿이야. 선생님이가 주셨어!"


대단한 걸 생각해 냈다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 금세 초콜릿 먹을 생각에 들떠 보였다.


안 됐지만, 지금 먹으면 밥맛이 없으니까 저녁을 먹고 먹자 했다. 남편이 늦는다기에 초콜릿을 안방 책장 선반에 올려두고 아이와 먼저 밥을 먹었다.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밥을 잘 먹었다. 아이는 밥을 다 먹자마자 초콜릿을 올려둔 책장선반으로 달려갔다.


"이제 먹을 거야"

"그래"


아이는 초콜릿 껍질을 조심스레 벗기면서 그 당시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인 타요버스 노래를 흥얼거렸다. "타요타요~타요타요~ 개구쟁이 꼬마버스~~~ " 하면서 야무지게 은박지까지 벗겨내자 짙은 흑갈색의 초콜릿의 속살이 드러났다. 아이는 하얀 앞니로 초콜릿의 한쪽 귀퉁이를 깨물었다. 작은 부채꼴 모양의 치아자국이 생겼다.


홈을 따라 손으로 똑똑 잘라먹으면 좋으련만, 아니 손을 안 대고 이로 한 칸씩 뚝뚝 떼어내도 깔끔하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앞니 사이사이에 초콜릿이 끼는 것은 물론, 입가는 어느새 진갈색의 초콜릿국물로 얼룩범벅이 되어버렸다. 숨길 일은 없겠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방금 초콜릿을 먹었다는 걸 숨길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순식간에 초콜릿은 반이나 사라졌다. 한입이 아무리 작대도 그래봤자 입에 들어가면 씹을 것도 없이 녹아버리는 초콜릿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먹는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왜냐하면 아빠를 남겨줄 거라고 먹기 전부터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큰소리를 쳐놓고 이제 와서 다 먹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맛있는 초콜릿을 중도에 그만 먹을 수도 없으니 아마도 고민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5년 인생살이에 최대의 번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먹던 걸 중단했다. 남은 초콜릿을 찢어진 은박지로 다시 감싼 뒤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특하고 딱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고약하게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히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다.


아이는 아쉬운 듯 혀로 입가를 핥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건 아빠꺼야. 먹으면 안 돼!"


나한테 하는 말인지 자신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었다.


"알겠어! 저건 아빠꺼구나. 우와 우리 00 이가 아빠꺼 남겨놨네! 아빠가 좋아하겠다."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안방에 있었다. 책장 앞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장 위를 힐끗힐끗 보는 것이었다. 아빠의 초콜릿을 놓아둔 자리였다. 씻고 tv를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책을 보다가도 그러는 동안에도 한 번씩 아빠의 초콜릿을 확인하곤 했다.


생각보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졌다. 아이는 아빠가 언제 오냐고 수시로 물었다. 남겨둔 초콜릿을 전달해야 했고, 아빠가 오셔서 자신이 힘겹게 사수한 초콜릿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아빠가 아빠의 몫을 먹어주어야 자신이 인고 끝에 지켜낸 약속이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빠가 늦는다고 하자 아이는 실망했다. 눈길이 더 자주 책장으로 향했다. 웃음이 났지만 못 본 체 했다.


어느새 보니 아이는 아까 꼭꼭 오므려놨던 초콜릿 껍질을 다시 하나하나 벗겨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앞니로 초콜릿 한쪽 끝을 아주 조금 베어 먹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다시 은박껍질의 귀퉁이를 오므리고 올려두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건 아빠 꺼야. 먹으면 안 돼!"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다시 돌아왔다.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더...... 초콜릿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모르는 척 아빠 꺼 얼마큼 남았어? 하고 물었다. 아이는 들고 있던 초콜릿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직 이만큼 남아있어. 이거 아빠 꺼야."


초콜릿은 전체의 1/4 정도가 남아있었다. 테두리를 따라 벌레가 갉아먹은 듯한 깨문 자국이 셀 없이 나 있었다

그나마도 녹고 뭉개져 있었다. 손으로 쥐고 조금씩 먹어나간 탓에 초콜릿은 이미 처음의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이걸 남편이 먹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걸 아빠가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와 많이 남았네. 이제 그만 자자. 아빠 오시면 00 이가 남겨놨다고 엄마가 꼭 전해줄게!"


아이가 잠들고도 한참 후에야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남편에게 아이가 남긴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그동안 냉장고에 넣어두어서 조금 단단해졌지만 화석같이 새겨진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빠에게 이 맛있는 초콜릿을 남겨주기 위해 처절하게 먹고 싶은걸 참고 견딘 흔적이었다.


아이에게 가끔 이 일화를 말해주곤 한다. 또 그 얘기냐며 한마디 하지만, 매번 말할 때마다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내심 흡족하고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이만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참을 줄 아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데 너는 그걸 이겨낸 거다. 넌 그렇게 뭐든 잘 해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