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다 Kdiversity Apr 18. 2024

코드 스위칭 (code-switching)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20.3-4월호 <'코드스위칭'의 대가>

1. 최근 팟캐스트에서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 말씨 바꾸기, 코드 변환)'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코드 스위칭이란 언어학에서 대화 도중에 다른 언어나 방언을 바꾸어/섞어 쓰는 것을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미국에 사는 한국인 가정에서 부모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자녀가 오면 영어로 바꾸는 것이나, 지방 출신의 정치가가 공식 석상에서 표준어를 사용하다가 연설을 마치고 내려와 자기 고향의 지지자들과 사투리를 써서 대화하는 것 등이 해당합니다.


3. 일반적으로 코드 스위칭의 유형은 3가지로 분류합니다.

1) 인용 변환: 현장감 전달 또는 논리적 설득력 확보를 위한 목적

2) 반복 변환: 명확한 메시지 전달 또는 메시지 강조를 위한 목적

3) 단순 변환

이 중에서 속담이나 관용구를 인용하는 인용 변환, 의미의 명확화를 위한 반복 변환 등은 화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4. 우리 일상에서 코드 스위칭은 이보다 좀 더 넓은 개념으로 통용됩니다. HBR에서는 코드 스위칭을 '공정한 대우나 양질의 서비스, 채용 기회 등을 받기 위해 타인의 편의에 맞게 자신의 화법과 외양, 행동, 표현 등을 조정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흑인들이 직장에서 인종과 관련해 겪는 핵심 딜레마 중 하나로 소개하고요.


5. 저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코드 스위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제조기업들은 모두 공장이 경상도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그래서 내 고향 전라도 사투리를 말끔하게 숨기고 서울말을 쓰다 못해, 대학교 룸메이트에게 배운 부산 사투리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억양에 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네 고향이 어딘가?'라는 질문을 받거나, 광주라는 대답에 이어 '아니, 나랑 동향인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깨를 으쓱하며 남몰래 의기양양해 했습니다. '과메기'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지만, '가을은 과메기죠! 김에 싸먹어야 하는데!'라고 외치기도 했고요.


6. 그뿐만일까요. 제조업 특성상 남초이기 때문에, 귀동냥으로 들은 군대 용어도 참 많이 썼습니다. 친한 분들의 전화가 오면 '통신보안-' 너스레를 떨며 받고, 일상의 사소한 꿀팁을 나눌 때면 '방패지식인'에 올리라고 했습니다. 얄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전역할 때 내무반에서 롤링페이퍼 안 써 줬죠?'라며 장난치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업계를 바꿔 IT기업으로 이직했을 당시, 면접관이자 제 팀장님이셨던 분께서는 저더러 '다나까'를 잘 써서 뽑았다 했습니다. '이게 먹히는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자, 말 뿐 아니라 행동양식에도 자꾸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을 걷고 심지어 살아남기 위해 술을 넘어 담배까지 배우는 등 군대식/남성향적 표현이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7. 돌이켜 보면, 이런 저의 코드 스위칭 행동들은 결국 제 정체성을 숨기거나 조절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환경에서 빠르게 잘 적응하고 상호작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제 자신을 억압하고 가린 셈이 되었습니다. 조직 내 만연한 편견과 차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제가 전라도 출신이고 여성이라는 점을 감추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색안경들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에 역설적으로 저는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이 옷이 내게 꼭 맞는 유니폼 같다고 착각할 지경에 이르렀고요.


8. 코드스위칭은 다양성을 넘어 '포용성'의 가치, '포용성 증진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HBR이 전하는 조언 일부를 인용/재편집하며 글을 마칩니다. (뻔한 이야기에서 한 발짝 더 depth있게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것만으로는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을 줄일 수 없다. 직장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포용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오히려 문화적 차이를 부정하거나 or 지나치게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흑인 직원들이 코드스위칭을 덜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진정 포용적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두루 좋은 포용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적절한 균형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리더가 소수그룹 직원들의 업무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회사 밖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이런 주제에 대한 대화를 유도하면 회사가 그들을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

✔  기업이 다양성/포용에 관심을 두는 동시에 '공정성/능력주의'를 중시한다면, 전 직원이 포용된다는 느낌을 확실히 가질 수 있다.


참고.

Masterclass(2022), <Code-Switching Definition: 5 Reasons People Code-Switch>

HBR(2020), <'코드스위칭'의 대가>


작가의 이전글 프로이직러가 동료의 퇴사를 마주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