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생활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누군가 나에게 외교관의 생활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설령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해도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꿈꾸어 왔던 길을 걸어온 끝에서 나는 그 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답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이율배반적이고 무책임하며 무기력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뜨겁게 꿈을 꾸던 청년시절의 열망은 어디로 가고 현실에 안주한 자의 무기력한 변명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교관으로서의 여정을 끝낸 이 시점에서 내가 지나온 길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원하는 삶이 '꿈'이라면 주어진 삶은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꿈은 성취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꿈을 이룬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이라는 파도와 마주하게 되고, 꿈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방황하고 좌절하며 새로운 항로를 고민한다. 젊은 날의 항해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키를 꺾는 사투였다면, 이후의 항해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바람의 방향을 읽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꿈을 이루는 것과 꿈을 이룬 다음에 맞닥뜨리게 되는 주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다루어가야 하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주어진 삶을 사는 것도 결국은 모두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교관을 꿈꾸면서도 외교관이 어떤 직업인지,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모르는 채 소망하고 꿈을 꾼다. 특히 내가 젊은 시절을 살아온 때는 그랬다. 요즘이라면 인터넷을 뒤지고 AI에게 묻고 해서 외교관이 어떤 직업이고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대우와 근무 조건이 어떻고 연봉이 얼마인지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책을 찾아보거나 운이 좋으면 경험자에게 듣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동경하면서 외교관을 꿈꾸다가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부에 들어오고 나면 그 때야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첫 부서였던 '경제협력2과' 배치에서부터 시작해 국내와 해외를 오가면서 17번 보직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는 8번, 해외 근무는 9번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평균 2년마다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곳으로 발령받은 적은 드물었다. 현실의 막이 오르고 나니 내가 서야 할 곳은 내가 원하는 곳이라기보다 내게 주어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34년 외교관 생활은 그야말로 ‘주어짐’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고 희망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내게 가장 필요하고 좋은 줄 알았다. 국제기구 관련 업무 기회가 있기를 희망했는데 실무자일 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희망과 다르게 주어졌던 현실은 나를 다른 길로, 어떻게 보면 더 좋은 길로 인도했다. 희망했던 군축원자력국장직에서 떨어진 뒤 맡게 된 국제기구심의관은 훗날 국제기구국장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고, 주몽골대사를 꿈꾸다 주제네바 차석대사로 부임하면서 다자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보았다. 방글라데시에서의 근무는 내 외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로 남았고, 마지막 임지로 희망했던 네덜란드 대신 아세안 대사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차원에서 다자업무의 의미를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운명이 나를 비껴가는 듯했던 그 순간들이 실은 나를 가장 정확한 곳으로 데려다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다일까? 주어진 것을, 현실을 받아들이면 다일까? 그렇지 않다. 거기서 그치면 너무나 허무하고 너무나 불공평한 것이다. 주어진 것을, 현실을 받아들이는데서 그치면 거기서 멈출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삶은 곧 현재에 충실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자리를 불신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 안에서 최선의 꽃을 피워내는 것. 그것이 바로 현재라는 다리를 건너 최선의 미래로 이어지게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것을,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 바로 소명(calling)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꿈을 꾸는 인생"이 좋았고 꿈을 꾼다는 것에 설레었는데, 이제 인생의 중반, 아니 후반에 들어서면서는 "주어진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게 가장 좋고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꿈꾸는 시기가 있고, 받아들이는 시기가 있다. 꿈을 꾸며 설레던 시절이 폭풍우 치는 여름이었다면, 이제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무르익는 가을의 시간인가 보다. 기쁜 마음으로 다시 내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이 현재가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 놓을 것인가. 나는 그 길 위에서 다시 한번 기꺼이 최선을 다해 보고 성실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