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라는 무대에서 모두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지난 34년간 나의 외교관 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변방의 외교관, diplomat on the periphery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외교관’이라는 단어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단한 협상 테이블이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화려한 중심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의 역할은 시선이 집중되는 화려한 무대보다는 그 주변에서, 뒤에서, 변방에서 주로 있어왔다.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 적은 있었으나, 그 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기회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주목받는 미국·일본·중국·북핵 문제와 같은 굵직한 서사를 다루기보다는 그 너머 변방에서 토대를 다지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거나,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덜한 서사와 씨름해 왔다. 국제기구와 다자외교 분야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었지만, 다자외교는 우리 외교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변방에 가까웠다. 무대의 주인공보다는 조연의 자리에서 주로 역할을 했었다고나 할까?
나의 외교부 경력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외교부의 평균적인 궤적으로 본다면 누군가는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길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뉴욕(2번), 제네바, 비엔나와 같이 선호도가 높은 선진국에서 네 번 근무했고, 개도국 근무도 대사로 근무한 방글라데시와 아세안(자카르타)을 제외하면 모로코, 헝가리와 같은 비교적 환경이 괜찮은 곳이었다.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모로코 근무시절이었던 2000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교섭을 위해 모나코에 출장 갔을 때 만난 한 선배 대사께서 한 말이다. 내 근무지를 여쭈어 헝가리에서 근무한 후 모로코에 부임해서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그렇게 애매하게 살면 안 된다"면서 뼈 있는 핀잔을 주었다. 선후진국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최선호 공관과 최험지를 오가며 선명한 색깔을 내야지, 적당히 환경 좋은 곳만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충고였다. 당시 두 나라는 외교부 분류상 ‘특수지’였지만, 내 경력이 '애매한 위치'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최험지 공관은 미국, 유엔과 같이 최선호 공관에서 이동하는 직원으로 채워지는 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관행이었고, 내가 최선호 공관 근무 기회가 없었으니 최험지 공관 근무기회 또한 가질 수 없었던 것인데, 이것을 애매하게 환경이 적당한 곳만 찾아가는 기회주의자로 여긴다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나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갔다.
그 이후 2005년 여름, 세 번째 재외공관 근무로 꿈에도 그리던 주유엔대표부에 부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줄곧 국제기구와 다자외교의 길을 걸었다. 뉴욕, 비엔나, 제네바라는 '다자외교의 3대 성지'를 모두 경험하면서, 평범한 배경을 가진 내가 이토록 특별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1998년 첫 임지였던 헝가리 부임 당시,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 근무자들을 우러러보던 애송이 서기관은 10여 년 후 당당히 비엔나의 참사관으로 부임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전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자외교는 양자 외교의 위세에 눌려 변방이라고 치부되기 일쑤였다. 내가 다자외교에 발을 들여놓았던 주유엔대표부 시절(2005-2007년)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고 다자외교 강화에 대한 관심이 커가던 시기였는데, 실무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외교부는 다자 공관의 강화를 꾀하기보다 오히려 인력을 감축했다. 당시 고위 간부들로부터 다자 외교에 대한 비판을 자주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자 외교는 편하고, 비효율적이며, 난해하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외교의 본질은 '양자'에 있으므로 양자 외교를 강화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외교라는 무대에는 주인공으로 빛나는 외교관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적다.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변방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다 무대를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의 완벽한 작품은 주인공의 대사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대본을 쓰고, 무대를 꾸미고, 음향과 조명을 조절하며, 의상의 매무새를 만지는 수많은 이의 손길이 모여야 비로소 관객은 감동한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외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외교야말로 진정한 외교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가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외교도, 보이는 곳에서 중요한 외교 사안들을 다루는 외교만큼이나 가치 있고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외교는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수 있고,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꿈을 묵묵히 펼쳐나가고 있다. 특별함 속에도 평범함이 있고,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외교의 현장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지난 34년을 “변방의 외교관”이라 부르고 싶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무대의 완성은 언제나 변방을 지키는 이들의 성실한 발걸음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