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그때, 모로코가 아닌 싱가포르를 택했다면?

by 어느 외교관의 꿈

떠도는 삶, 그 역동성 가운데의 불확실성

인생의 절반 이상을 타국에서 보내야 하는 외교관의 삶을 사람들은 흔히 ‘다이내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는 ‘불확실성’이라는 숙명이 그림자처럼 늘 따라붙는다. 누구나 동경하는 낭만의 도시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지도에서도 한참을 찾아야 하는 낯선 오지나 뜨거운 사막, 혹은 포성이 멎지 않은 분쟁지역으로 짐을 싸야 할 때도 있다.


인사 발령 시즌이 되면 외교부 청사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유럽의 어느 고도(古都)를 꿈꾸다가도 중동의 모래바람으로, 혹은 중남미의 열대우림으로 행선지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나의 첫 해외 부임지였던 헝가리 역시 그랬다. 파리 OECD 사무국에서의 근무를 꿈꾸며 부풀었던 기대는 이탈리아로 선회했다가, 결국 다뉴브강이 흐르는 부다페스트에 안착했다. 그래도 기대와 현실의 차가 아주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발령받는 것도 큰 변화라 하지만, 오대양 육대주를 무대로 삼는 외교관에게 ‘변화’는 일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 역동적인 불확실성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만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비로소 ‘천직’이 된다.


선택의 갈림길: 싱가포르인가, 모로코인가?

헝가리에서의 2년이 흐른 2000년 가을, 다시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당시 외교부의 인사 방침은 엄격했다. 선진국과 환경이 좋은 개도국 공관은 '가'와 '나'로, 환경이 어려운 개도국은 '다'와 '라'로 구분하고, '가', '나' 지역 근무자는 원칙적으로 '라', '다'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선·후진국 순환근무제'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다자 외교의 최전선인 제네바나 벨기에, 네덜란드와 함께 몬트리올을 지망했지만, 인사 원칙과 현실의 벽은 높았다. 헝가리가 '나' 지역 공관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당시 한화길 대사님께서 직접 인사국장과 협의하여 이끌어내 주신 제안이었다.


객관적으로 싱가포르는 훌륭한 대안이었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완벽한 치안, 선진화된 인프라, 효율적인 업무 환경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 매끄러운 마천루의 도시로 향하지 않았다. ‘작고 덥고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주변의 평판과, 그곳을 거쳐 간 선배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내 발목을 잡았다. 고민 끝에 나는 안정적인 싱가포르 대신, 조금 더 낯설고 험난할지 모르는 길을 묻기로 했다. “차라리 원칙대로 ‘다’ 지역 공관에 가겠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그때 인사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바로 ‘모로코’였다. 그 순간, 묘한 설렘이 가슴을 두드렸다. 북아프리카의 낯선 땅, 카사블랑카와 마라케시의 향기가 느껴지는 그곳에서라면 오랫동안 미뤄둔 불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싱가포르라는 선택지를 두고 잠 못 이루던 밤은 가고, 모로코라는 이름을 품자 비로소 평온한 잠이 찾아왔다. 2000년 12월 23일, ‘주모로코 대사관 1등 서기관’ 발령 통지서는 내가 받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 발령이 훗날 내 인생의 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운명은 나를 북아프리카의 대지 위에 데려다 놓고 있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두고 온 삶’

최근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영화 <Past Lives>, 그리고 한국에서 흥행했던 영화 <만약에 우리>는 시종일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말이야?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패스트 라이브즈>의 주인공 나영이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혹은 뉴욕에서 해성을 다시 만났을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만약에 우리>의 주인공 은호와 정원이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던지는 질문, "만약에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물음은 보는 이의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선택하지 않은 삶, 곧 ‘두고 온 삶’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시선을 보내듯이, 누구에게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나 역시 가끔 아내와 함께 이 즐거운 가정을 해보곤 한다. “여보, 그때 우리가 싱가포르를 선택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내는 가끔 상의 없이 모로코를 결정했던 그때의 나를 타박하기도 하지만, 이 질문은 후회라기보다 우리 삶의 신비로움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만약 내가 싱가포르에 갔다면, 지금 내 인생을 채우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의 절반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로코의 붉은 흙먼지와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마주하며 맺었던 끈끈한 동료애, 서툰 불어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애쓰던 열정,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황금빛 석양 아래서 느꼈던 특유의 생경한 감각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외교관으로서의 커리어 궤적 또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절되었을 것이며, 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고민을 하는 ‘또 다른 나’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를 완성하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과 예의

인생은 수많은 분기점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하지만, 사실 그 선택이 정답이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안갯속에 가려져 있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은 현실보다 늘 아름답게 채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모로코를 선택함으로써 얻은 지금의 삶에 나는 전적으로 만족하고 감사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이번 생에서 맺어진 인연들은 수천 번의 전생이 쌓여 만들어진 기적 같은 결과물이다. 싱가포르를 포기하고 모로코를 택했던 그날의 결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인연이 지금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단단한 벽돌이 되었다. ‘만약에’라는 질문은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인연과 경험이 곧 나의 인생이고, 그것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달래기보다,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진실된 예의이자,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왔던 모로코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오늘도 나는 내 앞에 놓인 또 다른 선택지들을 향해 기꺼이 발을 내디딘다. 어떤 길을 가든, 그 끝에는 내가 책임지고 사랑해야 할 ‘나의 인생’이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총성 너머로 피어난 협력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