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DEI를 이야기하는 방식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2가지 접근법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1️⃣ 다양해야 한다 ❌ → 다양해도 된다, 이미 다양하다 ⭕
DEI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프레임은 '다양해야 한다'라는 의무와 당위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도 된다' 혹은 '우리는 이미 꽤 다양하다'라는 안심을 제공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입니다. 편안함과 안도감을 바탕으로 어떤 주장이든 펼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다양해야 한다'는 의제를 제시하고 난 후에 '다양하면 좋다'라며 효용성을 얘기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기업의 생산성이 올라가거나 직원의 근속기간이 늘어난다고 한들, 귓가에 맴돌다 흩어집니다. 대신 '우리가 몰랐던 숨은 다양성을 찾아보자', '다양성 덕분에 도움을 받았던 사례를 나눠보자'라는 방식이 '다양해도 괜찮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DEI 중 I(Inclusion, 포용)을 얘기하는 건 사실 선진국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D(Diversity,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서로 간에 명확한 합의도 없고, 구체적인 사례도 부족합니다. 선진국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성의 범주(예: 인종, 종교, 식습관)는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다르며, 체감되는 우선순위도 다릅니다. (물론 그래서 오히려 인지 다양성(사회경제적 배경, 통찰, 경험, 사고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한 긍정회로!�)
이렇게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다양성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거부감부터 드는 것은, DEI에 대한 접근법이 '압박수비'같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에게 숙제를 잔뜩 줘 놓고, 숙제하면 똑똑해져- 숙제하면 반에서 1등할 수 있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까요. 숙제를 하고 싶게 할까요? 글쎄... 아닐 겁니다. DEI에 대한 강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느끼게 하여 자신의 독립성/자율성이 제한된다고 인식할 겁니다. 또, 이미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았냐는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DEI 백래시 움직임이 있지요.)
순서를 바꿔서 '조금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도 괜찮대, 생각보다 효과적이래'로 시작해서 → '뭐가 좋았는데?', '왜 좋은데?'로 나아가 충분한 공감대 형성을 하고 → '그러면 우리는 얼만큼 다양해야 하는데?', '어떤 부분의 다양성을 더 보강하면 좋지?', '포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순으로 논의를 발전시켜가면 좋겠습니다.
2️⃣ 포용해야 한다 ❌ → 포용할 수 있다 ⭕
최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마다 연이어 김용 前 세계은행 총재께서 출연하십니다. 김 전 총재님께서는 저소득국가의 보건과 재건에 헌신해 오셨는데요, 한국인의 정신건강 소위 'K멘탈'이 위기라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신 겁니다. 성장과정, 커리어 여정, 주요한 성취를 이뤄냈던 구체적인 비결, 한국과 미국의 교육제도 차이 등 모든 이야기들이 정말 귀하고 큰 울림이 있었는데요. 제가 가장 고무적이었던 부분은 매 영상마다 마지막에 전해주시는 영상편지였습니다.
김 전 총재님께서는 한국의 정신적 재난 상황과 관련하여 "한국을, 한국인을 믿는다. 이전에도 해냈으니,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한국은 너무도 훌륭하게 잘 해결해 왔다. 정말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 왔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왔다. 그렇기에, 정신 건강이라는 문제를 위해서도 나설 것이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라고 얘기하지만, 그보다도 더 크게 들리는 메시지는 '할 수 있다'였습니다. 더 힘주어 강조하시는 메시지는 '할 수 있다'였습니다. 저는 이 접근법이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듣기만 해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거든요.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우리가 같이 해야 한다, 같이 해 보자가 아니라 '너가 해야 한다'로 들립니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로 들립니다.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해결해야 하는 문제(problem)에 집중하게 되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문제를 푸는 해결책(solution)에 집중하게 됩니다.
단순히 '해야 한다'에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응원과 확신을 함께 전하는 것.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함께 하자'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 전 총재님께서 나오신 유튜브 몇 편을 소개 드립니다.
평생 '불가능'과 싸우면서도 '긍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 전 세계은행 총재 김용