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로 보는 리디북스 이야기
'연쇄할인마'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게임패키지 판매 플랫폼 STEAM은 유저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세일을 하는 바람에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후 스팀은 세일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게임 판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게됩니다.
저는 주로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해왔는데요.
온라인서점계에도 'STEAM'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3~4년 전쯤이었습니다.
방문해보니 실제로 리디북스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세일을 하고 있었고요, 생각보다 많은 책들을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손에 착 감기는 전용 단말기의 만듦새가 좋았습니다. 이후 저는 대부분의 책을 리디북스에서 구매하고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겁이나기도 합니다.
물론 회사가 없어진다고 단박에 구매한 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한 해에도 수많은 회사가 생기고 없어지는 상황에서, 아직 스타트업 수준의 리디북스가 사업 위기로 망할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뉴스가 나오고 있다는 것인데요
오.. 주식시장에 상장(IPO) 한다고?
현재 기업가치가 7천억에 육박한다고?
매우 희망적인 뉴스들로 가득합니다.
'역시 그렇구나 리디북스를 선택하길 잘했어'라는 생각도 들지만.. 회계사 된 도리로써 그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지 않기에는 다소 찝찝합니다.
그래서 열어봤습니다.
오늘은 리디북스의 재무제표를 보고 이 회사가 7천억의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생존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일단 기업가치가 7천억 수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현재 주식시장에서 7천억의 시가총액(거래 가능한 주식 가격의 합계)에 준하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찾아봤습니다.
락앤락, SK가스, LG상사.. 딱 봐도 댑따 큰 회사입니다. 락앤락이야 생각보다 매우 큰 회사는 아니지만 준수한 영업이익(365억원)을 기록하고 있고, SK가스와 LG상사는 비교 언급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큰 회사입니다(매출액이 무려 6.8조와 10조)
물론 성숙기에 있는 회사와 성장하고 있는 회사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겠지지만..
어쨌든 7천억이라면 리디북스가 향후에 이 정도 느낌의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는 다 생략하고..
일반적으로 7천억의 가치라면 대략 영업이익으로 700억원 정도 벌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과 비슷한데요. 2018년 기준 손익을 잠시 보겠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영업수익(매출액)과 영업손실 규모입니다. 793억원의 매출액과 1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고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손익구조입니다.
전자서점의 특성상 매출액의 상당부분은 아마 출판사로 돌려줘야 할 것입니다. 기본 책값이 종이책보다 싸다 보니 마진폭은 오프라인 서점보다 낮을 거예요.
그 출판사에 돌려준 금액이 위에 보시는 지급수수료 636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엄청 크죠
대략 책 매출액의 80~85% 수준을 돌려준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팔고 남은 돈으로 인건비와 기타 비용들을 감당해야 하니. 매출이 아무리 커져도 기본사업으로는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10%달성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략 2018년 실적의 10배를 하면 됩니다. 지금과 같은 고속성장(연 40% 성장)을 7년 정도 하면 되겠네요.
다만 문제가 또 있습니다. 리디북스가 2018년에 지금 전자책 시장점유율을 47% 달성했다고 하는데요(기사 참고)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것이라고 가정하면.. 매출액 7,000억원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둘 중에 하나 정도의 상황이 필요합니다.
1. 전자책 시장이 지금보다 10배 커진다.
2. 전자책 시장이 지금보다 5배 커지고 리디북스가 시장점유율을 100% 달성한다.
그럼 여기에 투자한 VC들은 바보냐? 라는 생각이 들 수 도 있겠지만, 그분들은 재무제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사업계획(M&A를 통한 사업다각화, 많은 가입자를 이용한 시너지 등)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저는 리디북스 관계자도 아니고 얼마로 평가받고 투자받는지는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구매한 책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느냐입니다. 즉 생존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대해 재무제표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특이한 사항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보유 현금은 적지 않습니다.
당장 쓸 수 있는 자금은 133억원 수준, 2018년 영업현금으로 40억 정도 썼으니.. 지금 상태로(외부자금 수혈 없이) 2~3년 정도는 생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 과거 종속기업 투자에 실패했습니다.
종속기업 두 곳(스튜디오디컴퍼니, 만두엔터테인먼트) 에 대한 대여금이 18억원 정도 있는데 전부 대손처리했습니다. (못 받는 다고 선언) + 스튜디오디컴퍼니에 대한 운영자금이 연간 4억원 정도 계속 지출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회사가 신사업을 제대로 선정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이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3. 재고가 제법 많습니다.
리디북스는 리디북스 페이퍼라는 이북리더기를 파는데요 2018년 말에 51억 원어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2018년 한 해 동안 판매한 재고자산도 51억 원인데요, 즉 1년 치 재고가 고스란히 창고에 있다는 뜻입니다. 많죠.. 그래서 2019년 하반기부터는 상당한 세일(25만 원짜리를 10만 원대 초반에 판매)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세일할 때 사서 잘 쓰고 있습니다)
리디북스는 전자책단말기로 수익을 내고 싶은 회사는 아닐 겁니다. main사업은 전자책 판매니까요. 하지만 단말기 판매로 인해 생긴 손실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20~30억 정도 손실 예상)
4. 인건비 비중이 높습니다.
급여, 퇴직급여, 복리후생비, 연구개발비 등 인건비성 지출의 합계가 약 80억원정도 되는데요, 매출액의 10%수준인걸보면 그 비중이 낮다고 볼 수 없습니다.
5. 수익성은 좋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책 팔고 남는 수익금이 15~20% 수준입니다. 많은 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할인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경쟁자가 제법 많은데요(Yes24, 교보문고, 네이버 등..) 경쟁자가 대부분 리디북스보다 훨씬 거인들이라..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서 할인폭을 감소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리디북스의 재무제표에는 안 좋은 시그널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회사는 다음과 같은 전략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1. 변동비가 크지 않은 사업을 한다.
매출 1건당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을 회계에서는 '변동비가 크다' 라고 말하는데요. 리디북스의 기존 사업인 전자책과 전자책단말기 판매는 변동비가 큰 사업입니다. 그래서 수익성이 좋지 않지요.
그래서 최근 리디북스는 리디셀렉트(정기구독서비스)를 키우고 싶어합니다.
최근 유통업계의 큰 화두는 유료회원제 서비스를 통해 고정수입과 가입자 Lock-In(자사 서비스에 묶어두는)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아마존프라임인데요. 가입자 1억 1천만명이 매월 10불이상의 회원요금을 납부하고 있으니.. 어마어마하죠(월 수입 1조라니..)
그래서 전자책업계에서도 회원제 서비스를 키워서 변동비가 크지 않은 고정수입을 확보하고 싶어합니다. 월 2~3권이상 무조건 읽는 헤비유저에게는 좋은 서비스일 텐데요. 원래부터 작은 시장의 헤비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라 사실 수익성이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 350만 가입자를 바탕으로 시너지를 노린다.
도서를 소비하기 위한 지적인 소비자 350만명의 가입자는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리디북스는 이 가입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애니메이션OTT 회사(라프텔) 와 온라인미디어 회사(아웃스탠딩)를 인수했지요. 결국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종합적인 콘텐츠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 목표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적절하게 선정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앞서 회사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가 높다고 했죠? 아마 새로운 사업을 위해 뽑은 고급인력들 때문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다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활용해서 능력 있는 조직을 만드느냐는 그 기업의 경영진에게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하는 회사가 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제가 리디북스에 애정이 많아..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리디북스는 타겟 시장(전자책)이 작고 수익성이 좋지 않습니다.
2. 인건비 비중도 높고, 안 팔린 재고도 많고, 과거 신규사업 투자를 실패한 적도 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도 높은 다수의 가입자들은 리디북스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4. 그 자산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규사업을 진행할 것인데, 주로 M&A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5. 그러한 사업들을 성공시킬 수 있는 역량을 증명할 수 있으면 승승장구할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오래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작성 : 파인드어스 이재용 교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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