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역설: 비 오는 날이면 '오늘 날씨 참 좋다''
부다페스트의 회색 커튼을 걷고 ‘마그레브’로
인생의 한 장이 넘어가듯, 첫 부임지였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2년 반이 막을 내렸다. 2001년 2월, 한화길 대사님을 비롯한 동료들의 따뜻한 배웅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두 번째 해외 근무지인 모로코로 향했다. 유럽 대륙을 가로지른 비행기가 지중해를 건너자, 창밖으로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가늘게 이어지는 푸른 들판, 그리고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황토색 평원. 그것은 중부 유럽의 묵직한 고전미와는 전혀 다른, 거칠고도 원초적인 생명력의 빛깔이었다.
카사블랑카에 가까워지자 야자수 사이로 나즈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낭만적인 명성을 떠올렸던 탓일까, 첫눈에 들어온 풍경은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정감 어린 초라함에 가까웠다. 공항에서 새로 닦였다는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니, 비로소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Rabat)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하진 않지만 왕도(王道) 다운 위엄과 정돈된 차분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모나코가 아니라 모로코, ‘해가 지는 곳’ 마그레브의 나라
흔히 사람들은 모로코를 지중해의 작은 도시 국가 ‘모나코(Monaco)’와 혼동하곤 한다. 모로코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1950년대 모나코 왕비가 된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떠올리며 부러워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발을 디딘 곳은 화려한 카지노와 요트가 있는 모나코가 아니라, 아프리카 북서쪽 끝단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품고 있는 ‘모로코(Morocco)’였다. 옛 무라비트 왕조의 수도였던 '마라케쉬(Marrakech)'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모로코의 국명은 아랍어로 ‘알 마그리브(Al-Maghrib)’, 즉 ‘해가 지는 곳’ 또는 ‘서쪽’을 의미한다. 알제리, 튀니지와 함께 ‘마그레브’라 불리는 이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아프리카라 단정하기 어렵고, 이슬람권이지만 중동과는 또 다른 독특한 색채를 지닌다. 공식 언어는 아랍어지만 일상에선 그들만의 방언인 ‘다리자(Darija)’를 쓰고, 프랑스의 영향이 곳곳에 배어 있는 기묘한 혼종의 공간, 이 낯선 땅이 이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던 것이다.
헝가리 보다도 소박한 모로코의 무게
당시 모로코의 지표들은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인구는 헝가리의 세 배에 달하는 3천만 명이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헝가리의 4분의 1 수준인 1,200달러에 불과한 저소득 개도국이었다. 헝가리에서 연간 5~6천 대씩 팔리던 현대자동차가 이곳에서는 고작 100여 대 남짓 판매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로코의 얇은 경제층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교민 사회 역시 전국을 통틀어 100여 명뿐이었고,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 건너에서 향수를 달래주던 ‘서울식당’ 같은 한식당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대사관 규모 또한 단출했다. 주철기 대사님을 모시고 나를 포함한 서기관 두 명과 영사 한 명이 전부인, 주헝가리대사관보다도 작은 공관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대사관 차석으로서 정무와 경제 등 공관의 핵심 업무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날씨의 역설: 비 오는 날에 외치는 "날씨 참 좋다!"
모로코 생활 초기, 나를 가장 경이롭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날씨’였다. 부다페스트의 겨울은 가혹했었다. 오후 네 시면 해가 지고, 짙은 안개와 회색 구름이 도시를 짓누르는 날들이 수개월간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우울한 회색빛에 지쳐있던 우리 가족에게, 모로코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매일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은 신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지리교과서에 나오는 지중해성 기후와 대서양 연안 기후의 온난함을 모두 갖고 있는 곳이 바로 모로코였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일주일, 이주일, 한 달 가까이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씨가 계속되자, 그 눈부심에도 점차 질려가기 시작했고,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내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탄성을 질렀다.
“아, 오늘 날씨 참 좋다!”
해가 그리운 긴 겨울엔 태양을 보면 감격하더니, 이제는 태양을 피해 비 오는 흐린 날에 감사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모로코가 내게 가르쳐준 ‘날씨의 역설’이었다. 연간 강우량이 400mm도 안 되는 이곳에서 비는 대지를 적시는 생명수였고, 비로소 날씨의 균형을 맞춰주는 귀한 손님이었다.
하얀 집에서의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
부임 후 가장 큰 숙제는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전임자 김종용 참사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대사관에서 머지 않은 주택가의 전임자가 머물던 단독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하얀 외벽에 고급스러운 아치형 현관이 돋보이는 단층 집이었다. 모로코를 상징하는 '흰 집(white house)'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casa blanca)'와도 잘 어울리는 곳이랄까, 넓은 정원이 딸렸던 이 집은 외교관 생활을 통틀어 대사가 되기 전까지 누려본 가장 넓고 품위가 있었던 거처였다.
물론 낭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원에는 도마뱀과 개미가 진을 쳤고, 집 안에서는 시시때때로 바퀴벌레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난방 시설이 열악해 겨울이면 작은 LPG 난로 하나에 의지해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네 살이던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이제 막 6개월이 된 둘째를 안은 아내와 함께 그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곳은 우리 인생의 빛나는 한 장면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우힐튼호텔에서 며칠을 머물며 낯선 북아프리카의 밤공기를 마시던 그 첫날의 설렘이 아직 생생하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기대와 감사함이 걱정을 앞섰던 시간들. 지구 서쪽 끝, 해가 지는 마그레브의 나라 모로코에서의 삶은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서도 힘차게 닻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