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고시의 문을 두드리며
군에서 제대할 무렵에 외교관의 꿈을 향한 길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새로운 현실에 막닺뜨렸다.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외무고시에 합격해야 하는데, 전국에서 일 년에 20명을 뽑는 시험에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에 있어서 크게 부진한 적도 없지만 그리 두각을 나타내 본 적도 없던 내가 전국의 유수한 인재들이 경쟁하는 외무고시에 합격할 수 있을까? 주위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도, 합격한 사람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고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우선 중고책방들이 늘어서 있는 청계천에 가서 책방들을 누비면서 "고시계"와 "고시연구" 등 고시 준비생을 위한 월간지의 과월호를 10여 권 샀다. 외무고시나 행정고시,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보는 고시잡지는 고시 합격생들의 합격수기나 고시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우선 외무고시 준비에 관한 소개와 합격 기를 읽기 시작했다. 이미 외무고시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워서 준비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나름대로의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이렇게 아날로그 식으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잡지에 소개된 대로 우선 1차 시험에 관한 수험서를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2학년 2학기 복학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고 1차 시험까지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충분한 여유를 갖고 시험을 준비했는데도 1989년 1월 말 처음 도전한 외무고시 1차 시험 결과는 낙방이었다. 준비 시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원인은 시험 직전의 2-3개월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음 도전에 낙방은 오히려 내게 외교관의 길에 대한 확신, 무엇보다도 이 길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차 시험이 있던 날이 금요일이었고 매주 철야기도회가 있는 날이었다.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해 합격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고 집으로 가는 대신 오래간만에 철야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고 싶어 다니고 있었던 충무로의 서울침례교회로 향했다. 외교관이라는 꿈을 향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지, 이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밤 11시경 시작된 기도회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목사님의 인도에 따라 30여 명의 교인들이 밤새 기도를 이어갔다. 내 고민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기도회가 끝났고 집으로 가는 첫 버스를 타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있어 잠시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 가까이에서 함께 기도했던 한 청년이 교회의 신학생 전도사였는데 자기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가라고 제안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이 청년은 주님의 종으로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당신 같이 말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다니 어이가 없네, 당신에게 맞는 길이 아니니 당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말씀을 전하게 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침에 시험 보러 가기 전 어머니께서 출출하면 먹으라고 싸주신 시루떡 몇 조각을 가방에서 꺼내 그와 나눠먹고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도 전에 말씀 한 구절을 나누고 싶다고 하면서 성경책을 펴 들었다. "네 철 연장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전도서 10장 10절 말씀이었는데 내 폐부를 찌르듯 했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한 이 청년은 대화할 때와 전혀 다르게 장애 없이 정상적인 사람과 같이 수려한 언어로 기도를 이어나갔다. 나의 고민과 문제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요지였다. 이 청년에게 내 고민이나 내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 상황을 알고 있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께 이 형제, 이 청년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고. 외교관의 길을 가라고 허락하시는 듯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얄팍한 인간의 생각과 눈으로 이 형제를 판단하고 무시하고 있었던 나에게 일침을 가하시는 듯했다. 교회를 나오면서 춥지만 상쾌한 공기와 함께 내 마음은 감사와 기쁨이 몰려오고 있었다.
내가 가는 길, 가야 할 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확신을 갖게 되니 이후 시험 준비 과정도 가벼웠다. 대학 3학년에 접어들어 학교 공부와 시험준비를 병행해야 했고 좀 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살던 김포에서 나와 학교 근처 신촌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여름방학이면 경기도 가평에 있는 고시원으로 책을 몇 박스 싸가지고 들어가 공부했고, 겨울방학에는 서울대 근처 신림동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1990년 1월 두 번째 도전한 외무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1991년 3월 2차 시험과 3차 시험에 합격했다. 마침내 오랫동안 품어온 외교관의 꿈을 이루고 외교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