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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다 Kdiversity Apr 08. 2024

나는 당신이 태어나서 한 번은 약자가 되어봤으면 좋겠다

1. 내 동생은 6급 장애인이다.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왼손 엄지와 검지를 잇는 뼈가 없다. 왼손 엄지손가락이 그냥 살덩이만 붙어있다. 왼손으로 물병이나 컵을 잡을 때면, 그는 우리처럼 엄지와 검지로 쥐지 못하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물체를 낀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는 농구도 축구도 달리기도 다 하면서 컸다. 우리는 서로 컴퓨터를 하겠다고 싸웠고,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동생을 불러서는 고작 불 꺼달라는 명령을 했다.

2. 동생은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임용고시는 원서접수부터 시험이라고 여겨지는데, '응시 지역선택' 때문이다. 지역 별로 '티오(TO)'가 다르기 때문에 낮은 경쟁률을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이 펼쳐진다. 고향, 졸업학교 소재지, 도시 선호도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일단 합격이 최우선이다.

3. 동생은 평생을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랐다. 나는 당연히 동생이 응시 지역을 '광주'로 선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전라북도'로 선택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전북 지역을 선택하는 장애인 응시생은 동생 외에도 더 있어서, 경쟁이 발생할 것이 뻔했다. (보통, 장애 티오는 별도로 있고, 경쟁률이 1을 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굳이 왜 힘든 길을 가느냐 이유를 물으니 동생은 답했다. "광주는 5·18 유공자 가산점이 있잖아. 못 이겨." 동생은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그게 맞지. 거긴 줘야지."

4. 그게 당연하다는 그의 반응에 내가 외려 얼떨떨했다. 지금 도대체 누가 누굴 배려한다는거지? 하는 맘이 들기도 했다. 근데 그래서 좋았다. 그는 자기가 약자이기 때문에, 다른 약자를 신경쓸 줄 알았다. 본인이 약자여봐서, 약자에게 주어지는 지원에 토달지 않았다.

5. 친한 남자 동기가 있다. 그는 동기들 무리에서 여자들의 고충에 공감을 잘해줘서 인기가 많다. 너는 여자도 아니면서 어쩜 그리 여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해주냐 물으니 그가 답했다. "나 미국 살다 왔잖아. 서양에서 동양 남자는 개보다도 못하다는 농담 못 들어봤어? 야, 그러니까 나는~ 서러워 봤잖아~"

6. 나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어디서든 잠시라도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여금 역지사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수의 불편과 설움을 알고, 스스로는 조금 더 겸손해졌으면 좋겠다. 타인에게 더 깊고 넓은 이해와 공감을 보이면 좋겠다. 차마 내가 당신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겠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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