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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어느덧 일행이 생기는 삶

우리는 모두 친구

by 앨리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을 의자에 올려 두고 손을 씻고 와보니 같은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평일 오후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은 여느 가게들처럼 한산했다. 빈 자리는 많았고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자리잡은 테이블에 끼어 앉다니.



그제서야 내 테이블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살펴보게 됐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출입구와 가깝고 취식구와도 가깝다. 잠시 앉아 포장 주문한 햄버거를 기다리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 테이크 아웃 대기 명당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리에 앉아서 햄버거를 기다리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 앉는다는 말인가! 결국은 이런 곳에 자리를 잡고서 나만의 공간을 원했던 내 잘못이었다. 청두는 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일행이 되는 도시가 아니던가.


그나마 햄버거 가게는 나은 편이다. 동네 국수집은 합석이 ‘기본’ 매너다. 스마트폰 인식을 통해 메뉴도 볼 수 있고 주문과 결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QR코드가 한 테이블 네 귀퉁이에 각각 다른 번호로 붙어있다. 그 말은, 테이블은 하나지만 네 명이 각각 다른 주문을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식사 때에 혼자 앉아서 국수를 먹다 보면 어느새 4인용 테이블이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 꽉 찬다. 혼자 온 사람도 있고 여럿이 같이 온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함께 앉는다. 더러는 내가 먹는 메뉴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거 맛있어? 나도 하나 먹을까?”


“그거 좋아? 어디에 있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 장바구니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선뜻 물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산 물건들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거기서 또 같은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거 좋아보인다. 어디 마트에서 샀어?”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내가 한국인인 것을 절대로 들키면 안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물건을 중국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거나, 마트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중국어가 능숙하지 않다면 더욱 조심해야한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눈치 채고 그와 더불어 어떻게 외국인이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좋은, 맛있는, 탁월한 것들을 사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는지 너무도 궁금해한 나머지 질문 공세를 퍼붓게 되기 때문이다. 답변은 가능한 간결하고 무심하게, 절대로 한국인의 우수성을 들키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서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이런 태도는 널따란 대륙에서 다양한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온 역사에 그 근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형과 기후가 다르고 생김새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빈번하게 어울려 생활했던 경험이 그들에게 남다른 포용력을 가르친 것이다. 하물며 외국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반갑고 궁금할 뿐, 내 중국어가 무척 서툴었을 때에도 나를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중국 내 다른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조금 낯선 이로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살아온 배경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언어마저 특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런 경험은 나를 중국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했다. 이제는 국수집에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만두를 하나 나눠줄 수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마트에서 들은 세일 소식을 알려줄 수도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일행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가는 삶, 낯선 이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오늘 만난 누군가에게도 이 낯선 한국인과의 짧은 만남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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