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마라

첫 해외 생활, 미국 연수를 떠나면서 한 선배의 조언

by 어느 외교관의 꿈

해외 생활의 첫걸음, 미국 연수


외무고시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단연 해외 연수 기회다. 외교관의 필수 자질인 외국어, 특히 영어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에 ‘어학연수’라고도 부른다.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연수 기회가 있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것과 달리 외무직은 합격자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었다. 영어권은 2년, 제2외국어(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는 2년의 현지 연수에 1년의 영어 연수를 더해 총 3년간의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외국어를 접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참고서와 카세트테이프, 혹은 사설 학원이 외국어 공부 수단의 전부였다. 조금 앞서가는 이들은 주한 미군 방송인 AFKN을 시청하며 귀를 틔우려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지금과 달리, 당시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극소수의 전유물이었고, 특히 남성들에게 군 복무 전 해외 경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시를 통해 영어 실력을 검증받았다 해도 실전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에게, 해외 연수는 외교관으로서 첫걸음을 떼는 매우 중요한 관문이었다.


경제협력2과에서 1년 8개월을 근무한 뒤, 1993년 8월 나는 뉴욕주립대 버펄로(SUNY Buffalo)로 2년간의 연수를 떠났다. 제2외국어였던 일본어 연수도 고민했지만, 외교관의 근간인 영어 실력을 다지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대다수 동기처럼 나 역시 미국을 택했고, 2년의 기간을 활용해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자 근무 틈틈이 토플과 GRE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학비가 비싼 사립대 대신 주립대 지원을 장려하던 정책에 따라, 나는 뉴욕주립대와 버지니아주립대 중 입학 허가를 받은 뉴욕주립대(UB)에 둥지를 틀었다.


낯선 조언: "여행과 골프" 대신 "너 자신에게 투자하라"


20대 후반의 청춘에게 주어진 2년의 해외 연수는 인생에서 다시없을 값진 시간이었다. 정부 장학금으로 어학 실력을 향상하고, 학생으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며, 해외 생활과 연구 활동을 경험하고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기였다.


출국을 앞두고 선배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다. 대개는 "인생의 유일한 휴식기이니 여행도 많이 다니고 골프도 즐기라"는 말이었다. "열심히 공부해 영어 실력을 비약적으로 키우라"는 교과서적인 충고는 드물었다. 물론 당연한 전제라 생략했을 수도 있겠지만, 국비 유학생인 공무원에게 건네는 "즐기고 오라"는 말이 진심 어린 조언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한 선배만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간을 아끼되, 너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돈은 아끼지 마라. 특히 영어를 배우는 데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써라." 그 말은 연수 내내 내 귓가에 쟁쟁하게 머물렀다. 문득 군 복무 시절, 교회 선배가 보내준 편지 한 구절이 떠올랐다. "군에서의 시간이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통제된 환경 속에서 버려지는 시간이라 생각했던 군 생활이 어떻게 황금이 될 수 있을까? 당시 느꼈던 그 역설적인 울림이 선배의 조언과 겹쳐지며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다.


8달러의 투자, 그리고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


미국 대학원의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나날이었지만, 나는 선배의 조언을 실천하기로 했다. TESOL(영어 교육학) 전공생을 수소문해 시간당 8달러를 주고 주 5시간씩 개인 교습(Tutoring)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매달 지급되던 1,380달러의 생활비로 주거비와 식비, 교재비까지 감당해야 했기에 적잖은 부담이었지만, 나는 생활비를 아껴 영어에 투자했다. 거처 또한 미국인 노부부의 집에 방을 얻어 함께 생활하며 한국어 사용을 최소화하고 영어의 리듬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비록 기대만큼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지는 않았으나, 그때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외교관으로서의 언어적 기초를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외국어, 특히 영어는 외교관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자질이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세대는 성인이 된 이후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적당한 수준'에 머물기 십상이다. 나는 그 '적당함'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고 절실함 속에서 꾸준히 노력했다. 2005년 주유엔대표부 근무를 위해 뉴욕에 부임했을 때도, 나는 매주 저녁 '토스트마스터즈(Toastmasters) 클럽'을 찾아 미국인들과 함께 대중 연설 기술을 향상하려 노력했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주유엔대표부 내 미국인 에디터의 도움을 받아 영어 토론 연습을 지속했다. 요즘 훌륭한 외국어 능력을 구사하는 젊은 외교관들을 보면 우리 외교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세대의 외교관들에게는 그 때나 지금이나 외국어, 특히 영어는 여전히 큰 도전이고 과제고 목표이다.


좋은 과정이 남기는 의미


돌아보면, 외교관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20대의 나에게 선배가 건넸던 조언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그 조언을 되새기면서 분투했던 젊은 날의 나를 대견하게 돌아본다. 좋은 과정이 반드시 눈부신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과정 없이 결코 좋은 결과는 존재할 수 없다. 비록 원하는 목적지에 완벽히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진심을 다해 한 걸음씩 내디뎠던 그 과정 자체가 이미 내 인생에는 충분히 크고 깊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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