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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다 Kdiversity Apr 02. 2024

다양성의 시작은 표준화를 벗어나려는 노력

(부제: 제가 11시면 당연히 당신도 11시 아니에요?)

1. 최근 제 링크드인 포스팅이 처음으로 공유되었습니다. 반응, 댓글과는 또 다른 짜릿함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어느 분이실까, 어떤 코멘트를 다셨을까 냉큼 달려가서 그분의 링크드인 계정을 보다 보니 DEI 관련 커리어가 있으시더라고요! 감사 인사를 전하며 혹시 당시의 경험들을 나눠주실 수 있을지 구글챗을 요청드렸습니다. (며칠 전 링크드인으로 이어진 인연과 구글챗 한 번 해보고 매우 신난 상태입니다... 하하� 그 때 나눈 대화와 든 생각들도 곧 나눠보려고 해요.)


2. 여차저차 일정 조율을 하던 중, 저는 아무렇지 않게 '편한 날짜를 말씀 주셔라, 나는 날짜는 다 가능하다, 나는 점심시간(11:30~13:00)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분께서 웃으시며 '혹시 한국에 계세요? 저는 지금 스코틀랜드에 있고, 우리는 8시간의 시차가 나네요.'라고 말씀 주셨습니다. 아뿔싸...


3. 토종 한국인에 한국 기업만 다니며 한국 사람들하고만 일해온 제게 '나와 다른 시간대'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침 8시면 너도 아침 8시고, 내가 오후 5시면 너도 오후 5시인 삶을 살아왔던거죠. 표준시, UTC, PST, EST, KST 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계산할 줄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또 편협했지 뭐에요.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요.


4. 모 대기업에서 근태 업무를 담당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는 개인이 시업/종업시각을 입력하며 근무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IR팀에서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해외 기업과 컨퍼런스 콜을 해야 해서 새벽 4시에 근무를 시작했는데 근태 입력이 안된다고요. 당시 근태 시스템은 당연히(?) 입력 가능 시간대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06시 00분부터 23시 59분까지로요. 될 리가 없지요. 인사팀 상식에 새벽 4시 근무는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5. 제가 재직했던 수 년간 IR팀의 근태는 예외처리 되었습니다. 근태 업무가 후배에게 넘어가고, 후배들이 "선배님, 이 팀 이거 뭐에요?"라고 물을 때면 매번 "IR팀은 2-3월에 뭐가 있어. 사유서 보고 너가 수기입력 해줘."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늘 '예외'였고, 그들의 '특이 근태'에는 '사유'가 필요했습니다.


6. 아침이 오기 전 이른 새벽만 예외였을까요? 밤 12시를 넘어 일하는 것 또한 예외였습니다. 그 시간대는 '철야근무' 근태코드를 넣어서 입력해야 하고, 그건 공장 교대조 등 일부 특수인력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는 코드였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지원 직군 여러 팀들이 시즌 별로 밤을 새워 일했지만, 신데렐라처럼(?) 12시 이후 우리의 근무는 모두 무급 노동이었습니다. 회사에 알릴 수도 없고, 알려서도 안 되는. 


7.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게 됩니다. 각종 해외출장이 막히며 비대면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됩니다. 일하는 시간대가 뒤틀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때도 가이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팀장 승인 하에 총 근무시간을 입력 가능한 시간대 안에서 입력하라.' 데이터 정확성/정합성 면에서도 참 아쉬운 점입니다. 훗날 근태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어느 팀이 누가 언제 얼마나 많은 해외 상대 업무를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느 팀에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모를 일입니다. 우는 아이 젖달라고 팀장이 인사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면요.


8. 아무튼... 우리는 늘 그렇게 정해진 기준과 다른 상황을 '예외처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예외가 생긴다고 해서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거나,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업무 우선순위, 업무의 영향력/파급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관리' 중심의 HR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9. 다양성이라는건 어쩌면 표준화를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게 아닐까요. 설령 그게 뭔가를 '풀어준다'고 생각될지언정, 악용/오남용하는 사람들과 그에 대한 대책이 고민될지언정, 사고를 조금 비틀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으니까요.


10. 직장 내 다양성포용이라는게, DEI 실현이라는게 뭐 꼭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이 시작일 거라고 믿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사고를 확장시켜 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일평생 한국 기업만 다니다가 글로벌 기업에 처음으로 와 보니, 행사 하나도 각국의 시간대 별로 수 차례에 걸쳐 진행해 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다양한 유형의 업무와, 더 많은 아이디어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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