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을 꿈꾸는 청소년들과의 첫 교감,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
외교관 생활을 막 시작했던 젊은 날의 나를 회고하면, 가장 먼저 가슴속에 떠오르는 문구 하나가 있다. 바로 “어느 외교관의 꿈”. 30대 시절,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운영했던 나의 개인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인터넷이라는 파도가 우리 삶에 막 밀려들기 시작한 1997년 여름, 나는 외교관으로서는 드물게 개인 홈페이지를 열었다. 처음엔 해외 근무 중 한국에 있는 가족과 소식을 나누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운영을 시작하니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졌다. 수많은 학생들이 내 홈페이지를 찾아와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매우 어설픈 수준이었지만, 처음에는 ‘하이텔’이라는 국내 PC 통신 회사의 플랫폼을 통해 운영했다. 그러다 닷컴 도메인 확보가 화두가 되던 시기에 ‘diplomat21.com’을 구매하며 좀 더 본격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게 되었다. 헝가리와 모로코 근무 시절에는 퇴근 후 방명록에 남겨진 아이들의 글을 읽고 답장을 다는 일이 나의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찾아와 외교관이 꿈이라고 하면서 “외교관의 연봉이 얼마인가요?”,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하나요?” 같은 천진한 질문부터, 학교 과제라며 열 개가 넘는 인터뷰 질문지까지 보내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의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 답을 썼다. 질문이 많아지자 아예 FAQ 메뉴를 만들어 공통된 질문에 대한 답을 게시해 놓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외교관들이 더 생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소수였다. 요즘은 직업으로서 외교관을 소개하는 책들도 많이 있고, 인터넷을 통해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교부도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클릭 몇 번으로 정보를 얻을 수 없던 때였기에, 현직 외교관이 직접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목마름을 축여주는 오아시스였을지도 모른다. 업무 외 시간을 쪼개야 했지만, 외교관을 꿈꾸는 청소년들과 교감하면서 느낀 보람과 자부심은 업무에서 느끼는 것 못지않았다. 2000년부터 카운터 기능을 활용하여 방문자 수를 집계했는데, 2008년까지 누적 방문객이 9만 명에 달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크지 않은 수치일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외 근무와 국내 근무를 오가는 어수선한 와중에 diplomat21.com 도메인 갱신을 놓쳐 2008년 말부터 홈페이지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중에 도메인을 다시 사려 했지만, 처음 몇십 달러에 불과했던 사용료가 수만 달러로 치솟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의 소중한 파편들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그러던 중 유엔 사무국에 근무하던 시절인 2013년 경,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이라는 사라진 인터넷 사이트의 흔적을 찾아주는 툴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잃어버렸던 내 옛 사이트의 흔적을 기적처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라진 홈페이지를 다시 살려낼 수는 없었지만, 과거 특정 시점에서의 홈페이지 모습을 찾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 혹은 타임머신을 타고 내 청춘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간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홈페이지와 관련해 나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2006년 주유엔대표부 근무 시절, 모의 유엔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학생 대표단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두 청년이 수줍게 고백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홈페이지를 보면서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고. 그 말만으로도 벅찼는데, 세월이 흘러 주방글라데시 대사로 근무할 때 그중 한 명이 어엿한 외교관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나의 멘티였던 소년이 나의 후배이자 동료가 되어 곁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 젊은 날의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지만, 어느덧 나는 누군가의 꿈을 지켜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교관의 꿈을 이루고, 외교관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키워갔던 젊은 시절의 소중한 흔적이자 기록이었던 이 홈페이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설레고 뿌듯하다. 의도하지 않았던 작은 계기가 나를 외교관의 길로 이끌었듯, 내가 남긴 작은 흔적이 누군가의 꿈을 자극하고 길을 결정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변방의 외교관’으로서 걸어온 34년의 세월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 여정의 끝에서 나 스스로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