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슬리'섬 사건, 무력충돌 직전까지 치달은 외교갈등
가깝고도 먼 이웃, 애증의 지중해 전선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단, 대서양과 지중해를 동시에 품고 있는 모로코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가장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의 관문이다. 특히 불과 15km의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스페인과는 수천 년의 역사를 공유하며 얽히고설킨 '가깝고도 먼' 관계를 맺어왔다. 8세기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부터 15세기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 그리고 현대의 식민 지배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화해하며 공존해 왔다.
내가 모로코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 애증의 관계가 단적으로 폭발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2002년 7월에 발생한 '페레힐(Perejil) 섬 사건'이다. 당시 나는 양국 간의 일촉즉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본국 외교부에 관련 동향을 매일 전문으로 보고했다. 그 긴박했던 기록들을 복기해 보면, 지중해 너머 동해를 사이에 둔 한일 관계의 데칼코마니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축구장만 한 바위섬이 흔든 지중해의 평화
2002년 7월 11일, 모로코 군인 12명이 지중해의 작은 무인도 페레힐 섬에 상륙하여 국기를 게양하고 텐트 두 개를 쳤다. 스페인 측에서 '페레힐(스페인어로 파슬리)', 모로코 측에서 '라일라(아랍어로 밤)'라 부르는 이 섬은 모로코 해안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축구장 크기의 황무지였다. 평소에는 인근 어민들의 쉼터나 염소들이 풀을 뜯던 버려진 땅에 불과했다.
모로코 정부는 이 조치가 밀입국자와 테러리스트를 감시하기 위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복잡했다. 당시 모하메드 6세 국왕의 결혼식을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한편, 1991년 양국이 맺은 '우호 통상 협력 조약' 이후 정체된 영토 논의에 대해 스페인의 반응을 떠보려는 일종의 '전략적 테스트' 였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스페인의 입장은 단호했다. 비록 영유권이 국제법상 모호한 측면이 있었으나, 스페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합의된 '현상 유지(Status Quo)' 원칙을 모로코가 일방적으로 파괴했다고 간주했다. 분쟁은 순식간에 외교적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모로코는 마드리드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고, 스페인은 전함과 잠수함을 인근 해역에 배치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
'로미오-시에라' 작전과 미국의 중재
긴장은 7월 17일 새벽, 극에 달했다. 스페인은 ‘로미오-시에라(Romeo-Sierra)’라는 작전명 아래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6대의 헬리콥터와 군함, 잠수함이 동원된 이 작전은 단 몇 분 만에 종료되었다.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모로코 군인들은 무혈 투항했고, 스페인은 섬을 탈환한 뒤 자국 국기를 꽂았다. 모로코는 이를 "명백한 침략 행위"라 규정하며 국제사회에 호소했고, 금방이라도 무력충돌로 이어질 듯한 긴장이 감돌았다.
전쟁의 위기까지 거론되던 이 사건을 잠재운 것은 제3자의 개입이었다. 당시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며 지중해의 안정이 절실했던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중재자로 나선 것이다. 결국 양국은 미국이 제안한 '7월 이전의 상황으로 원상회복(Status Quo Ante)'이라는 합의안을 수용했다. 스페인 군은 철수했고, 모로코 역시 군대를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주인 없는 바위섬은 다시 염소들의 차지로 돌아갔으며, 양국은 이듬해 1월에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역사의 앙금과 현실의 실리 사이에서
페레힐 섬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수백 년간 쌓여온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응어리가 폭발한 지점이었다.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어 1956년 독립할 때까지 식민 지배를 받았다. 오늘날 모로코 북부 도시 탕헤르(Tanger)나 남부 휴양지 아가디르(Agadir)에서 스페인어 메뉴가 통용되고, 북부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어에 능숙한 것은 이런 역사의 잔재다.
무엇보다 모로코 영토 북단에 위치한 세우타(Ceuta)와 멜리야(Melilla)는 여전히 스페인 영토로 남아 있다. 모로코로서는 자기 앞마당에 남의 집 평상이 놓여 있는 격이니, 이 두 도시는 양국 관계의 영원한 불씨다. 모로코는 반환을 요구하지만 스페인은 이를 거부한다. 페레힐 섬 역시 세우타 인근에 위치해 있어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나는 주말이면 종종 세우타로 차를 몰고 가 스페인산 쌀과 생필품을 사 오곤 했는데,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뀌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풍경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또한, 모로코의 최대 외교 현안인 서부사하라(Western Sahara) 문제 역시 스페인과의 갈등 요인이었다. 스페인은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며 모로코의 속을 태웠다. 다행히 2022년 스페인이 모로코의 주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관계가 개선되었지만,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서부사하라 문제로 인해 수시로 외교적 마찰이 수면 위로 치솟았다.
가깝기에 더 어려운, 선린(善隣)의 지혜
모로코와 스페인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일 관계를 떠올렸다. 페리힐 섬을 둘러싼 모로코와 스페인의 갈등은 동해를 사이에 둔 한일 간의 해양 영토 분쟁과 EEZ 문제는 지중해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은 꼴이다. 마찰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서로를 포기할 수 없다. 스페인 기업들에 모로코는 놓칠 수 없는 신흥 시장이며, 모로코에 스페인은 유럽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싸우면서도 헤어질 수 없는" 이 경제적 연쇄 고리 역시 한국과 일본관계의 모습과 판박이다.
지리적 인접성은 활발한 교류의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소한 마찰도 국가적 자존심과 직결되는 민감한 독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숭고하면서도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이웃 국가 간의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 현재의 실리를 존중하는 냉철함, 그리고 작은 바위섬 하나에 국가의 모든 명운을 걸지 않는 전략적 절제가 있을 때 비로소 유지된다. 이웃은 바꿀 수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쌓인 감정의 파고를 넘어 진정한 공존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은 지중해의 파슬리 섬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