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본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데자뷔
외교는 '기억의 예술'이다. 과거의 실패를 정교하게 기록하고 그 파편들을 모아 내일의 방패로 삼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4년 외교관 인생을 돌이켜보면 가슴 뿌듯한 보람의 순간도 많았지만, 때로는 냉엄한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을 씹어야 했던 순간들이 더 깊은 가르침을 주곤 했다.
모로코 근무 시절, 내가 맡았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2010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모로코와 겸임국인 모리타니아 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세계박람회 유치는 단순한 국제 행사를 넘어 국가의 위상과 외교적 역량, 그리고 미래 비전이 집약된 과제였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넘어 지방의 발전을 도모하고 '여수'라는 남해안의 작은 도시를 세계에 알리려는 야심 찬 비전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열정을 다했음에도 결과는 실패였고, 이는 내게 큰 좌절과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0 여수 세계박람회, 모로코에서의 총력전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출사표를 던진 도시들은 한국의 여수 외에, 중국의 상하이, 러시아의 모스크바,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였다. 모로코에서의 교섭은 그야말로 '보병전'의 연속이었다. 2001년 2월 허경만 전남지사를 시작으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 이정빈 전 외교장관 등 고위급 사절단이 쉴 새 없이 라바트를 찾았고, 대사관은 현지 인맥을 풀가동해 밀착 마크에 나섰다. 덕분에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우리는 모로코 정부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외교 교섭은 마지막까지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 냉혹한 싸움이었다. 2002년 2월,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의 중국 방문 소식은 우리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았다. 상하이 유치위원회가 홈페이지에 "모로코 국왕이 상하이 지지 표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대사관은 일격에 쓰러지는 듯한 초조함에 휩싸였다. 본부에 국왕 초청 친서를 건의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던 실책이 뼈아프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후 현지의 다수 핵심 인맥, 특히 모로코 정부에서 BIE(세계박람회기구)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외교부 벤다한(Bendahane) 정무국장으로부터 국왕이 중국 방문 시 중국에 대한 지지 언급을 한 바 없다는 확언과 함께, 모로코 정부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나,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언급을 수차례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불어에 능통한 김대성 유치위 사무총장이 급파되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도 기억에 선명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 하나로, 정부와 기업, 재외공관이 하나가 되어 뛰던 그 열기는 분명 우리 외교사의 작지만 뜨거운 한 페이지였다.
모나코에서의 뼈아픈 패배
그러나 2002년 12월 3일, 모나코에서 개최된 BIE 총회 결과는 참혹했다. 4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은 중국에 34대 54라는 큰 표 차로 대패했다. 당시 나는 모로코와 모리타니아의 지지표를 지키기 위해 모나코 현장에 파견되어 있었고, 우리 대표단과 함께 가슴 졸이며 결과를 지켜봤다.
현지 호텔에 설치된 우리 상황실은 중국과 한국의 경쟁으로 보면서, "박빙의 승리가 아니라 큰 표 차로 중국을 이길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3차례 이상의 투표를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러시아가 탈락하게 되면 이후 러시아를 지지했던 표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올 것이라 장담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1차 투표에서 폴란드가, 2차 투표에서 멕시코가, 3차 투표에서 러시아가 탈락하고, 4차 투표에서 한국과 중국이 경쟁하게 되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러시아를 지지했던 표 중 우리 쪽으로 넘어온 것은 단 한 표도 없었다. 우리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고, 외교적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대어 전략을 세운 '정세 판단 미스'였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동료와 밤새 토론하며 실패의 원인을 복기해 보았다.
여수라는 소도시의 인지도 한계를 상쇄할 전략적 카드의 부재.
중국에 편향적인 BIE 사무국에 대한 공략 미흡.
경제적 논리에 밝은 서구 선진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명분 부족.
경쟁국(중국-러시아) 간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 전무.
마지막까지 "러시아 표는 우리 것"이라 믿었던 뼈아픈 판단 착오.
외교는 정성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전체적인 판을 읽고 상대의 국익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본질을 깨달은 고통스러운 수업이었다.
2023년 부산, 반복된 외교적 데자뷔
시간을 건너뛰어 20여 년이 흐른 2021년, 우리나라는 다시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나는 주방글라데시 대사로서 현지 정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력을 다했다. 20여 년 전 모로코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정부와 기업은 총력을 다해 전 세계를 누비는 '보병전'을 펼쳤고, 우리 정부는 마지막까지 '역전승'을 자신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 파리 BIE 총회의 결과는 29대 119라는 충격적인 참패였다. 1차 투표에서 사우디의 독주를 막고 2차에서 역전한다는 시나리오는, 2002년 러시아 표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 믿었던 그 낙관론과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무색하게,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국제 여론 형성의 실패, 전략적 카드의 부재,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미흡한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지나친 낙관론까지. 부산 유치 실패는 단순한 패배를 넘어, 교훈을 학습하지 못한 우리 외교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외교적 참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하지 않는 외교에 미래는 없다
2002년 12월,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니스 공항 인근 식당에서 혼자 쌀국수를 먹으며 느꼈던 그 공허함이 다시 떠오른다. 아내를 위해 화장품을 사고, 어린 딸 지원이와 채원이를 위해 바비 인형과 고무찰흙을 사며 마음을 달랬지만, 외교관으로서 느낀 자괴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모로코에서의 경험은 내게 두 가지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첫째, 외교는 치밀한 전략과 국제적 구도 분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둘째, 외교적 실패는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수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지 못했고, 그 결과 부산에서 다시금 같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외교는 단순히 표를 얻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는 지혜다. 그리고 그 지혜는 '기억'에서 나온다. 실패를 기억하지 않는 외교는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수와 부산, 두 번의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는 단순한 숙명이 아니라 한국 외교가 스스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결과였다.
실패를 정직하게 응시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되풀이되는 '외교적 참사'를 끊어내고 진정한 외교 강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잊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그 교훈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