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사하라에서 만난 쌩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평화의 기억
쌩떽쥐베리 "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되었던 서부사하라
모로코 근무시절, 내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는 서부사하라(Western Sahara) 사막에서 마주했던 쌩떽쥐베리의『어린 왕자』이야기다. 1935년, 생텍쥐베리가 조종하던 비행기가 이곳 사막에 추락했고, 그 경험은 훗날 『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되었다. 서부사하라의 수도 라윤(Laâyoune)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타르파야(Tarfaya)라는 작은 마을에는 그가 몰던 비행기를 형상화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02년 가을, 나는 서부사하라의 라윤을 방문했다. 모로코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토분쟁 지역인 이곳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유엔 서부사하라 평화유지단(MINURSO)에 파견된 우리 국군 의료지원단 장병들을 격려하고 위문품을 전달하는 임무도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배의 유산, 서부사하라(Western Sahara) 문제
서부사하라의 비극은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에서 비롯되었다. 1884년부터 '스페인령 사하라'로 불리며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이곳은 1912년 프랑스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편입하면서도 스페인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끊임없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고 1975년 11월, 스페인이 철수를 결정하자 당시 모로코 국왕 하산 2세는 35만 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동원해 사막으로 진격하는 이른바 '녹색 행진(Green March)'을 단행했다. 총칼 대신 코란과 국기를 든 행렬이 국경을 넘는 장면은 현대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풍경으로 기록되었고, 이를 통해 모로코는 서부사하라를 실효적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 사흐와리인(Sahrawis)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들은 폴리사리오(Polisario) 전선을 조직해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했고, 1976년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SADR)' 수립을 선포하며 모로코와 긴 전쟁에 돌입했다. 1991년 유엔의 중재로 '주민투표에 의한 장래 결정'이라는 조건 하에 가까스로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현실은 복잡했다. 동부 약 20%는 폴리사리오가, 나머지는 모로코가 통제하며 긴장이 이어졌고, 그 약속은 여전히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유엔은 서부사하라 평화유지단(MINURSO)을 설치해 휴전을 감시해 왔고, 우리 군 또한 그 평화의 여정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사막의 천사들, MINURSO 한국군의료지원단
서부사하라의 수도라 불리는 라윤(Laâyoune)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대서양의 파도가 만들어낸 짠 내음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벌판이었다. 바다와 사막이 맞닿은 이 척박한 작은 마을에 우리 국군의료지원단이 배치되어 활동하고 있는 유엔서부사하라평화유지단(MINURSO) 사령부가 있었다.
1994년 5월, 소말리아 공병대에 이어 우리 군의 두 번째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으로 파견된 이곳에는 2006년 임무를 종료할 때까지 12년 동안 총 23진 542명이 거쳐 갔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시야를 가리는 모래폭풍 속에서도 그들은 이 기간 동안 45,000여 명의 유엔 요원 및 현지인들을 돌보며 인술(仁術)을 펼쳤다. 6개월마다 교체되는 의료부대는 진료뿐 아니라 다른 나라 PKO 대원들과 함께 전방초소 근무도 병행했다.
나는 유엔이 제공한 군용기를 타고 아사드(Awsard)와 다클라(Dakhla) 같은 전방 감시초소까지 시찰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와 돌 뿐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컨테이너와 천막으로 지어진 초소에서 뜨거운 열기와 모래폭풍을 견디며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들의 헌신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서부사하라 한가운데서 떠 올린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라윤을 떠나기 전, 우리 PKO 대원들은 나를 지프차에 태워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인 타르파야(Tarfaya)로 안내했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베리가 1920년대 초 잠시 근무했었다는 이 바닷가 마을에는 그가 몰던 작은 항공기 모형을 담은 기념물이 외롭게 서 있었다.
초라하고 작은 조형물이었지만,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보여준 쌩텍쥐베리를 기억하는 흔적이었다. 젊은 시절의 내 마음에 환한 빛과 소망으로 다가왔던 『어린 왕자』가 이 황량한 사막에서 고립되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그가 탄생시켰던 작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잔잔한 감동이 파도같이 밀려들었다. 눈에 보이는 거친 모래바람 너머,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해 준 그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다.
사막이 감춘 '우물'을 찾아서
내가 모로코를 떠난 뒤에도 서부사하라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2007년 모로코가 제안한 '모로코 주권 하의 자치안'은 오랜 진통 끝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2022년 스페인의 지지 표명에 이어, 2025년 10월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 2797을 통해 이를 현실적인 협상 기준으로 공식화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분쟁이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나 보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수치와 결의안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그 땅을 지키고 있는 25만 명의 사흐와리인들과 그들의 삶이다. 『어린 왕자』의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구절이 더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전쟁과 굶주림, 불행으로 내몰렸던 서부사하라의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만들어낸 분쟁의 모래 언덕 아래,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평화라는 '우물'은 여전히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의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척박한 현실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사막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서부사하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흘렸던 우리 장병들의 땀방울이 그 우물을 찾는 귀한 마중물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