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의 시작을 찾아서(1)

모든 꿈들이 반드시 거창하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by 어느 외교관의 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의 첫 여정은 어디로 해야 할까? 내 60년 인생의 절반이 넘는 34년을 외교관으로 살았으니, 외교관으로서 내 인생 여정의 시작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외교관이란 직업이 어떻게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찾아가 보는 것이 그 끝자락에 다다른 현시점에서 특별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언제부터 왜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단지 떠오르는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생활기록부 장래 소망 난에 외교관이라고 적기 시작했고,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교관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오래 품어오고 어렵게 이룬 꿈 치고는 시작이 그리 거창하지 못한 것이 겸연쩍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기는 커다란 꿈이 반드시 거창하게 시작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의 꿈의 경우에도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 들어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둥지를 트고 자라 간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일말 내 꿈의 시작을 찾아 더듬어 보면 서울 마포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학교 1학년때 사회선생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만삭이 다 돼가는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고운 피부에 구슬 같은 목소리로 사춘기에 접어드는 소년들의 인기를 끌었던 분으로 기억된다. 그 선생님은 서울에 상주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대사관을 찾아다니면서 그 나라에 관한 홍보책자를 수집해 오라는 여름방학 숙제를 내주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로 일본대사관, 중국 대사관, 영국대사관, 프랑스 대사관, 미국 문화원, 영국 문화원, 프랑스 문화원 등 시내에 있는 대사관과 문화원을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자료와 책자를 수집했다. 다른 대사관들에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정문에서 안내원에게 자료를 받았는데, 조선호텔에 있던 네덜란드 대사관인가에 들렀을 때는 한 외국인 신사가 어린 우리를 안으로 들어오라 하면서 친절하게 맞아주고 음료수까지 내놓는 친절을 베풀었다. 아마도 그때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자기 나라를 소개하는 일을 하는 직업이 무엇인가?" 궁금해졌고, 그것이 바로 "외교관"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시나브로 내 마음속 한구석에 외교관이라는 꿈이 자리 잡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일찌감치 외교관의 꿈을 가진 덕분에 내게 대학에서의 전공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동안 방황기가 있었지만 학력고사 점수가 적당히 나와 점수에 맞는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에 지망했고, 다행히도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이후 들어선 전두환 군사정권이 실시한 고교평준화와 과외금지 정책은 평범한 가정 출신인 내게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교육만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전두환 군사정권은 ‘졸업정원제’, 곧 대학 입학인원을 정원보다 30 퍼센트 더 선발하고 졸업은 정원만큼만 하게 하는 기발한 제도를 시행하여 대학입학의 문을 크게 넓혔는데 나는 이 덕분에 희망하는 대학들 가운데 한 곳에 비교적 용이하게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학 면접시험에서 면접관으로 나온 이기택 정외과 교수와의 대화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정외과는 왜 지망했어?"

"외교관이 되고 싶어서요"

"그걸 영어로 말해볼 수 있어? 외교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I want to be a diplomat.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고등학교 지리선생님은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육군사관학교를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군 출신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고 있던 당시에는 재외공관에 군출신 대사들이 많이 있었고, 소위 ‘유신 사무관’으로 불리는 육사 졸업생들 중에 일부가 외교부 등 정부부처에 사무관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희망하던 대학에 입학하고 정치외교학 전공을 통해 국제관계와 외교에 대해 공부하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꾸어온 외교관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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