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방황
1984년 대학에 입학한 후 나의 삶은 처음부터 여러 면에서 내게 혁명적인 경험이었고 내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대학은 한국사회의 민주화 바람을 주도하는 요람이었고 신입생들은 학교와 단과대, 학과별 모임에 참여하면서 처음 접하는 사회현실과 이 가운데 대학생,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했어야 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주입식 교육에 익숙했던 내게 처음 부닥친 "현실과 정의"라는 문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또한 대학생활과 함께 갖기 시작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내게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품어왔던 외교관의 꿈은 사회적 현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예를 좇아 나만을 위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사치스러운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가졌던 외교관의 꿈은 일단 내려놓고, 신앙 안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 새로운 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외교관의 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변화된 상황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보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꿈을 향한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꿈, 새로운 길을 찾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 1학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군 입대를 결심했다. 당시 아버님은 고향 김포에서 지방 공무원을 그만두시고 작은 가내형 양계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계란값 폭락과 기업형 양계장 업체와의 경쟁으로 힘겨워하고 계실 때였다. 빨리 입대해서 학비로 인한 아버님의 가계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대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대학 1학년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카투사 시험에 응시했다.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여 2학년 1학기를 마치면서 바로 입대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좇아 정처 없이 하란을 떠나는 심정이었다. 한 여름을 논산과 평택의 훈련소에서 보낸 뒤 용산의 미 8군 사령부 헌병대에 배치를 받았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오래, 멀리 떠났다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작별인사를 한지 두 달도 안되어 서울에서 군 생활을 하게 되고 그것도 헌병대에 배치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30여 개월간의 카투사 생활을 통한 언어와 첫 외국문화 경험은 내려놓았던 외교관의 꿈의 길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내 인생을 통해 전개될 30여 년간 방랑자 생활의 전조였다.
시간이 빨리 흘러 제대 시기가 다가오면서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한 절박한 구도의 과정이 다시 시작되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고민하고 기도했다. 우선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불행했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청소년 시절, 자칫 그릇된 길로 발을 들여놓기 쉬운 시절에, 인생의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임 길버트의 "교사와 학생사이" 이오덕 씨의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 모 교수의 "현대 교육학 개론" 등 교육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제대 후에는 야학에서 가르치는 기회를 가져볼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교사를 향한 길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사범대학 출신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해서 교사자격증을 따야 했다. 교직과정 이수를 위해서는 2학년 1학기부터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제대하고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해야 하니, 준비를 시작할 시기를 놓친 것이다. 교사가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서 교사 말고 다른 길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교사를 일 순위로 그리고 후보순위로 교수, 기자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 앞에서 나의 달란트(talent)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외교관의 꿈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꿈을 찾아가는 여정은 신앙적인 구도의 과정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나의 꿈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 또는 은사(적성이라는 것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본질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이라 생각된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가? 기자는 내 은사에 맞는가? 외교관은? 결국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그동안의 노력,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고 달란트 측면에서 외교관의 꿈을 놓고 다시 고민해야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1학년부터 군 입대하기 전까지 YES라는 영어서클에서 한여름을 영어의 바다에 빠져 살던 일,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 새벽차를 타고 학교로 달려오던 일, 무엇보다도 카투사 군대생활을 통한 영어 문화권과의 접촉 경험 등 과정들이 다시 다가오면서,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 놓고 기도했다. 바로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었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소위 말년휴가 기회에 캠퍼스를 찾았다. 1987년 11월 말에 제대했으니 아마도 11월 초경이었다. 군대를 가지 않고 캠퍼스에 남았던 친구들은 대학원 진학이다, 유학이다, 취직이다, 고시준비다, 군입대다 모두 대학졸업 이후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막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정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캠퍼스와 거리를 메우던 열정은 어디에 갔는지 모두 현실이라는 벽을 넘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내게는 이들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왔고,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않아있기보다는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민하던 내게 나를 아껴주던 나이 지긋한 한 같은 학번 동기 형의 한마디 격려의 말은 내 결심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직 우리 동기 중에는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없어. 장근이 너는 성실하니까 우리 동기 중에 기대할 만한 사람이야." 그래 일단 시작하고 보자. 일단 길을 가면서 이 길이 올바른 길인지 하나님과 씨름해 보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포기하자. 결심을 내린 것은 1988년 1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